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나는 이 삶을 선택한 것일까 The Spirit of the Beehive 《벌집의 정령》과 하이데거로 바라본 ‘떠밀려 온 삶’과 새로운 가능성

by cinema-1 2026. 9. 16.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어딘가에 던져져 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솔직히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철학 책 속 어느 관념적인 선언처럼 들렸거든요. 그런데 사과밭에서 사과를 따다가, 불현듯 그 말이 이해됐습니다. 제가 여기 있는 건 정말 제가 선택한 것이었을까요?

벌집에도 질서는 있다, 하지만 자유는 없다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1973년 작 《벌집의 정령(The Spirit of the Beehive)》은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스페인 내전이 끝난 직후인 1940년대, 카스티야의 황량한 시골 마을. 일곱 살 소녀 아나는 마을에서 상영된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커다란 혼란에 빠집니다. 언니 이사벨은 "괴물은 죽은 게 아니라 정령이 되었다"고 말하고, 아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날 이후 아나는 현실 어딘가에 그 존재가 있다고 믿으며 홀로 세계를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영화 속 아버지 페르난도는 양봉에 매달립니다. 벌집 앞에 오래 앉아 벌들의 움직임을 들여다봅니다.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저는 단순히 취미 생활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벌집은 이 영화에서 하나의 사회적 은유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벌들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정해진 질서가 있고, 이탈이 없습니다. 겉으로 보면 완벽한 공동체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스페인 영화 연구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벌집의 이미지를 프랑코 독재 체제 아래의 억압적 질서와 연결해 읽어왔습니다(출처: BFI, The Spirit of the Beehive 작품 해설). 침묵, 반복, 이탈하지 않는 삶. 그것이 벌집이고, 그 시대 스페인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한참 멈췄습니다. 벌집이 스페인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리도 살면서 수많은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학생, 직장인, 부모, 퇴직자. 그 역할들을 수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이걸 원해서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다음 칸으로 이동한 건지 구분이 흐려집니다.

"던져진 존재"라는 말이 위로가 된 이유

하이데거는 인간을 피투성(Geworfenheit)의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피투성이란, 우리가 자신의 출발 조건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어느 시대에 태어날지, 어떤 가정에서 자랄지, 어떤 사회 속에 놓일지, 우리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이미 세계 안에 '던져져' 있습니다.

처음에 이 개념을 읽었을 때는 뭔가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국 우리 삶은 조건의 산물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하이데거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우리는 던져진 채로 시작하지만, 그 안에서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실존(Existenz)이라고 불렀습니다. 실존이란, 단순히 살아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어떤 가능성을 선택할 것인지 스스로 질문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실존적 삶입니다(출처: Martin Heidegger, Being and Time, 번역본 참조).

아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아이는 전쟁이 끝난 뒤의 마을을, 침묵하는 어른들의 세계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안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아나는 그 안에서 질문합니다. 괴물은 정말 죽었을까? 어른들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 그 질문이야말로, 피투성의 조건 안에서 실존을 시작하는 몸짓이었습니다.

 

 

영화 <벌집의 정령>과 하이데거의 철학사상 이이미

 

사르트르는 "선택"을 말했고, 에리세는 "침묵"을 보여줬다

 

여기서 비교하고 싶은 철학자가 한 명 있습니다. 장폴 사르트르입니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로 유명합니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란, 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본질이나 목적 같은 것은 없으며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간다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사르트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선택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고 그 자유는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이데거와 사르트르는 강조점이 조금 다릅니다. 사르트르가 "어떻게든 선택하라"는 쪽이라면, 하이데거는 "당신이 던져진 조건부터 제대로 바라보라"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에리세의 영화는 이 두 철학자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것처럼 읽힙니다.

영화 속 어른들은 선택하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침묵을 선택합니다. 페르난도는 벌집을 바라보고, 테레사는 편지를 씁니다. 전쟁의 기억을 말하지 않고,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현실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르트르가 말한 '불성실한 자기기만(Bad Faith)'에 해당하는 태도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자유로운 존재이면서 자유를 부정하는 삶.

반면 아나는 다릅니다. 어른들이 침묵하는 곳에서 아나는 질문합니다. 그리고 직접 확인하러 갑니다. 위험한 폐가에도 들어갑니다. 그 행동 자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살아 있는 몸짓으로 읽힙니다.

저도 실직하고 나서 한동안 사르트르의 어른들처럼 살았습니다. 상황에 밀려 귀농인의 집에 갔고, 고구마를 캤고, 사과를 땄습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지 않은 채로요. 그러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농촌에 사는 게 재미있으세요?" 그 순간, 아나처럼 멈추게 됐습니다.

"자연이 좋다"와 "이 삶을 살고 싶다"는 다른 문장이다

사과밭에서 그 질문을 받고 저는 "자연이 좋아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정말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그 말이 제일 쉬운 대답이었던 것일까.

자연을 좋아하는 것과 농촌에서 살아가는 것은 꽤 다른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차이들이 있습니다.

  1. 자연은 아름답지만, 농촌 생활에는 노동이 있습니다.
  2. 풍경은 좋을 수 있지만, 수입과 생계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3. 계절의 변화가 좋을 수 있지만, 그 계절마다 반복되는 일이 있습니다.
  4. 이웃과의 관계, 의료 접근성, 교통, 이 모든 것이 선택의 조건이 됩니다.

이 목록을 쓰면서 저는 아나의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벌집 앞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질서 있는 세계를 동경했던 걸까요. 아니면 그 질서 속에 자신이 갇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오지 못했던 걸까요.

사과를 따면서 저는 그 차이를 조금씩 가늠해 보았습니다. 2년 전 봄, 그 농가에서 꽃을 솎아냈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그 나무에서 익은 사과를 땄습니다. 같은 나무였는데, 제가 보는 방식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봄에는 그냥 좋았습니다. 가을에는 이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인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하이데거가 말한 '가능성을 향한 물음'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사과따기 체험을 위한 농장의 사과 사진

 

 

 

마무리로 하나만 남기고 싶습니다. 영화 마지막에서 아나는 답을 찾지 못합니다. 정령은 있는지 없는지, 현실과 상상은 어디서 갈리는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눈은 전보다 조금 더 깊어져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이 영화가 남기는 진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답보다 질문이 먼저라는 것.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도 같은 질문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지금 살고 있는 이 삶, 얼마나 직접 선택하셨습니까?

 

오늘의 철학적 질문

  •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에서,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은 무엇이고 상황 때문에 받아들인 것은 무엇일까요?
  • ‘자연이 좋아서’, ‘안정적이어서’, ‘남들이 좋다고 해서’가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앞으로 경험해 보고 싶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은 무엇일까요?

 

함께 읽어볼 만한 글

《The Rider》 × 에피쿠로스 — “나는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가?”
《농가일기》 × 아리스토텔레스 — “귀농은 주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다시 구성하는 일”
《가능한 사랑》 × 삶의 선택 — “계획이 틀어져도 새로운 가능성은 있다”


참고: https://www.imdb.com/title/tt0070040/
https://www.bfi.org.uk/films/spirit-beehive
https://plato.stanford.edu/entries/heide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