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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하이데거의 피투성, 불교의 무상

by cinema-1 2026. 9. 27.

"우리는 자신의 탄생을 선택하지 않았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남긴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당연한 말 아닌가,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실업 이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하루들을 보내다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떠올렸을 때, 그 말이 갑자기 다르게 읽혔습니다. 당연한 말이 아니라,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상실을 경험한 모든 사람에게 피투성(Geworfenheit)과 무상(無常)이라는 두 개의 렌즈를 건네며 묻습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뒤, 당신은 어떻게 살 것입니까.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불길 속에서 굳어버린 소년 — 피투성이란 무엇인가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히토는 병원이 불타는 장면을 바라봅니다. 그 불길 속 어딘가에 어머니가 있습니다. 소년은 달립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카메라는 마히토의 등 뒤에서 그 장면을 오래 붙잡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소년의 얼굴이 아니라 등을 보여주는 연출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지금 자신에게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이 인간의 조건을 피투성(Geworfenheit)이라고 불렀습니다. 피투성이란, 우리가 어느 시대에, 어떤 가족 안에, 어떤 신체로 태어날지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 채 이미 어떤 세계 속으로 '던져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치 야구공이 투수의 손에서 떠나는 순간 자신이 어디로 갈지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출발점은 처음부터 우리가 고른 것이 아닙니다. (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eidegger")

마히토는 어머니의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전쟁도, 시골 이주도, 새어머니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어느 날 그 세계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히토만의 이야기일까요. 생각해보면 우리 대부분이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 예고 없이 찾아온 실직
  •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빈자리
  • 아이들이 떠난 뒤 달라진 집 안의 공기
  •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처음 실감한 순간

제 경우엔 직장이 사라진 뒤부터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갈 곳이 없었고, 시간은 이상하게 길어졌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오히려 더 바빴습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면, 저도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세계 안에 던져진 셈이었습니다.

하이데거 철학에서 피투성은 체념의 근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인간은 던져진 존재이지만, 동시에 자신 앞에 놓인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실존(Existenz)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등장합니다. 실존이란 단순히 살아 있다는 뜻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 안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존재를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히토가 탑 안의 낯선 세계로 발을 들이는 장면은, 피투성 이후를 살아가려는 인간의 몸짓처럼 읽힙니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하이데거와 불교의 철학사상 이미지

 

왜가리가 말하는 것 — 무상 앞에서 우리가 붙잡는 것들

영화에서 마히토를 이상한 세계로 이끄는 존재는 왜가리입니다. 그 왜가리는 말을 합니다. 처음엔 불길하고, 때로는 거짓말을 하고, 끝까지 그 의도를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왜가리가 마히토의 어떤 내면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뒤 마히토가 끝내 놓지 못하는 것, 즉 "돌아올지도 몰라"라는 가능성 말입니다. 그것은 희망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현실을 가로막는 집착이 되기도 합니다.

불교에서 이 상태를 무상(無常, anicca)으로 설명합니다. 무상이란 세상의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고 사라진다는 가르침입니다. 부모도, 직업도, 관계도, 지금의 건강도 영원히 같은 형태로 남아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Buddhist Philosophy")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기가 어렵습니다.

무상을 이해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 저는 부모님 봉안당을 찾을 때마다 느낍니다. 명절이 되면 찾아갈 곳이 분명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준비한 음식 냄새, 아버지의 잔소리, 그런 것들이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몸은 아직도 그 문을 두드리려 합니다. 잃어버린 것을 잃어버렸다고 받아들이는 일은, 잊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작업입니다.

마히토도 어머니를 잊지 않습니다. 탑 안의 세계에서 그는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공간을 헤맵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나는 존재들은 모두 변화와 소멸이라는 주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실사였다면 너무 직접적으로 아팠을 장면들이, 미야자키의 손을 거치면서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그 거리는 상실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거리입니다.

불교의 무상은 종종 "어차피 다 사라지는데 무슨 의미가 있냐"는 허무주의(Nihilism)로 오해받습니다. 허무주의란 삶에 본래적인 의미가 없다는 철학적 입장을 말합니다. 하지만 무상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선택과 관계가 더 소중해진다는 방향으로 읽힙니다. 오늘 나눈 밥 한 끼, 오늘 쓴 글 한 편, 오늘 걸었던 길이 다시는 똑같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지금을 살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이렇게 생각합니다.

  • 귀농을 준비하며 처음 밭을 일군 날
  • 유튜브 촬영 방법을 처음 배운 날
  • 지역 행사를 카메라로 기록하며 누군가와 처음 눈이 마주친 날

이것들은 처음부터 계획에 있던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 선택들이 하나의 방향을 만들고 있습니다. 예전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지금 여기서 새로운 하루를 만드는 일입니다.

영화의 제목이 "마히토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야자키는 마히토의 이야기를 빌려 관객 각자에게 질문을 돌려줍니다. 상실을 경험한 뒤,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방향을 선택하겠느냐고.

아직 저도 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실업 이후의 삶도, 귀농의 가능성도, 앞으로의 일도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한 가지는 달라졌습니다.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질문 대신, "지금의 나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답이 없는 질문이라도, 질문이 있다는 것은 아직 선택할 내일이 남아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대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이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볼 세 가지 질문

첫째,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지금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실업, 가족의 변화, 나이, 거주환경처럼 내가 처음부터 선택하지 않았던 조건 가운데 지금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이미 잃어버린 것을 되돌리는 대신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은 무엇일까요?

새로운 일, 공부, 봉사, 글쓰기, 가족과의 시간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지금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셋째, 앞으로의 삶에서 반드시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직업이나 경제적 안정뿐 아니라 관계, 배움, 자유, 건강, 장소, 창작 등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다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 Hayao Miyazaki,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The Boy and the Heron, 2023). 전쟁 중 어머니를 잃은 소년 마히토가 시골로 이주한 뒤 다른 세계를 통과하며 상실과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이야기입니다. 공식 배급사 GKIDS의 시놉시스를 참고했습니다.
  • BFI, 《The Boy and the Heron》 해설. 요시노 겐자부로의 1937년 책에서 제목을 가져왔지만 영화의 서사는 독자적으로 전개되며, 상실·책임·성장의 내면적 여정을 중심으로 읽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 Martin Heidegger 관련 철학 해설,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피투성(Geworfenheit), 유한성, 죽음을 향한 존재와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을 선택하는 문제를 참고했습니다.
  • 불교의 무상(anicca/anitya)에 관한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조건 지어진 존재의 변화와 소멸, 무상에 대한 불교적 논의를 참고했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A%B7%B8%EB%8C%80%EB%93%A4%EC%9D%80%20%EC%96%B4%EB%96%BB%EA%B2%8C%20%EC%82%B4%20%EA%B2%83%EC%9D%B8%EA%B0%80
https://plato.stanford.edu/entries/heidegger/
https://plato.stanford.edu/entries/buddh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