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24 화면을 닫으며 저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검색어를 바꿔가며 한 시간쯤 일자리를 찾았는데, 화면을 끄고 나서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농촌에는 정말 나에게 맞는 일자리가 없는 걸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다가, 그날 오후 귀농귀촌 교육에서 들은 영월 삼돌이마을 이야기와 뒤섞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오래전에 본 영화 한 장면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빌 포사이스 감독의 1983년 영화 《로컬 히어로》였습니다.
땅을 보던 사람이 장소를 보게 되기까지
영화 속 주인공 맥은 미국 텍사스의 석유회사 직원입니다. 회사의 지시로 스코틀랜드 북부 해안 마을 퍼니스를 사들이러 갑니다. 처음 맥에게 그곳은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몇 헥타르인지, 얼마를 제시하면 계약이 성사될지 계산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맥이 마을에서 며칠을 보내며 조금씩 달라지는 그 순간들에서요. 그는 석유회사 직원으로서 마을을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기 시작합니다.
이 변화를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장소성(Placeness)입니다. 장소성이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사람의 경험과 기억, 관계가 쌓이면서 '의미 있는 곳'으로 변해가는 성질을 말합니다. 공간(Space)과 장소(Place)는 글자 하나 차이지만,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 살아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전혀 다른 무게를 갖습니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짓기, 거주하기, 사유하기」라는 강연에서 '거주함(Dwelling)'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했습니다. 거주함이란 그저 건물 안에서 잠을 자는 행위가 아닙니다. 하이데거가 말한 거주함은 한 장소와 관계를 맺고, 그 땅과 계절과 이웃과 천천히 얽혀가는 방식 전체를 뜻합니다(출처: 마르틴 하이데거, 「짓기, 거주하기, 사유하기」, 1951).
이 관점에서 보면 귀농귀촌은 '농촌으로 이사하는 것'보다 훨씬 긴 이야기입니다. 집 크기와 농지 면적과 병원까지의 거리를 확인하는 것, 그건 시작일 뿐입니다. 그 뒤에야 거주가 시작됩니다.
영화 속 맥도 그랬습니다. 그는 마을 술집 주인과 밥을 먹고, 해변을 걸으며 별을 보고, 사람들과 말을 섞으면서 퍼니스를 다르게 봅니다. 그 마을이 '사야 할 땅'에서 '살아가는 장소'로 바뀌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가 마을 사람들을 낭만적으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민들 중 상당수는 석유회사가 제시하는 돈에 솔직하게 관심을 보입니다. 순수한 시골 대 악한 자본이라는 단순한 구도가 아닙니다. 각자의 현실과 욕구가 있고, 그럼에도 그 땅에 쌓인 삶의 무게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장면들을 떠올리며 솔직히 처음엔 제 이야기인 줄 몰랐습니다. 맥이 느끼는 그 미묘한 변화가 지금 제가 겪고 있는 것과 닮아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마을은 완성품이 아니라 과정이다
그날 교육에서 들은 영월 운학삼돌이마을 이야기가 머릿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주민의 87%가 귀농·귀촌인이고, 원주민을 '박힌 돌', 귀농·귀촌인을 '굴러온 돌', 앞으로 올 사람을 '굴러올 돌'이라 부른다는 그 마을의 이야기 말입니다.
처음에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한 명이 엄청난 희생을 하면서 만들어낸 결과이겠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게 전부는 아닐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노력이 씨앗이 될 수는 있지만, 마을이 지속되려면 결국 여러 사람이 작은 역할씩을 보태야 합니다.
마을을 만드는 과정을 생각하면 아마 이런 단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 먼저 몇 사람이 뜻을 모아 공동의 방향을 정한다.
- 갈등이 생기면 회의를 열고 해결하려고 애쓴다.
-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마을의 기존 방식을 조금씩 바꾼다.
- 폐교 같은 유휴 공간을 함께 살려내 새 주민이 적응할 기반을 만든다.
- 축제, 동아리, 기록 활동으로 관계를 이어간다.
