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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까지 일해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할까 《인턴》이 말하는 퇴직 후 행복('왜 우리는 남과 비교하며 불안해할까' 김경일 교수의 강연) 어느 날 문득, 남의 SNS를 보다가 핸드폰을 내려놓은 적이 있습니다. 화면 속 누군가는 이미 새 직장을 잡았고, 또 누군가는 해외여행 중이었습니다. 제가 느낀 건 부러움이라기보다 설명하기 어려운 조급함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영화 《인턴(The Intern, 2015)》을 다시 꺼내 든 건 바로 그날 밤이었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다시 생각해보려 합니다.누군가의 이력서에는 '70세, 인턴'이라고 적혀 있다영화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잘 차려입은 노신사가 노트북 앞에 앉아 짧은 자기소개 영상을 녹화합니다. 이름은 벤 휘터커, 나이는 일흔. 그는 전화번호부 인쇄회사에서 40년을 일하고 은퇴했습니다. 아내도 세상을 떴고, 자녀들은 각자의 삶을 삽니다. 요.. 2026. 10. 3.
좋은 패를 받은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타짜: 벨제붑의 노래》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연, 니체의 운명애 "필연적인 것을 아름답게 보는 법을 배우고 싶다." 니체가 『즐거운 학문』에서 남긴 말입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솔직히 반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아름답게 보라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냐고. 그런데 추석이 끝난 뒤 어느 한산한 날, 저는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습니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였습니다.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은 영화를 먼저 보고 오시길 권합니다.최국희 감독이 연출하고 2026년 9월 23일 개봉한 이 영화는, 변요한이 연기하는 장태영과 노재원이 연기하는 박태영이라는 두 친구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같은 출발선에서 온라인 카지노 사업을 시작한 두 사람이지만, 성공이 한 사람에게 몰리기 시작하면서 관계 전체가 무.. 2026. 10. 2.
결국 취업은 나 혼자 해결해야 하는 걸까 《행복을 찾아서》와 아마르티아 센의 역량접근법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 정말 믿으십니까? 저는 고용센터 교육을 마치고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오다가 그 질문이 목에 걸렸습니다. 교육을 받은 뒤에도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을 찾아야 하지?"라는 물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떠올린 영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2006년 개봉한 윌 스미스 주연의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yness)》였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이 영화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려 합니다.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노력과 기회 사이에 놓인 간극에 대한 이야기로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크리스는 왜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그토록 오래 힘들었을까영화 속 크리스 가드너는 쉬지 않습니다. 의료기기를 들고 거리를 뛰고, 무급 인턴십 면.. 2026. 10. 1.
퇴직 후 풍요로움은 언제 시작되는가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과 아리스토텔레스, 장자의 소요유 명절이 끝나고 저는 도심의 구직자 취업역량교육장을 가기위해 남편이 있는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 앞에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퇴직하면 쉬게 될 줄 알았는데, 왜 이 사람들은 더 바쁘게 사는 걸까. 그리고 왜 나는 그 바쁨이 부러우면서도 내 바쁨은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그 질문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영화가 떠올랐습니다.광고는 아름다웠고, 현실은 낡아 있었다노부인 에블린이 자이푸르 공항을 나서는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브로셔 속 호텔은 하얀 아치와 푸른 타일로 빛나고 있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건물은 벽이 허물어지고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했습니다. 존 매든 감독의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2011)은 바로 그 순간, 은퇴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정직하게.. 2026. 9. 30.
역사는 누가 이름을 붙이는가 《암살자(들)》와 아렌트의 사실적 진실, 공자의 정명 역사는 사건이 끝난 순간 완성될까요? 아니면 그 사건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비로소 시작될까요?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아들과 점심을 먹고 혼자 영화관으로 들어가면서 저는 그 질문을 미처 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이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그 질문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이 글은 영화의 결말을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이름이 현실을 만드는가 — 공자의 정명공자는 정치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명(正名)이라고 답했습니다. 정명이란 '이름을 바로잡는 일'을 뜻합니다.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현실에 붙인 이름이 실제 모습과 일치하는지 끊임없이 점검하는 태도입니다.《논어》 「자로」 13.3에서 공자는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2026. 9. 29.
죽고 싶다는 말을 들은 뒤, 부모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과 돌봄윤리, 그리고 가족이 곁에 있는 방식 "죽고 싶다"는 말을 들은 뒤,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니, 더 정확하게 물어야겠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상대의 삶을 '해결해주는 것'과 같은 의미일 수 있을까요? 저는 한동안 그 둘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1980년 로버트 레드포드의 영화 《보통 사람들(Ordinary People)》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사랑은 해결이 아니라 관계다 — 돌봄윤리와 캘빈의 무력함 사이에서명절 연휴가 끝나고 아들 차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가던 길이었습니다. 차 안에서 아들은 회사에 가기 싫다는 말을 반복했고, 말투는 점점 날이 서 갔습니다. 운전 중 과속이 이어졌고,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기도 했습니다. 저는 옆자리에서 아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아들이 말했습니.. 2026. 9. 28.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하이데거의 피투성, 불교의 무상 "우리는 자신의 탄생을 선택하지 않았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남긴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당연한 말 아닌가,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실업 이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하루들을 보내다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떠올렸을 때, 그 말이 갑자기 다르게 읽혔습니다. 당연한 말이 아니라,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상실을 경험한 모든 사람에게 피투성(Geworfenheit)과 무상(無常)이라는 두 개의 렌즈를 건네며 묻습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뒤, 당신은 어떻게 살 것입니까.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불길 속에서 굳어버린 소년 — 피투성이란 무엇인가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2026. 9. 27.
