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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35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하이데거의 피투성, 불교의 무상 "우리는 자신의 탄생을 선택하지 않았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남긴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당연한 말 아닌가,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실업 이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하루들을 보내다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떠올렸을 때, 그 말이 갑자기 다르게 읽혔습니다. 당연한 말이 아니라,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상실을 경험한 모든 사람에게 피투성(Geworfenheit)과 무상(無常)이라는 두 개의 렌즈를 건네며 묻습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뒤, 당신은 어떻게 살 것입니까.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불길 속에서 굳어버린 소년 — 피투성이란 무엇인가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2026. 9. 27.
《묻어둔 여름》 × 미셸 푸코: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이라고 말하는가 평일 아침에 극장에 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날 저를 조금 낯선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비슷한 나이대의 분들이 보였고, 다들 저처럼 조용히 앉아 스크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시간에 극장에 있으면 안 되는 건 아닌데, 왜 이렇게 어색하지?' 그 작은 의문이 영화가 끝난 뒤 훨씬 더 큰 질문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누구의 허락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스캔들이 아니라 시선이 그들을 무너뜨렸다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를 먼저 보신 뒤 이 글로 돌아오셔도 좋습니다.1810년, 에든버러의 두 여성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아갑니다. 그들이 누군가를 해친 것도, 법을 어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생 하나가 두 사.. 2026. 9. 5.
게임을 하는 아들과 영화를 보는 엄마, 그래도 우리는 함께 있었습니다 《미스 리틀 선샤인》 × 마르틴 부버 가족이란 서로를 가장 잘 안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어쩌면 우리는 가족을 오래 알았다는 이유로, 정작 지금 이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늦게 알아채는 건 아닐까요. 저는 아들과 PC방에 나란히 앉아 서로 다른 화면을 들여다보던 어느 저녁에, 그 질문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붙잡았습니다.《미스 리틀 선샤인》(2006)은 조나단 데이톤과 발레리 페리스 감독이 만든 가족 로드무비입니다. 영화는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낡은 폭스바겐 승합차 한 대. 그 안에 탄 여섯 명은 각자의 실패와 고집과 침묵을 품고 달립니다.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지만, 같은 마음으로 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끝까지 함께 달립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같은 질문이.. 2026. 9. 1.
동창은 NASA에 갔다 왔고, 나는 실업 상태였습니다 《어바웃 슈미트》 × 에픽테토스 퇴직 후 텅 빈 사무실 같은 집에 홀로 앉아 있는 남자. 잭 니콜슨이 연기한 워렌 슈미트는 마지막 퇴근을 마치고 돌아온 첫날 밤, 딱히 할 일이 없습니다. 30년 넘게 일한 보험회사는 아무 문제 없이 그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었고, 후임자는 정중하게 그를 돌려보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 표정을 지은 적이 있다고.오랜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동창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눈에 띄지 않던 친구인데, 지금은 서울의 유명 대학 교수가 되어 NASA까지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 마음은 축하보다 먼저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저는 그날 실업 상태였거든요.직업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 걸까워렌 슈미트의 가장 큰 고통은 실직이 아닙니다. 그는 정년.. 2026. 8. 31.
일자리를 내려놓으니 비로소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키루》 살다× 빅터 프랭클 통계조사 지원업무 계약 만료 후 아침에 눈을 떴는데 갈 곳이 없었던 날이 종종 있었습니다. 알람을 끄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오늘 하루를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을 잃은 것도, 아픈 것도 아닌데, 그냥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이키루》(1952)를 다시 꺼내 든 건 바로 그 즈음이었습니다. 이 글은 영화를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그 여운을 천천히 들여다보려는 사색의 기록입니다.삶의 무게를 처음 느낀 순간, 와타나베처럼와타나베는 30년 넘게 관공서 책상에 앉아 서류를 처리해온 공무원입니다. 그는 성실했지만, 어느 날 자신이 살아 있다는 실감을 잃어버렸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리고 위암 선고를 받습니다.그 장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 2026. 8. 21.
가족을 위해 살다 보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바튼 핑크》 × 실존주의 호텔 방 벽지가 천천히 부풀어 오릅니다. 뜨거운 습기에 풀이 녹아 벽에서 종이가 떨어지고, 바튼 핑크는 타자기 앞에 앉아 있습니다. 아무것도 써지지 않습니다. 그는 위대한 서민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다짐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작 옆방 서민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타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작가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역할에 지쳐버린 누군가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호텔방이라는 이름의 역할 감옥1991년 코엔 형제가 연출한 《바튼 핑크》는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한 극작가가 할리우드로 건너가 창작의 벽에 부딪히는 이야기입니다. 무대는 거의 한 곳, 얼스 호텔 621호실입니다.저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됐습니다. 불쾌할 만큼 답답하고, 이야기는 어.. 2026. 8. 17.
