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어바웃 타임》은 시간여행 영화가 아니라 가족과 사랑,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공자의 가족 철학은 사랑을 소유가 아니라 책임과 성장을 돕는 관계로 이해한다.
자녀의 독립은 부모와의 이별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다.
부모에게도 자녀의 독립은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소중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식탁에 빈자리가 생긴 날, 저는 한참 그 자리를 바라봤습니다. 분명 바라던 일이었는데 기쁨보다 허전함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설명할 말을 찾다가 《어바웃 타임》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영화는 묻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곁에 두는 것일까요, 아니면 내보내는 것일까요. 공자의 가족 철학과 함께 이 질문을 천천히 따라가 봤습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던 이유가 따로 있었다
《어바웃 타임》은 리처드 커티스 감독이 2013년 발표한 작품입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만, 이 영화를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로 기억하신다면 한 번 더 볼 이유가 충분합니다.
주인공 팀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얻습니다. 처음엔 사랑을 되찾으려 쓰고, 실수를 지우려 씁니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팀이 가장 절박하게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따로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해변을 걷던 오후, 가족이 모여 웃던 밥상머리였습니다.
저도 이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퇴직 후 홀가분해지리라 생각했던 그 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대형 TV를 들여놓고 영화를 마음껏 보겠다 다짐했던 저에게 돌발 변수가 찾아왔습니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수험 생활을 하던 아들이 공무원 시험, 자격증 취득을 반복하며 지원을 요청해왔고, 저는 결국 귀농귀촌 교육을 받고 지방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이 짐 가방을 들고 제가 있는 곳 비좁은 방으로 왔습니다. 이번엔 달랐습니다. "엄마 일하는 곳 근처에서 저도 일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두 달을 지켜봤습니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독립했습니다.
팀이 아버지와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던 것처럼, 저는 그 두 달이 제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를 아들이 짐을 싼 뒤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공자가 말한 효(孝)는 순종이 아니었다
이 영화를 철학적으로 읽을 때 공자의 가족론이 자꾸 겹쳐 보입니다. 공자는 효(孝)를 강조했는데, 많은 분들이 효를 단순한 순종이나 복종으로 이해하십니다. 그런데 원전을 찬찬히 읽으면 뜻이 다릅니다.
공자가 말한 효란 가족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책임을 다하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부모 역시 자녀가 세상에 바르게 설 수 있도록 기르는 것까지 포함합니다(출처: 공자, 『논어』 학이편).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성장을 돕는 관계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인(仁)이라는 개념도 함께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仁)이란 인간이 타인과 맺는 관계 속에서 실천되는 사랑과 어짊을 의미합니다. 공자는 이것이 거창한 사상이 아니라 밥을 함께 먹고, 함께 걷고, 곁에서 웃는 일상 속에서 완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이게 제 상황과 무슨 관계인가 싶었습니다. 아들의 경제적 독립을 기다리던 3년은 인(仁)의 실천이라기보다 지쳐가는 시간에 더 가까웠으니까요. 그런데 《어바웃 타임》의 아버지를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아버지는 아들에게 능력을 가르쳐 주되, 아들의 시간을 대신 살지 않습니다. 그게 공자가 말한 부모의 역할과 다르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영화 속에서 관계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장면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 아버지는 팀에게 시간여행 능력을 물려주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쓸지는 팀에게 맡깁니다.
- 팀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아버지와 나눈 평범한 산책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깨닫습니다.
- 부모와 자녀는 서로를 붙잡지 않기 때문에 진짜로 연결됩니다.
손을 놓아주는 것도 사랑이다
수업 자료나 육아서에는 "자녀를 독립시켜야 한다"는 말이 흔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오면 머리와 마음이 따로 움직입니다. 제가 딱 그랬습니다.
아들이 짐을 싸던 날 저는 기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문이 닫히고 나서 부엌에 혼자 서 있는데, 이게 기쁨인지 상실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두 감정이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이 감정을 분리-개별화(Separation-Individu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분리-개별화란 자녀가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심리학자 마거릿 말러가 이 개념을 정립했으며, 건강한 독립일수록 부모에게도 크고 작은 상실감이 따른다고 설명합니다(출처: 마거릿 말러, 『유아의 심리적 탄생』). 그러니 그날 제가 느낀 감정은 이상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대로 사랑했다는 증거에 가까웠습니다.
《어바웃 타임》에서 팀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매일 하루를 두 번 살아라. 한 번은 그냥, 한 번은 그 순간을 제대로 느끼면서." 이 대사가 저는 부모에게도 해당된다고 읽힙니다. 자녀가 옆에 있을 때 그냥 보내지 말고, 그 평범한 하루를 제대로 느끼라는 말로요.
아들이 독립한 지금, 저에게도 새로운 시간이 생겼습니다. 귀촌 생활을 더 깊이 가꿀 수도 있고, 미뤄두었던 일들을 다시 꺼낼 수도 있습니다. 자녀의 독립이 부모의 인생을 끝내지 않는다는 걸, 오히려 새로운 막을 여는 신호일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는 조용히 이야기합니다.
자녀를 보내는 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사랑이 열매를 맺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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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볼 질문
부모의 사랑은 자녀를 곁에 두는 것일까요, 아니면 세상으로 힘껏 보내는 것일까요?
자녀의 독립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우리 가족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였으며, 앞으로 어떤 시간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으신가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시간여행 이야기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독립을 경험하고 나서 다시 보니,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놓아주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당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 삶에서 손을 꼭 쥐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인가요,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가요. 저는 아직 그 경계가 흐릿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계속 다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