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10 농촌에 산다는 것은 무엇을 선택하는 일일까요? — 영화 《시골영웅》(영어 로컬 히어로)와 하이데거의 거주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체 철학 이사를 앞두고 짐을 싸본 적이 있으십니까. 박스에 책을 넣다가, 아무 이유 없이 손이 멈추는 순간이 있습니다.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이 놓여 있던 시간이 자꾸 눈에 밟혀서입니다. 저는 그 멈춤이 뭔지 오래 몰랐습니다. 1983년에 만들어진 빌 포사이스 감독의 영화 《로컬 히어로》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질문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장소를 떠난다는 것과 장소에서 산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장소를 소유하는 것과 거주하는 것은 다릅니다영화를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 보려 합니다. 결말 이야기는 아니고, 주인공 맥킨타이어가 페르네스 마을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시선에 대해서입니다.그는 석유회사 직원으로, 스코틀랜드의 이 작은 해안 마을을 매입하러 왔습니다. 그에게 마을은 계약서 위의.. 2026. 10. 14.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내 자리를 찾는 일일까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와 하이데거·아렌트·헤겔의 노동 철학 일자리를 찾는다는 게 정말 '내 자리'를 찾는 일과 같을까요? 고용24 화면을 켜서 수백 개의 채용공고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빈자리는 이렇게 많은데, 왜 저는 이 화면 앞에서 이렇게 막막한 걸까요. 이태겸 감독의 독립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2021)는 바로 그 막막함의 정체를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건드립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이 영화가 남긴 질문을 다시 꺼내보려 합니다.파견된 자리에서, 사람은 무엇을 먼저 찾는가영화 속 정은은 7년을 다닌 회사에서 어느 날 하청업체로 파견됩니다. 본인이 원한 게 아닙니다. 낯선 현장,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정은이 제일 먼저 찾는 건 더 좋은 월급이 아닙니다. '내가 설 수 있는 자리'입니다.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솔직히 처음엔 그.. 2026. 10. 7.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하이데거의 피투성, 불교의 무상 "우리는 자신의 탄생을 선택하지 않았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남긴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당연한 말 아닌가,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실업 이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하루들을 보내다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떠올렸을 때, 그 말이 갑자기 다르게 읽혔습니다. 당연한 말이 아니라,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상실을 경험한 모든 사람에게 피투성(Geworfenheit)과 무상(無常)이라는 두 개의 렌즈를 건네며 묻습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뒤, 당신은 어떻게 살 것입니까.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불길 속에서 굳어버린 소년 — 피투성이란 무엇인가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2026. 9. 27. 농촌에 내 일자리가 없는 것일까, 내 자리가 없는 것일까《로컬 히어로》와 삼돌이마을에서 생각하는 귀농의 의미 고용24 화면을 닫으며 저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검색어를 바꿔가며 한 시간쯤 일자리를 찾았는데, 화면을 끄고 나서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농촌에는 정말 나에게 맞는 일자리가 없는 걸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다가, 그날 오후 귀농귀촌 교육에서 들은 영월 삼돌이마을 이야기와 뒤섞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오래전에 본 영화 한 장면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빌 포사이스 감독의 1983년 영화 《로컬 히어로》였습니다.땅을 보던 사람이 장소를 보게 되기까지영화 속 주인공 맥은 미국 텍사스의 석유회사 직원입니다. 회사의 지시로 스코틀랜드 북부 해안 마을 퍼니스를 사들이러 갑니다. 처음 맥에게 그곳은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몇 헥타르인지, 얼마를 제시하면 계약이 성사될지 계산하.. 2026. 9. 19. 나는 이 삶을 선택한 것일까 The Spirit of the Beehive 《벌집의 정령》과 하이데거로 바라본 ‘떠밀려 온 삶’과 새로운 가능성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어딘가에 던져져 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솔직히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철학 책 속 어느 관념적인 선언처럼 들렸거든요. 그런데 사과밭에서 사과를 따다가, 불현듯 그 말이 이해됐습니다. 제가 여기 있는 건 정말 제가 선택한 것이었을까요?벌집에도 질서는 있다, 하지만 자유는 없다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1973년 작 《벌집의 정령(The Spirit of the Beehive)》은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영화입니다.