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 〈참교육〉을 틀었을 때, 저는 이걸 그냥 통쾌한 복수극으로만 볼 생각이었습니다. 학교폭력 가해자를 응징하는 교사의 이야기,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했습니다. 카타르시스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개념으로, 극적 긴장을 통해 감정이 해소되고 정화되는 경험을 뜻합니다. 그런데 회를 거듭할수록 저는 예상치 못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통쾌함이 아니라 어떤 씁쓸함. 그것이 이 글의 출발점입니다.
무너진 교실, 무너진 관계 — 드라마가 건드린 진짜 균열
〈참교육〉의 교실 장면들은 일종의 알레고리로 읽힙니다. 알레고리란 표면의 이야기 뒤에 다른 층위의 의미가 숨어 있는 서사 방식을 뜻합니다. 드라마 속 학교는 단순히 폭력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방어 대상으로 바라보는 공간입니다. 교사는 학생을 두려워하고, 학생은 교사를 신뢰하지 않으며, 학부모는 학교를 서비스 제공자로 인식합니다.
이 구도는 현실과 너무 닮아 있어서 불편합니다. 서이초 사건 이후 현장 교사들이 토로한 이야기들, 즉 악성 민원,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공포, 교실 통제의 붕괴는 드라마의 배경과 겹쳐집니다. 드라마가 화제를 모은 이유는 폭력 장면의 쾌감 때문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미 그 균열을 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목한 건 드라마의 미장센(mise-en-scène)입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앵글, 조명, 배우의 위치, 공간 구성 등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소를 가리킵니다. 〈참교육〉의 교실은 언제나 비좁고 어둡게 연출됩니다. 교사가 서야 할 교단은 무력화된 공간으로, 학생들은 제각각 흩어져 있습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 화면 구성은 공동체의 중심이 사라진 상태를 시각화하고 있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공자가 말한 예(禮) — 형식이 아니라 관계의 언어
많은 사람들이 공자의 예(禮)를 낡은 형식, 혹은 권위에 대한 복종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공자가 『논어』에서 반복해서 강조한 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공동의 언어에 가깝습니다. 상대를 인간으로 대하겠다는 최소한의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이 쌓여 공동체가 된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논어 안연편 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이다(克己復禮爲仁)." 인(仁)이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상대를 인간으로 대하려는 근본적인 태도를 뜻합니다. 공자에게 교육이란 바로 이 인을 기르는 과정이었습니다. 지식을 많이 쌓는 일이 아니라, 인간다운 관계를 맺는 법을 익히는 일.
이 렌즈로 지금의 교권 논쟁을 보면 풍경이 달라집니다. 지금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히 교사의 권위가 약해진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가 사라진 상태, 즉 서로를 존중하는 공동의 언어가 해체된 상황입니다. 아래는 제가 드라마를 보면서 정리한, 예가 무너질 때 나타나는 세 가지 징후입니다.
- 상대를 향한 민원과 신고가 관계 대신 법적 방어를 우선하게 만든다.
- 책임보다 권리가 앞서면서 공동체 윤리가 개인의 요구로 분열된다.
- 교사와 학생 모두 "문제가 생기지 않게만 하자"는 방어적 자세로 수렴한다.
공자의 관점에서 이것은 교권 붕괴가 아니라 공동체 윤리의 붕괴입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자유와 책임 — 〈참교육〉이 불편한 진짜 이유
〈참교육〉의 주인공이 사용하는 방식, 즉 폭력을 통한 교정은 현실에서는 허용될 수 없습니다. 저도 그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단순한 쾌감이 아닌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변증법적 긴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변증법이란 서로 대립하는 두 힘이 충돌하면서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내는 사유 방식을 말합니다. 드라마는 잘못된 방법으로 옳은 질문을 던집니다.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현대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학생 인권 강화의 흐름 역시 그 자체로는 분명 필요한 방향이었습니다. 과거 학교의 강압적 통제와 체벌은 교육이 아니라 억압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권리는 강조되었지만 책임과 공동체 윤리는 충분히 함께 이야기되지 못했습니다.
출처: 씨네21, 〈참교육〉 리뷰 에서도 지적하듯, 이 드라마가 촉발한 논쟁의 핵심은 처벌과 통제의 강도가 아닙니다. 문제는 학교라는 공동체가 서로를 신뢰하는 관계의 장이 될 수 있는가, 그 가능성 자체입니다.
공자는 자유가 관계 안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학생의 자유, 교사의 권위, 학부모의 권리는 서로를 전제로 존재합니다. 한쪽만 극단적으로 커지면 공동체 전체가 흔들립니다. 감독이 의도했든 아니든, 〈참교육〉의 교실 붕괴 장면은 바로 그 균형이 무너진 순간을 시각화하고 있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그것이 이 드라마가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서는 지점입니다.
〈참교육〉을 보고 나서 저는 오래 이 질문을 안고 있었습니다. 학교는 지금 인간을 성장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관리하고 있는가. 공자가 말한 인(仁), 즉 상대를 인간답게 대하려는 마음이 교육의 출발점이라면, 우리는 지금 그 출발점 이전 어딘가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더 강한 처벌과 통제만으로는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철학 영화 이야기
1️⃣ 《죽은 시인의 사회》 × 소크라테스
→ 왜 좋은 스승은 정답보다 질문을 남길까
2️⃣ 《조커》 × 푸코,홉스,사르트르
→ 괴물은 만들어지는가
3️⃣ 《클래스》 × 하버마스
→ 민주적인 교육은 가능할까
🔎 생각해볼 질문
교권은 왜 단순 권위주의와 다른가?
자유와 책임은 왜 함께 가야 할까?
학교는 지금 인간을 성장시키고 있는가, 관리하고 있는가?
좋은 교육이란 결국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