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를 다 캐고 난 뒤 텅 빈 밭을 바라보다가, 저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흙만 남은 밭이 이상하게도 지금 제 삶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뭔가 끝났는데, 다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 상태. 귀농인의 집 계약이 끝나가고, 월세 집이 나왔다는 소식이 왔고, 구직도 뜻대로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복잡한 마음 속에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영화 뉴스처럼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소식이 저를 한 시간 넘게 붙잡아두었습니다.

이창동이 선택한 새로운 길,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지혜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부부와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가 만나면서 서로의 삶과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입니다. 노동, 계급, 관계의 균열을 다룬다고 하는데, 그 소재만으로도 가슴이 묵직해졌습니다. 이 영화에는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처음 극장용 영화로 투자처를 찾았지만 국내 환경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결국 넷플릭스가 작품을 신뢰하면서 제작이 성사되었고,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 즉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습니다. 한국 영화 최초의 수상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제 이야기처럼 읽혔습니다.
처음 계획한 길이 막혔다고 해서 삶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결국 어디에 가 닿을지는 미리 알 수 없다는 것.
이 지점에서 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Phronesis)를 떠올렸습니다. 프로네시스란 '실천적 지혜'를 뜻하는 개념으로, 단순히 옳고 그름을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식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 조건 아래서, 나에게 맞는 선택이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입니다(출처: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귀농이 좋은가 나쁜가, 이것은 비교적 쉬운 질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귀농을 선택하는 것이 맞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다음의 것들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 지금 나의 체력과 건강 상태
- 월세와 농자재, 생활비를 감당할 소득 구조
- 남편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
- 연고 없는 지역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는지
- 구직과 농사를 병행할 수 있는 현실적 조건
이 목록을 쓰면서 저 자신도 처음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귀농을 고민한다고 해서 삶 전체를 한 번에 결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요.
그런데 그 문자가 왔을 때, "월세 집이 나왔대요"라는 짧은 카카오톡 한 줄이 이상하게 두려웠습니다. 반가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그 감정의 정체를 몰랐습니다.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가능성이 구체적인 선택지가 되는 순간, 두려움이 함께 온다는 것을.
빈 밭 앞에서 키르케고르를 생각하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베니스에서 받은 은사자상을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그 수상 소식이 의미 있는 이유는 성취 자체보다, 어떤 경로를 통해 거기까지 닿았는가에 있다고 저는 읽습니다.
처음 계획한 문이 닫히고, 다른 문을 열었을 때. 그 순간이야말로 진짜 선택이 이루어지는 지점일 것입니다.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인간의 삶을 선택과 결단의 문제로 바라보았습니다. 여기서 결단(決斷)이란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후에야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도 어느 시점에 스스로 선택하는 행위 자체를 말합니다(출처: 쇠렌 키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 키르케고르의 말을 빌리자면, 선택하지 않는 것도 결국 하나의 선택이 됩니다.
그 문장이 이상하게 마음에 박혔습니다. 20대라면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서"라는 말과 맞닿을 것이고, 60대라면 "이제 와서 바꾸는 게 맞는 걸까"라는 두려움과 맞닿을 것입니다. 세대는 달라도, 선택 앞에서 멈추는 감각은 같습니다.
저는 결국 그린대로 귀농귀촌 교육을 신청했습니다.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결정을 미룬 것과도 다릅니다. 더 잘 판단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텅 빈 고구마밭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농촌에서 빈 밭은 끝이 아닙니다. 한 작물이 끝나야 다음 작물을 심을 수 있고, 수확이 끝나야 밭을 고를 수 있습니다. 빈 상태가 다음을 위한 조건입니다.
《가능한 사랑》이라는 제목은 사랑이 가능한가를 묻습니다. 그런데 조금 넓게 읽으면 다른 질문이 됩니다. 서로 다른 계급과 조건 속에 있는 사람들이, 혹은 도시와 농촌이, 꿈과 현실이 함께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가. 그 질문이 영화 안에서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가능성(Possibility)이라는 단어는 철학적으로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결정이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제 앞에 여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아직 제 다음 계절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저에게는 가장 솔직한 상태일 것입니다.

삶의 선택 앞에서 저는 아직 빈 밭에 서 있습니다.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문자를 받던 날 느꼈던 그 복잡한 감정이, 지금은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두려움이 온다는 것은 무언가 진짜 중요한 것이 걸려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그리고 《가능한 사랑》이 묻는 것처럼, 가능한가를 묻는 것 자체가 이미 시작입니다.
독자분들께도 묻고 싶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빈 밭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거기에 무엇을 다시 심으려 하십니까.
생활 속에서 적용해볼 수 있는 생각
인생의 중요한 선택 앞에서는 곧바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먼저 ‘판단할 자료’를 모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귀농귀촌을 고민한다면 다음 네 가지를 실제로 적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① 내가 원하는 삶
농촌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적어봅니다.
②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현실
주거비, 생활비, 농사 규모, 노동량, 소득 등을 계산해봅니다.
③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
건강, 가족, 소득, 인간관계 등 삶에서 반드시 지키고 싶은 것을 정합니다.
④ 아직 열어둘 가능성
귀농귀촌과 구직 중 하나만 선택하지 않고, 일정 기간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는지도 살펴봅니다.
이렇게 하면 선택은 막연한 불안에서 벗어나 조금 더 현실적인 판단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생각해볼 질문 3가지
- 지금 내 삶에서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 나는 지금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더 현명하게 결정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 처음 계획한 길이 막혔을 때, 내가 다시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에는 무엇이 있을까?
참고: https://namu.wiki/w/%EA%B0%80%EB%8A%A5%ED%95%9C%20%EC%82%AC%EB%9E%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