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아렌트7 연락 없는 하루, 나는 아직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일까? 영화 《로맨틱 크라운》(영어: Larry Crowne)과 중년의 재출발, 그리고 삶의 리듬을 되찾는 철학 하루 종일 휴대 전화를 내려다봤습니다. 진동 한 번 없는 화면만 반복해서 확인하는 그 기분, 혹시 아시나요? 채용 담당자가 "개별 연락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던 말이 아침부터 귓가에 맴돌았지만, 해가 기울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문득 떠오른 영화가 있었습니다. 톰 행크스가 감독하고 직접 주연한 2011년 영화 《래리 크라운》입니다.영화는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니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오전 아홉 시, 래리는 해고 통보를 받는다회의실 문이 열리고, 래리 크라운은 자리에 앉습니다. 상사의 표정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지만, 래리는 아직 눈치채지 못합니다. "우리 회사에서 당신보다 더 오래 일한 사람은 없습니다." 칭찬인지 통보인지 모를.. 2026. 10. 13. 취업박람회에서는 늦었다고 했지만, 배움에는 늦은 나이가 없었다 《오마주》와 아렌트·보부아르·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다시 시작하는 삶 어느 날 오전에는 새 기술을 배우며 설레고, 오후에는 취업박람회에서 조용히 낙담했습니다. 같은 날, 같은 몸으로 겪은 두 가지 감정이었습니다. 그 간극 속에서 신수원 감독의 영화 《오마주》가 불쑥 떠올랐습니다. 지완이라는 중년 여성 감독이 낡은 필름 앞에서 다시 카메라를 바라보는 장면처럼, 저도 그날 무언가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취업박람회와 영상 실습 사이에서, 하루에 두 개의 나를 만났습니다그날 아침은 지역 축제 현장에서 시작됐습니다. 자원봉사센터 유튜브 크리에이터 과정의 첫 실습이 있었습니다. 강사님이 알려준 대본을 들고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었는데, 막상 해보니 인터뷰 하나가 이렇게 어색할 줄 몰랐습니다. 결국 대본을 살짝 벗어나 제 방식대로 찍었고, 편집을 마치고 나서는 아쉬운 장면이 눈.. 2026. 10. 8.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내 자리를 찾는 일일까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와 하이데거·아렌트·헤겔의 노동 철학 일자리를 찾는다는 게 정말 '내 자리'를 찾는 일과 같을까요? 고용24 화면을 켜서 수백 개의 채용공고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빈자리는 이렇게 많은데, 왜 저는 이 화면 앞에서 이렇게 막막한 걸까요. 이태겸 감독의 독립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2021)는 바로 그 막막함의 정체를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건드립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이 영화가 남긴 질문을 다시 꺼내보려 합니다.파견된 자리에서, 사람은 무엇을 먼저 찾는가영화 속 정은은 7년을 다닌 회사에서 어느 날 하청업체로 파견됩니다. 본인이 원한 게 아닙니다. 낯선 현장,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정은이 제일 먼저 찾는 건 더 좋은 월급이 아닙니다. '내가 설 수 있는 자리'입니다.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솔직히 처음엔 그.. 2026. 10. 7. 역사는 누가 이름을 붙이는가 《암살자(들)》와 아렌트의 사실적 진실, 공자의 정명 역사는 사건이 끝난 순간 완성될까요? 아니면 그 사건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비로소 시작될까요?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아들과 점심을 먹고 혼자 영화관으로 들어가면서 저는 그 질문을 미처 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이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그 질문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이 글은 영화의 결말을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이름이 현실을 만드는가 — 공자의 정명공자는 정치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명(正名)이라고 답했습니다. 정명이란 '이름을 바로잡는 일'을 뜻합니다.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현실에 붙인 이름이 실제 모습과 일치하는지 끊임없이 점검하는 태도입니다.《논어》 「자로」 13.3에서 공자는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2026. 9. 29. 침묵은 중립일까, 아니면 선택일까 《스포트라이트》 × 한나 아렌트 보스턴 글로브 편집국의 어느 오후, 기자 한 명이 두꺼운 서류 묶음을 책상에 내려놓습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 종이들 안에, 수십 년간 아무도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빼곡히 담겨 있습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범죄를 폭로하는 장면이 아니었는데도, 가슴이 이상하게 무거워졌습니다. 침묵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두껍게 쌓일 수 있는지를 그 서류들이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수십 년의 침묵은 어떻게 구조가 되는가《스포트라이트》는 2015년 개봉한 실화 기반 영화입니다. 미국 보스턴 글로브 탐사보도팀이 가톨릭 교회의 조직적 아동 성범죄 은폐를 추적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를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그 이후를 생각해보려 합니다.취재가 깊어질.. 2026. 7. 24. 왜 같은 산업재해는 반복되는가─ 《다음 소희》 × 한나 아렌트 사람이 죽는 일에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익숙해졌을까요. 컨베이어 벨트에 사람이 끼었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저는 잠시 멈췄습니다. 충격 때문이 아니라, 충격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그 무감각이 더 무서웠습니다. 영화 《다음 소희》는 바로 그 무감각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작품입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 불교의 연기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아무도 악인이 아닌데, 왜 한 사람은 무너졌을까영화 속 소희의 하루는 겉으로 보면 평범합니다. 출근하고, 실적을 채우려 애쓰고, 감정을 억누르며 전화를 받습니다. 소희를 망가뜨리는 사람은 따로 없습니다. 관리자는 그저 수치를 관리하고, 학교는 취업률을 신경 쓰고, 회사는 계약을 유지합니다. 각자 자기 역할.. 2026. 6. 9. 《길위에 김대중》으로 읽는 갈등의 철학 (원효의 화쟁, 일체유심조, 헤겔의 변증법)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왜 인간 사회의 갈등은 쉽게 끝나지 않는가원효가 말한 “일체유심조”의 진짜 의미정치와 이념을 넘어 인간을 바라본다는 것고난은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가영화 《길위에 김대중》이 오늘날에도 중요한 이유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 원효의 이 말은 듣는 순간 어딘가 허공에 뜬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길위에 김대중》은 이 명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반박합니다. 고문과 망명과 사형 선고가 오가는 현실 앞에서, 마음만으로 세상이 바뀐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가볍지 않은가, 하고. 그 반박이 오히려 원효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역설 속으로 이 글은 들어갑니다.감독이 숨긴 철학적 코드 — 갈등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다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것이 단순한 정치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했.. 2026. 5. 2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