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화장실 문을 안에서 잠그고, 아들이 잠든 사이 혼자 울음을 삼키는 장면이 있습니다. 〈행복을 찾아서〉에서 제가 가장 오래 붙잡혀 있었던 장면입니다. 화면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사람이 거기 있습니다. 울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저도 압니다. 저 사람은 내일 아침에 일어날 거라는 걸. 그 확신이 어디서 오는지,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가 묻는 것은 '어떻게'가 아니라 '왜'입니다
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는 똑똑합니다. 부지런합니다. 포기도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 사람의 능력보다 그 능력을 작동시키는 연료에 더 오래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무허가 판매원으로 뛰어다니면서도, 노숙자 쉼터 앞에 줄을 서면서도, 그의 눈은 항상 뭔가를 향해 있습니다. 아들 크리스토퍼입니다. 아이가 잠든 얼굴을 보는 그 짧은 컷들이 사실상 이 영화의 중심축이라고 봅니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가 남긴 말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모든 어떻게를 견딜 수 있다."
그는 이것을 니체에게서 빌려왔지만, 직접 몸으로 증명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수용소에서 아내를 잃고, 원고를 빼앗기고, 매일 죽음을 목격하면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내일의 이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를 정리한 것이 로고테라피, 그러니까 의미를 통한 치유라는 개념인데,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삶이 나를 위해 의미를 준비해 놓는 게 아니라, 내가 삶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버티는 힘이 생긴다는 것. [출처: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크리스 가드너가 바로 그 경우입니다. 그는 행복해지고 싶어서 버틴 게 아닙니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버텼습니다. 그 차이가 작아 보여도, 영화 전체를 다르게 읽게 만드는 균열입니다.
감독 가브리엘 무치노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행복을 찾아서〉 이전에도 〈마지막 키스〉 같은 작품에서 인물이 선택의 기로에 서는 순간을 집요하게 포착했습니다. 그에게 영화는 결과보다 과정 안의 표정을 담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성공담처럼 보이면서도 끝내 성공담으로 소비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메라는 크리스가 주식 중개인 자리를 얻는 순간보다, 그 자리를 위해 짐을 싸는 새벽에 더 오래 머뭅니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는 끝까지 말하지 않습니다
사실 〈행복을 찾아서〉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직접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정직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제목의 원문은 The Pursuit of Happyness입니다. Happiness가 아닙니다. happyness라는 일부러 틀린 철자는 실제로 크리스토퍼가 다니던 보육원 벽에 적혀 있던 글자를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이 사소한 디테일 하나가 저는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완성되지 않은 글자. 추구하는 중인 상태. 영화는 행복을 완성된 형태로 제시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프랭클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행복은 직접 겨냥할 수 있는 과녁이 아니라는 것.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 그것의 부산물로 따라오는 감각이라고요. 행복을 목적지로 설정하는 순간, 오히려 손에서 빠져나간다는 역설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힘든데도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건네는 말들이 얼마나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가 하는 것. "조금만 참으면 행복해질 거야"가 아니라, "지금 네가 왜 여기 있는지 알고 있느냐"가 더 정확한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행복을 찾아서〉가 가끔 자기계발 영화로 분류되는 것을 볼 때마다 조금 안타깝습니다. 이 영화는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유를 붙들고 있으면 무너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꼭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의 손을 잡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한 이유가 됩니다.
삶을 버티게 하는 이유에 대해 프랭클이 정리한 세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성취하는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거나
- 아름다운 것을 경험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만남에서 의미를 얻거나
-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느냐에서 의미를 찾거나
크리스 가드너는 셋 다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중 하나도 완벽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냥 버텼습니다. 그 버팀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출처: 빅터 프랭클 연구소, logotherapy.org, 프랭클 사상 소개 자료]
암전된 화면 앞에서 저는 한참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크리스 가드너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났는데도 이상하게 가볍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영화가 계속 묻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당신에게는 지금, 무엇이 이유입니까. 그 질문이 극장 바깥까지 따라나왔습니다.
참고: 나무위키 — 행복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