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63 〈행복을 찾아서〉 빅터프랭클— 행복은 쫓는 것인가, 따라오는 것인가 지하철 화장실 문을 안에서 잠그고, 아들이 잠든 사이 혼자 울음을 삼키는 장면이 있습니다. 〈행복을 찾아서〉에서 제가 가장 오래 붙잡혀 있었던 장면입니다. 화면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사람이 거기 있습니다. 울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저도 압니다. 저 사람은 내일 아침에 일어날 거라는 걸. 그 확신이 어디서 오는지,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계속 생각했습니다.이 영화가 묻는 것은 '어떻게'가 아니라 '왜'입니다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는 똑똑합니다. 부지런합니다. 포기도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 사람의 능력보다 그 능력을 작동시키는 연료에 더 오래 카메라를 들이댑니다.무허가 판매원으로 뛰어다니면서도, 노숙자 쉼터 앞에 줄을 서면서도, 그의 눈은 항상 뭔가를 향해 있습니다. 아들 크.. 2026. 6. 21.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과 한스 요나스— 기술은 누구의 손에 있는가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인공지능과 기술 통제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한스 요나스의 책임 윤리란 무엇인가기술 발전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과 위험AI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곧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두 문장 사이에서 얼마나 오래 멈춰본 적이 있을까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은 그 짧고도 깊은 간격을 온몸으로 통과하는 영화입니다. 이단 헌트가 막으려는 것은 총도 핵폭탄도 아닙니다. 그것은 스스로 판단하기 시작한 무언가입니다.보이는 것: 세계를 통제하려는 존재와 그것을 막으려는 인간〈파이널 레코닝〉의 위협은 이전 시리즈와 결이 다릅니다. 과거의 적들은 설득되거나, 설득에 실패하면 제거될 .. 2026. 6. 21. 〈미키 17〉 과 니체의 영원회귀 — 죽어도 살아야 한다면, 삶은 의미 있는가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영화 《미키 17》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니체의 영원회귀와 초인 사상죽음은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가반복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실패와 재도전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미키는 또 죽는다. 방호복도 없이 행성의 독성 지형 속으로 밀어 넣어지고, 그 몸은 산산이 부서지거나 녹아 없어진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는 다시 깨어난다. 기억을 품은 채, 죽기 직전의 공포를 고스란히 기억한 채로. 〈미키 17〉이 불편한 이유는 화면이 잔인해서가 아닙니다. 죽음이 그토록 가볍게 소비되는 세계에서,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관객에게 너무 익숙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죽음이 리셋되는 세계, 그래서 오히려 더 잔인한 이야기봉준호 감독은 장르의 문법을 빌려 철학적 질문을 숨겨두.. 2026. 6. 20. 〈다키스트 아워〉 칸트 — 대화가 멈출 때 전쟁은 시작된다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G7 정상회의가 왜 중요한가국제 사회에서 외교가 갖는 의미영화 《다키스트 아워》가 보여주는 지도자의 책임칸트가 말한 영구평화론은 무엇인가평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940년 5월, 영국 의회. 처칠은 단상 앞에 서 있습니다. 화면은 그를 낮은 앵글로 잡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 라이트 감독은 그를 자주 군중 속에 파묻힌 인물로 보여줍니다. 지하철 안에서 런던 시민들과 뒤섞인 채, 그는 묻습니다. "우리는 싸워야 합니까?" 이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건, 그것이 전쟁 영화의 문법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영웅은 홀로 결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듣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문득 이런 질문을 품게 됐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혹시, 혼자 결정하지 않겠다는 약속 같은 것이 .. 2026. 6. 19. 〈Her〉 그녀와 하이데거 — 완벽한 관계가 인간을 외롭게 한다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AI 시대에 왜 인간의 외로움이 더 커질 수 있는가영화 《Her》가 지금 다시 주목받는 이유하이데거가 말한 기술의 본질은 무엇인가AI와 반도체 경쟁이 우리 삶에 던지는 질문기술 발전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키는 방법 편안할수록 우리는 더 고독해진다. 역설처럼 들리지만, 〈Her〉를 보고 나면 이 문장이 역설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스파이크 존즈가 2013년에 내놓은 이 영화는 AI와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찰 없는 관계가 인간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가장 정확하게 짚어낸 사람이 스크린이 아니라 20세기 독일의 한 철학자였다는 사실이 저를 계속 이 영화로 돌아오게 합니다.마찰 없는 세계, 혹은 불편함이 사라진 .. 2026. 6. 18. 〈클래스〉와 하버마스 — 교실에서 대화는 왜 실패하는가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영화 《클래스》가 왜 지금 교육 현실과 닮아 있는가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은 무엇인가민주주의와 교육은 왜 대화를 필요로 하는가학교에서 권위와 자유의 균형은 왜 어려운가학생 참여와 소통은 왜 점점 약해지고 있는가 솔직히 첫 관람에선 당혹감이 먼저였습니다. 〈클래스〉는 극적인 반전도, 감동적인 화해 장면도 없습니다. 로랑 캉테 감독은 카메라를 교실 안에 고정해두고 그냥 지켜봅니다. 교사와 학생들이 말하고, 끊고, 무시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과정을. 영화가 끝나고서야 알았습니다. 이건 학교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우리가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 자체를 묻고 있었구나.교실이라는 소우주 — 말이 권력이 되는 공간〈클래스〉의 배경은 파리 외곽의 한 중학교입니다. 