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소니 헤이스가 피트레인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카메라는 그의 등 뒤에서 아주 천천히 따라붙습니다. 엔진 소리가 아직 들리지 않는 그 찰나, 그는 잠깐 멈춥니다. 아주 짧게. 관객 대부분은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 순간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지금 상대 드라이버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출발 신호를 보내고 있구나, 라고.
가장 무서운 적은 옆 차선에 없다
극장을 나오면서 한참을 멍하니 걸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엔진 소리가 귓속에 남는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F1〉은 드라이버들이 서로를 이기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0.1초를 단위로 순위가 바뀌고, 전략이 뒤집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레이싱보다 드라이버들의 얼굴을 더 자주 봤습니다. 코너를 앞두고 이를 악무는 순간, 피트에서 전달받은 지시를 무시하고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는 순간, 스핀 이후 차를 멈추지 않고 다시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그 얼굴들은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대를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자기 자신을 겨우 버텨내는 표정이었습니다.
왕양명이 남긴 말이 떠올랐습니다. "산중의 적은 이길 수 있어도 심중의 적은 이기기 어렵다." 밖에 있는 경쟁자는 전략으로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속에서 올라오는 두려움, 익숙함에 기대고 싶은 욕구, 어차피 안 된다는 자기 확신 같은 것들은 어떻게 이깁니까. 〈F1〉이 묻는 것은 바로 그겁니다.
니체는 트랙을 좋아했을 것이다
저는 요즘 나이를 핑계로 많은 것을 미루고 있습니다. 귀농귀촌을 준비한다고 말한 게 벌써 3년째인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자격증을 따봐야 쓸모가 없을 것 같고, 단기 일자리만 찾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습니다. 그게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그것이 자기 극복을 포기한 것이 아닌지 찜찜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니체가 말한 자기 극복이란 거창한 개념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이다"라고 썼는데, 여기서 극복의 대상은 타인이 아닙니다. 어제의 내가 그어둔 선, 내가 스스로에게 허용한 한계 그 자체입니다. [출처: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 1883]
그리고 그는 실패를 피해야 할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실패와 고통을 포함한 자신의 운명 전체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게 바로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라고 불리는 태도입니다. 좋은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충돌도 스핀도 실격도 내 레이스의 일부라고 끌어안는 것. 〈F1〉의 드라이버들이 매 경기 후 무너지지 않고 다음 주 다시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것은 그 감각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역시 그 선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농 3년째의 우왕좌왕도, 자격증 공부를 포기한 것도, 어쩌면 운명애로 받아들여야 할 제 레이스의 한 구간인지 모르겠다고요.
조셉 코신스키가 포착한 것
〈F1〉의 연출을 맡은 조셉 코신스키는 이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가진 영화를 만들어왔습니다. 〈탑건: 매버릭〉에서 그는 인간 파일럿과 드론의 대결 구도를 통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위기의 순간에 직관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F1〉에서도 그 시선은 일관되게 이어집니다.
영화 속 팀은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합니다. AI 시뮬레이션이 최적의 피트 타이밍을 제시하고, 엔지니어가 헬멧 너머로 지시를 내립니다. 그런데 코너 직전, 브레이크 타이밍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드라이버의 발입니다. 두려움과 함께, 그 발이 움직입니다.
코신스키의 카메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콕핏 안 좁은 시야, 손의 미세한 떨림, 숨을 참는 소리. 이 영화의 진짜 스펙터클은 200km/h의 속도가 아니라 그 속도 안에서 혼자인 인간의 얼굴입니다.
〈F1〉이 레이싱 영화이면서도 스포츠 영화의 문법을 비껴가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코신스키는 승리보다 선택의 순간을 찍는 감독입니다. 출처: 씨네21, 〈탑건: 매버릭〉 감독 조셉 코신스키 인터뷰
다시 출발선에 선다는 것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이 있습니다.
- 나는 지금 누구를 이기려 하고 있는가, 아니면 어제의 나를 이기려 하고 있는가
- 실패를 피해야 할 것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 AI와 기술이 많은 것을 대신해주는 시대에, 내가 직접 내려야 하는 결정은 무엇인가
이 세 가지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제 경우로 바꿔보면 더 선명해집니다. 귀농을 준비하면서 결단을 미루는 것은 현실적인 판단인가, 아니면 심중의 적에게 지고 있는 것인가. 그 답을 이 영화는 주지 않습니다. 대신 다시 출발선에 서는 드라이버의 등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F1〉이 끝나고 암전된 화면 앞에서 저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브래드 피트의 소니 헤이스가 결국 자신의 레이스를 완주했는지보다, 그가 피트레인에서 잠깐 멈췄던 그 0.1초가 계속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진짜 레이스는 그 멈춤 이후에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제의 내가 그어둔 선 앞에서, 오늘의 내가 다시 출발 신호를 보내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남긴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