스페인 내전이 끝난 직후인 1940년대, 카스티야의 황량한 시골 마을. 일곱 살 소녀 아나는 마을에서 상영된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커다란 혼란에 빠집니다. 언니 이사벨은 "괴물은 죽은 게 아니라 정령이 되었다"고 말하고,.. 2026. 9. 16. 사람이 사라진 마을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킬 수 있을까 《Ek Tha Gaon 엑 타 가온 》으로 바라본 지방소멸과 하이데거의 ‘거주’ "건축하는 것이 곧 거주하는 것은 아니다." 하이데거가 남긴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는 솔직히 너무 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을 짓고 사는 것이 거주가 아니면 무엇이냐고. 그런데 평일 오후, 농촌 바자회가 끝난 뒤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다가 그 말이 갑자기 다르게 들렸습니다. 운동장은 있었습니다. 부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자마자 그 공간은 순식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건물은 남아 있는데 생활이 사라지는 풍경. 《Ek Tha Gaon》은 바로 그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댄 다큐멘터리입니다.이 영화를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보지 않으신 분들도 충분히 따라오실 수 있도록 장면을 최소한으로만 언급하겠습니다. 마을이 비어간다는 것, 그것은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 2026. 9. 12. 우리는 왜 진실을 보면서도 외면하는가 《돈 룩 업》 × 하이데거 두 과학자가 대통령 집무실에서 허둥지둥 설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혜성이 온다고, 몇 달 안에 지구와 충돌한다고, 확률이 아니라 확정이라고. 그런데 대통령은 선거 일정을 꺼내 듭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웃겨야 하는데 웃기지 않았습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뉴스 속에서, 혹은 제 일상에서.이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우리는 왜 진실을 보면서도 외면하는가영화 《돈 룩 업》은 2021년 애덤 맥케이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혜성 충돌이라는 설정은 사실 기후위기의 메타포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기후위기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왜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걸까, 라는 질문입니다.솔직히 처음.. 2026. 8. 6. 〈Her〉 그녀와 하이데거 — 완벽한 관계가 인간을 외롭게 한다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AI 시대에 왜 인간의 외로움이 더 커질 수 있는가영화 《Her》가 지금 다시 주목받는 이유하이데거가 말한 기술의 본질은 무엇인가AI와 반도체 경쟁이 우리 삶에 던지는 질문기술 발전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키는 방법 편안할수록 우리는 더 고독해진다. 역설처럼 들리지만, 〈Her〉를 보고 나면 이 문장이 역설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스파이크 존즈가 2013년에 내놓은 이 영화는 AI와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찰 없는 관계가 인간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가장 정확하게 짚어낸 사람이 스크린이 아니라 20세기 독일의 한 철학자였다는 사실이 저를 계속 이 영화로 돌아오게 합니다.마찰 없는 세계, 혹은 불편함이 사라진 .. 2026. 6. 18. 우리는 왜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할까 — 영화 장수상회로 보는 하이데거 철학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왜 장수상회가 단순한 노년 로맨스 영화가 아닌지마르틴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한 존재” 철학이 무엇인지인간은 왜 늙음과 죽음을 두려워하는지기억이 사라져도 사랑은 남을 수 있는지왜 인간은 끝까지 관계를 필요로 하는 존재인지 한국은 2025년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20%를 넘어선 것입니다.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지금은 시어머니와 함께 늙어가는 처지가 되고 보니 노년이라는 주제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하이데거가 말한 현존재, 그리고 늙음의 철학늙어간다는 것이 왜 이렇게 두렵게 느껴지는 걸까요? 단순히 몸이 쇠약해지는 것 때문.. 2026. 5. 13. 하이데거 철학과 인터스텔라 (현존재, 죽음, 관계) 솔직히 저도 매일 아침 출근길에 "나는 지금 내 삶을 사는 걸까, 아니면 그냥 사회가 정해준 루트를 따라가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월급 들어오면 공과금 내고, 부모님 용돈 드리고, 자식 학원비 내면 통장은 텅 빕니다. 그러다 다음 월급날만 기다리는 삶. 이게 제 삶인지, 아니면 누군가 짜놓은 시스템 안에서 돌아가는 톱니바퀴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하이데거의 철학을 접하게 됐고, 영화 인터스텔라를 다시 보면서 "아, 이게 바로 현존재의 의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철학은 어렵고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하이데거 철학만큼 일상의 고민에 직접적인 답을 주는 사상도 드물었습니다.현존재와 세계내존재: 우리는 선택받지 못한 세계에 던.. 2026. 3. 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