모두가 힘든데도 우리는 왜 명절에 모이는가 《걸어도 걸어도》와 공자의 예, 그리고 돌봄윤리 밥상 위에 생선이 놓입니다. 어머니가 아침부터 손질한 것입니다. 가족들은 별말 없이 젓가락을 듭니다. 그런데 그 생선이 놓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이 들어갔는지,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2008)를 보다가 저는 이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영화 속 식탁이 이번 추석 명절 시댁 밥상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앉아 있고, 음식은 풍성하고, 그런데 어딘가 아무도 편하지 않은 그 공기.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먼저 영화를 감상하셔도 좋습니다.말하지 않은 것들이 식탁 위에 쌓인다영화는 딱 하루를 담습니다. 오래전 바다에서 세상을 떠난 장남 준페이의 기일, 남은 가족들이 부모 집에 모이는 하루입니다. 차남 료타는 재혼.. 2026. 9. 26.
명절 선물은 사랑일까, 체면일까 《소공녀》와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정말 필요한 것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이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집보다 위스키와 담배가 중요하다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명절을 앞두고 마트 진열대 앞에 멍하니 서 있던 어느 오후, 저는 그 대사의 의미를 조금 다른 곳에서 만났습니다.집을 포기한 여자가 진짜 지킨 것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만,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먼저 말씀드립니다. 2018년 전고운 감독의 첫 장편 《소공녀》는 가사도우미 미소의 이야기입니다. 새해가 되면서 월세가 오르고 담배와 위스키 가격까지 올랐지만 그녀의 일당은 그대로입니다. 미소는 결국 집을 포기합니다.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지킵니다.처음에 저는 이 선택을 .. 2026. 9. 25.
어르신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기쁨은 활동 능력이 커지는 상태다."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남긴 말입니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저는 솔직히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가을 장날, 자살예방 캠페인 서포터즈로 나가 설문지를 들고 어르신들 앞에 앉았다가 그 문장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혼자 오신 한 남자 어르신이 "수시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담담하게 적어 주셨을 때였습니다. 그분의 눈에는 불꽃이 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기다리다 지친 사람의 눈빛이었습니다. 사랑이 끊기면 삶의 힘도 같이 가늘어진다는 것을, 그날 저는 설문지 한 장으로 배웠습니다.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추창민 감독, 2011)를 보신 분들과 함께 그 장면들을 더듬어 보려 합니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께는 결말보다 감정의 결을 이야기.. 2026. 9. 24.
백만 달러가 거짓이어도 그 길은 진짜였다 《네브래스카》와 보부아르의 노년, 공자의 가족 아무 일도 없는 하루가 있었습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교육 이틀이 끝난 다음 날이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상하게 텅 빈 느낌이 들었습니다. 블로그 조회수는 0이었고, 캘린더에는 그 하루만 유일하게 공백이었습니다. 억지로 귀농인의 집 방문을 일정에 집어넣고 길을 나섰는데, 마을에 들어서고 나니 2년 전 체험마을 운영자님과 사무장님께 추석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트에서 작은 선물을 샀고, 얼떨결에 점심을 함께 먹었습니다. 배추밭에 물을 주고 늙은 호박을 정리하다 보니 가로등이 켜져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던 하루가 어느새 가득 차 있었습니다.그 날 저녁, 저는 《네브래스카》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길을 나선 노인의 이야기가,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았던 제 하.. 2026. 9. 23.
이 나이에 무슨 꿈이냐고 묻는다면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와 보부아르가 말하는 새로운 가능성 "이 나이에 무슨 꿈이야."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이상하게도 반박할 말이 금방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억울하기도 한 그 기분.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를 보고 나서야 그 이상한 감각의 정체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이미 영화를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스토리의 결말보다는 아다 해리스가 파리에서 마주한 장면들, 그 안에 숨어 있는 철학적 질문에 집중할 것입니다.아다가 드레스 앞에서 멈춘 이유1957년 런던, 가정부 아다 해리스는 고객의 옷장에서 크리스티앙 디올의 드레스를 발견합니다. 앤서니 페이비언 감독은 이 장면을 길게 끌지 않습니다. 아다의 손이 천천히 옷감에 닿고, 카메라는 그 손을 가만히 따라갑니다. 대사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침묵.. 2026.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