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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22

농촌에 산다는 것은 무엇을 선택하는 일일까요? — 영화 《시골영웅》(영어 로컬 히어로)와 하이데거의 거주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체 철학 이사를 앞두고 짐을 싸본 적이 있으십니까. 박스에 책을 넣다가, 아무 이유 없이 손이 멈추는 순간이 있습니다.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이 놓여 있던 시간이 자꾸 눈에 밟혀서입니다. 저는 그 멈춤이 뭔지 오래 몰랐습니다. 1983년에 만들어진 빌 포사이스 감독의 영화 《로컬 히어로》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질문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장소를 떠난다는 것과 장소에서 산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장소를 소유하는 것과 거주하는 것은 다릅니다영화를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 보려 합니다. 결말 이야기는 아니고, 주인공 맥킨타이어가 페르네스 마을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시선에 대해서입니다.그는 석유회사 직원으로, 스코틀랜드의 이 작은 해안 마을을 매입하러 왔습니다. 그에게 마을은 계약서 위의.. 2026. 10. 14.
손님을 맞이하고서야 알게 된 환대의 무게 — 《카모메 식당》,<안경>과 함께 살아가는 기술 손님이 돌아간 뒤 현관문을 닫는 순간, 이상하게도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반가웠다는 따뜻함과, 고됐다는 솔직한 피로감. 그 두 감정이 사실 모순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건, 헬싱키의 작은 일식당을 배경으로 한 영화 한 편을 다시 떠올리면서였습니다. 환대란 무엇인지, 그리고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조용히 묻는 두 편의 영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 식당》(2006)과 《안경》(2007)을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밥 한 끼가 말하는 것들 — 환대의 무게를 처음 느낀 날어느 날 멀리 사는 지인이 찾아왔습니다.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가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이틀 동안 지역 곳곳을 함께 돌아다녔습니다. 배웅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제가 처음으로 .. 2026. 10. 11.
농촌에 내 일자리가 없는 것일까, 내 자리가 없는 것일까《로컬 히어로》와 삼돌이마을에서 생각하는 귀농의 의미 고용24 화면을 닫으며 저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검색어를 바꿔가며 한 시간쯤 일자리를 찾았는데, 화면을 끄고 나서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농촌에는 정말 나에게 맞는 일자리가 없는 걸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다가, 그날 오후 귀농귀촌 교육에서 들은 영월 삼돌이마을 이야기와 뒤섞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오래전에 본 영화 한 장면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빌 포사이스 감독의 1983년 영화 《로컬 히어로》였습니다.땅을 보던 사람이 장소를 보게 되기까지영화 속 주인공 맥은 미국 텍사스의 석유회사 직원입니다. 회사의 지시로 스코틀랜드 북부 해안 마을 퍼니스를 사들이러 갑니다. 처음 맥에게 그곳은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몇 헥타르인지, 얼마를 제시하면 계약이 성사될지 계산하.. 2026. 9. 19.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가능한 사랑》과 아리스토텔레스/키르케고르가 묻는 귀농의 선택 고구마를 다 캐고 난 뒤 텅 빈 밭을 바라보다가, 저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흙만 남은 밭이 이상하게도 지금 제 삶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뭔가 끝났는데, 다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 상태. 귀농인의 집 계약이 끝나가고, 월세 집이 나왔다는 소식이 왔고, 구직도 뜻대로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복잡한 마음 속에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영화 뉴스처럼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소식이 저를 한 시간 넘게 붙잡아두었습니다. 이창동이 선택한 새로운 길,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지혜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부부와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가 만나면서 서로의 삶과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입니다. 노동, 계급, 관계의 균열을 다룬다고 하.. 2026. 9. 15.
텃밭의 고구마와 아들의 직장 걱정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찬실이는 복도 많지》 × 에픽테토스 "네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하는 한, 너는 노예다." 에픽테토스가 이 말을 했을 때, 그는 로마 제국에서 실제로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텃밭에서 남편 전화를 받던 날 이 문장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텃밭 고구마와 아들 직장 걱정 사이에서, 내가 진짜 살고 있는 삶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2020년 김초희 감독이 연출한 장편 데뷔작입니다. 강말금, 윤여정, 윤승아, 배유람이 주연을 맡았고, 감독 자신의 실직 경험이 깊이 녹아 있습니다.찬실이가 잃은 것, 그리고 남은 것영화 프로듀서 찬실은 어느 날 갑자기 일을 잃습니다. 함께 일하던 감독이 술자리에서 급사하고, 준비 중이던 영화는 엎어집니다. 그녀가 잃은 건 직업만.. 2026. 9. 8.
가족도 결국 서로 다른 한 사람을 만나는 관계다《우리들》 × 마르틴 부버 저는 오랫동안 가족이란 주말에는 함께 있어야 완성되는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주말에 남편이 자전거를 타러 나가면 왠지 섭섭했고, 아들이 혼자 게임을 하고 있으면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영화 한 편이 그 생각을 조용히 흔들어 놓았습니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은 초등학생들의 이야기인데, 보고 나서 제 머릿속에 남은 건 아이들이 아니라 저 자신이었습니다.피구 게임과 가족 안에서 '역할'로 존재하는 것《우리들》에는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체육 시간, 피구 팀을 나누기 위해 아이들이 하나씩 선택받는 장면입니다. 주인공 선은 마지막까지 지목되지 못하다가 어쩔 수 없이 팀에 끼게 됩니다. 팀 안에서도 선은 눈치를 살피며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밟지도 않은 선을 밟았다는 이유로.. 2026. 8. 30.