삼돌이마을도 처음부터 완성된 공동체였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주민회의 시간을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이니까요. 좋은 마을은 자연이 저절로 만들어주는 경치가 아니라, 사람이 오랫동안 관계를 쌓으면서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미국의 농부이자 작가 웬델 베리(Wendell Berry)는 평생 이 주제를 글로 써온 사람입니다. 그는 농촌 공동체와 장소, 지역경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뿌리내림'을 삶의 핵심으로 보았습니다. 베리에게 좋은 삶이란 시골에 산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내가 살아가는 땅을 알고, 그 계절을 알고, 이웃을 알고,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돌볼 수 있는지를 아는 것에 가깝습니다(출처: 미국 국립인문학재단(NEH), Wendell Berry 소개).
그 관점에서 보면 귀농은 도시 생활에 지쳐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더 싼 땅을 찾아 이동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돌보며 살아갈 것인지를 묻는 일입니다.
교육을 듣고 나서 저는 처음에 품었던 질문을 조금 고쳐 써보게 되었습니다. '농촌에 나에게 맞는 일자리가 없는 걸까'라는 질문을 '농촌에서 내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없는 걸까'로 바꿔보는 것입니다. 일자리와 역할은 다른 말입니다. 구직 사이트에 올라오는 직업명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 가령 마을 이야기를 기록하거나, 새로 온 사람이 적응하도록 돕거나, 사람들을 연결하는 일들이 마을에는 필요합니다. 그것들도 마을을 유지하는 역할입니다.
하루가 저물 무렵, 저는 아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하루를 일자리 검색으로 시작했는데, 하루의 끝에는 사람이 남았습니다. 어쩐지 그게 오늘 하루가 저한테 전해준 말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미 영화를 보신 분들과 함께 이 장면을 떠올려보고 싶습니다. 맥이 결국 텍사스로 돌아가 도시의 야경 대신 스코틀랜드 해변을 그리워하는 그 마지막 장면을요. 그는 무엇이 그리웠던 걸까요. 땅이었을까요,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그 안에서 잠깐 느꼈던 '자신의 자리' 같은 감각이었을까요.
저는 아직 답을 모릅니다. 다만 지금 찾고 있는 것이 '일자리'인지 '내 자리'인지, 조금씩 구별이 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볼 세 가지 질문
첫째, 나는 농촌에서 정말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살아갈 자리’를 찾고 있는 것일까?
소득을 얻는 일과 삶의 터전을 선택하는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닙니다.
둘째, 내가 새로운 마을에 들어간다면 그곳에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까?
경력이나 기술뿐 아니라 요리, 글쓰기, 교육, 사람을 연결하는 능력, 행사 참여, 기록하는 능력처럼 작은 재능도 공동체에서는 역할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내가 정착하고 싶은 마을에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좋은 집과 농지만 생각하기보다 사람들과의 관계, 지역의 분위기, 내가 참여할 수 있는 활동, 생활서비스, 교통과 의료 등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 자료
- 영화 《로컬 히어로》(Local Hero, 1983), 빌 포사이스 감독. 미국 석유회사의 직원이 스코틀랜드의 작은 마을을 매입하려다 그곳의 사람들과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 마틴 하이데거, 「짓기·거주하기·사유하기(Building Dwelling Thinking)」. 인간의 공간 경험과 ‘거주함’을 철학적으로 탐구한 글입니다.
- 웬델 베리 관련 자료. 농부이자 작가로서 농촌 공동체, 장소에 대한 연결, 지역경제와 농업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했습니다.
- 영월 운학삼돌이마을 사례. 원주민·귀농귀촌인·예비 귀농귀촌인을 ‘박힌 돌·굴러온 돌·굴러올 돌’로 설명하고, 귀농귀촌학교와 공동체 활동 등을 통해 정착 기반을 만들어 온 사례로 소개되었습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simplejecheon/223689067120
https://www.philosophybasics.com/philosophers_heidegger.html
https://www.neh.gov/about/awards/jefferson-lecture/wendell-e-berry-bi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