이민자 가정 출신의 .. 2026. 6. 17. 〈참교육〉과 공자 — 학교는 왜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잃었는가 솔직히 처음 〈참교육〉을 틀었을 때, 저는 이걸 그냥 통쾌한 복수극으로만 볼 생각이었습니다. 학교폭력 가해자를 응징하는 교사의 이야기,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했습니다. 카타르시스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개념으로, 극적 긴장을 통해 감정이 해소되고 정화되는 경험을 뜻합니다. 그런데 회를 거듭할수록 저는 예상치 못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통쾌함이 아니라 어떤 씁쓸함. 그것이 이 글의 출발점입니다.무너진 교실, 무너진 관계 — 드라마가 건드린 진짜 균열〈참교육〉의 교실 장면들은 일종의 알레고리로 읽힙니다. 알레고리란 표면의 이야기 뒤에 다른 층위의 의미가 숨어 있는 서사 방식을 뜻합니다. 드라마 속 학교는 단순히 폭력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방어 대상으로 바라보는 공간입니다.. 2026. 6. 16. 〈공동경비구역 JSA〉와 레비나스— 얼굴을 마주한 순간, 적은 사라졌다 적을 죽이는 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아니,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적'이었는가. 〈공동경비구역 JSA〉는 바로 그 질문을 총성 대신 초코파이 하나로 꺼내듭니다. 2000년 개봉 당시, 저는 이 영화가 스릴러인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암전된 화면이 켜지고 자막이 올라가던 그 순간, 가슴속에 남은 것은 범인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왜 서로를 죽여야 했을까"라는, 답이 없는 질문이었습니다.판문점의 미장센, 혹은 분단이 만든 시각 질서영화는 처음부터 공간으로 말합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 이 영화의 첫 번째 언어입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앵글, 조명, 배우의 위치, 소품 배치 등 화면 안에 구성된 모든 시각 요소를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박찬욱 .. 2026. 6. 15. 〈1984〉와 미셸푸코— 우리는 지금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가 어느 날 아침, 스마트폰 알림을 끄면서 문득 멈췄습니다. 어젯밤 제가 검색했던 단어들이 오늘 피드에 광고로 떠 있었고, 며칠 전 친구와 나눈 대화 주제가 추천 콘텐츠로 줄지어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 순간 〈1984〉의 텔레스크린이 떠올랐습니다. 조지 오웰이 그린 감시 장치와 제 손 안의 화면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 그 불편함이 이 글을 쓰게 했습니다.텔레스크린이 꺼지지 않는 세계마이클 래드퍼드 감독이 연출한 1984년작 〈1984〉는, 오웰의 소설이 출판된 지 35년이 지난 해에 완성됐습니다. 그 타이밍 자체가 이미 하나의 알레고리(allegory)였습니다. 알레고리란 표면의 이야기 아래 다른 층위의 의미를 숨겨두는 서사 방식으로, 이 영화는 독재 국가를 그리는 척하며 실은 권력이 인간 존재에 침.. 2026. 6. 14. 〈1987〉 과 위르겐 하버마스— 말이 멈출 때 민주주의는 무엇이 되는가 〈1987〉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저는 울 준비를 하고 들어갔습니다. 고문 장면이 나올 거라는 걸 알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마주하게 될 거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오래 남은 것은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진실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침묵이 어떤 고문 장면보다 더 무거웠습니다. 그리고 극장을 나오며 생각했습니다. 저도 지금, 무언가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닐까.침묵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민주주의란 무엇이었나영화는 1987년 1월에서 시작합니다. 경찰은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을 내놓습니다. 이 문장은 지금 들어도 기묘한 울림이 있습니다. 단순히 거짓말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거짓말이.. 2026. 6. 13. 청년은 왜 시대 앞에서 괴로워하는가─ 《동주》 × 장폴 사르트르 《동주》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 영화가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을 줄 몰랐습니다. 독립운동 영화라는 말에 어떤 뜨거움을 기대했는데, 막상 스크린 앞에 앉으니 영화는 시종일관 낮은 목소리로만 말했습니다. 흑백의 화면 속 청년은 총을 들지도, 군중을 이끌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되묻고 또 되물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묘하게 멈칫했습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영화 속 침묵이 던지는 철학적 물음이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건 단순한 서사가 아니었습니다. 윤동주라는 인물이 가장 자주 하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자기 응시입니다. 그는 사촌 송몽규가 직접 투쟁의 길로 나아가는 동안, 혼자 방 안에서 시를 씁니다. 그리고 그 행위 자체를 부끄러워합니다. ".. 2026. 6. 12. 왜 권력은 생각하는 청년을 두려워할까─ 《박열》 × 한나 아렌트 재판정에서 박열은 조선 옷을 입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선언이었습니다. 굴복하지 않겠다는, 당신이 정의한 세계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법정이 아니라 철학 강의실을 떠올렸습니다. 박열이 권력을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본질을 해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재판정의 박열, 아렌트가 말한 '생각하는 인간'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독립운동 서사 정도로만 받아들였습니다. 두 번째로 봤을 때, 재판 장면이 완전히 다르게 읽혔습니다. 일본 제국의 검사들이 박열을 심문하는 동안, 정작 당황한 쪽은 권력이었습니다. 그는 답을 숨기거나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질문을 되돌려 보냈습니다. 왜 국가는 인간의 사상을 두려워하는가, 라고.한나 .. 2026. 6. 11. 이전 1 2 3 4 5 6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