내가 정착할 곳과 아들이 선택할 길 《죽은 시인의 사회》 × 에리히 프롬 솔직히 말하면, 저는 오늘 워크숍에서 꽤 많이 흔들렸습니다. 농촌에 정착하겠다고 준비하면서도 막상 오래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 앉으니 제가 얼마나 겉돌고 있는지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는 진짜 농촌에 정착할 거야?"라고 물었는데, 그 한 마디가 오히려 제 질문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도, 아들도, 결국 같은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워크숍이 드러낸 것, 정착의 민낯제가 참석한 자리는 도농순환 주민공모사업 워크숍이었습니다. 도농순환이란 도시와 농촌 사이를 오가며 자원과 사람이 상호 교류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단순히 농촌에 집을 얻는 것과는 다릅니다. 지역 사람들이 함께 문제를 발굴하고 사업을 구상하는 구조입니다. 저는 지인의 요청으로 참석했는데, 솔직히 처음.. 2026. 8. 28.
영화 <와일드 씽>과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가 주는 인생 2막의 위로 퇴직 후 3년째 지방에 내려와 텃밭과 일자리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귀농귀촌이 이렇게 막막할 줄은 몰랐거든요. 그러던 중 전직 동료들과 함께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손재곤 감독의 이었는데, 20년 만에 다시 무대를 꿈꾸는 중장년 댄서들의 이야기가 가슴 어딘가를 세게 건드렸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머릿속에 맴돈 건 "그래서 나는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영화가 건드린 것: "넌 이미 끝났어"라는 말에 저항하기영화 의 주인공들은 세기말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 출신입니다. 표절 논란으로 강제 해체된 뒤 20년이 지났고, 각자는 생계형 방송 리포터, 빚더미 위의 솔로, 재벌가 며느리라는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 2026. 7. 9.
왜 내 정성은 전해지지 않았을까?영화 《카모메 식당》으로 보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카모메 식당》은 진심과 기다림, 관계의 회복을 담은 영화이다.스피노자의 《에티카》는 타인의 반응보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행복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귀농은 농산물을 수확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과 기다림을 배우는 삶의 방식이다.부모의 사랑은 즉시 인정받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며 자녀의 삶 속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정성껏 키운 작물을 자녀에게 보냈다가 "먹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많이 보냈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귀농 실습 중 어렵게 수확한 채소를 큰 아들에게 보냈다가 돌아온 말이 딱 그 한마디였습니다. 농사는 결과가 아니라 마음을 심는 일이라는 걸, 그 순간만큼 뼈저리게 느낀 적이 없습니다.귀농 농업실습, 낭만과 현실의 거리귀농을.. 2026. 7. 1.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영화 《Into the Wild》로 보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자연 철학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Into the Wild》는 귀농과 자립, 자유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영화이다.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자연 속에서 단순하게 살아갈 때 인간은 본래의 자신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귀농은 단순히 시골로 이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주인이 되는 선택이다.진정한 자유는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아가는 데서 시작된다.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한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크리스토퍼가 자신의 통장 잔고 전부를 기부하고, 자동차에 불을 지르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화염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홀가분해 보였거든요. 그 순간 제가 느낀 건 부러움이었는지, 두려움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귀농귀촌을 두고 갈팡질팡하는 제 처지에서 다시 꺼내 보니, .. 2026. 6. 28.
〈F1〉과 니체 — 우리는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 요즘 서점가에 가보면 늘 베스트셀러 자리에 있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니체의 위버맨쉬라는 책입니다. 위버멘쉬(Übermensch, 한국어로 ‘초인’)는 단순히 신체적 능력이나 초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기존의 도덕·종교·사회적 규범에 의존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을 의미합니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소니 헤이스가 피트레인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카메라는 그의 등 뒤에서 아주 천천히 따라붙습니다. 엔진 소리가 아직 들리지 않는 그 찰나, 그는 잠깐 멈춥니다. 아주 짧게. 관객 대부분은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 순간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지금 상대 드라이버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출발 신호를 보내고 있구나, 라고.가장 무서운 .. 2026. 6. 27.
왜 인간은 과거로부터 도망치지 못할까─ 영화 《박하사탕》으로 보는 장폴 사르트르의 자유와 책임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영화 박하사탕이 지금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장폴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와 책임의 의미폭력의 시대가 한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가인간은 정말 자신의 선택대로 살아갈 수 있는가상처받은 시대 속에서도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인가 저도 처음에는 박하사탕이 그냥 무거운 영화 하나로만 기억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제천에서 3년째 살면서 진소마을이 촬영지였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관련 글을 쓰다가 뒤늦게 알게 됐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가까이에 있던 것을 멀리서 찾고 있었던 셈입니다.시간을 거꾸로 돌린 영화, 진소마을이 간직한 기억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진소마을은 영화 박하사탕(2000년 개봉, 감독 이창동)의 주요 촬영지입니다. 영화가 개봉한 지 25년 가.. 2026.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