가족을 돌보는 삶과 나 자신으로 사는 삶은 반드시 반대일까《오케이 마담2》 × 시몬 드 보부아르 영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저를 기다리고 있던 건 화려한 엔딩 크레딧이 아니었습니다. 쌓인 설거지와 남편의 짐이었습니다. 그 순간 제 안에서 뭔가 작게 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관 안에서는 분명히 살아 있는 기분이었는데, 집 문을 여는 순간 그 감각이 흐릿해졌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피로감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저는 그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내재성(immanence)과 초월(transcendence)이라는 개념이 그때 불쑥 떠올랐습니다.영화관 안의 나와 집 안의 나는 왜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을까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장면은 조심스럽게 넘어가겠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이 장면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오케이 마담2》에는 평범해 보이는 주인공이 예상치 못.. 2026. 8. 14.
블랙 스완 (Black Swan) x 키에르케고르: 완벽을 향한 집착과 자아의 분열 오늘 계약이 끝났습니다. 짐을 챙겨 나오면서 저는 이상하게도 니나 생각을 했습니다. 발레리나 니나. 완벽한 백조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다가,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그 여자. 퇴직 후 3년째, 몇 달짜리 계약직을 전전하면서 제가 느끼는 이 허전함이 꼭 그녀의 표정과 닮아 있었습니다. 뭔가를 열심히 했는데, 남은 것이 없는 것 같은 그 느낌. 《블랙 스완》을 다시 떠올린 건 그날 저녁이었습니다.무너지는 것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것이미 영화를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결말보다는 그 과정, 니나의 내면이 어떻게 갈라지는가를 따라가 보고 싶습니다.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2010년 이 영화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발레라는 장르를 선택했습니다. 발레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 2026. 8. 1.
영화 《마인드스케이프》와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적 불안: 불안은 자유의 징표 불안은 피해야 할 감정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일까요?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을 자유의 가능성에서 비롯되는 필연적 감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저도 첫째 아이의 결혼 소식을 들었던 날, 기쁨보다 막막함이 먼저였습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실존적 불안 —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자유의 징표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저서 《불안의 개념》(1844)에서 실존적 불안(Existential Anxiety)이라는 개념을 처음 체계적으로 다뤘습니다. 여기서 실존적 불안이란 단순히 어떤 대상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 그 자체에서 생겨나는 어지러움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나는 이 길도 갈 수 있고 저 길도 갈 수 있다"는 바로 그 가능성이 불안의 뿌리라는 것입.. 2026. 7. 19.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와 야스퍼스의 ‘한계상황’: 좌절은 끝이 아니라 비약의 시작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한계상황을 그냥 '불운'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의 죽음도, 반복되는 경제적 어려움도,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 문제도 전부 그냥 재수 없는 일 정도로 치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다시 떠올리면서 야스퍼스의 철학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제가 살아온 방식이 조금 다르게 읽혔습니다.아버지 덕분에 극장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제 아버지는 생전에 극장 포스터를 붙이는 일을 하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엔 그게 얼마나 특별한 경험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냥 아버지 따라 극장 구석에 앉아 화면을 멍하니 보던 기억이 대부분입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옛날 영화들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요즘도 좋은.. 2026. 7. 17.
취업이라는 짐, 그 무거운 자유의 무게: 《어른이 되면》으로 보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솔직히 저는 아들이 정규직 근로 계약서에 싸인을 하던 날, 제 짐도 함께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습니다. 3개월 수습을 버텨내고 이제 스스로 서는구나 싶었는데, 바로 그 직후에 들려온 말이 "출근하기 싫다"였습니다. 한국 독립영화 《어른이 되면》이 그리는 미취업 청년의 불안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저는 그때 몸으로 확인했습니다.실존주의가 말하는 취업 불안의 정체일반적으로 취업에 성공하면 불안이 사라진다고들 합니다.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월세 집도 얻고 제가 쓰던 차도 넘겨받았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직장 다니기 싫다"는 말이 나왔을 때, 저는 불안이 취업 전후를 가리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습니다.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 2026. 7. 14.
영화 <와일드 씽>과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가 주는 인생 2막의 위로 퇴직 후 3년째 지방에 내려와 텃밭과 일자리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귀농귀촌이 이렇게 막막할 줄은 몰랐거든요. 그러던 중 전직 동료들과 함께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손재곤 감독의 이었는데, 20년 만에 다시 무대를 꿈꾸는 중장년 댄서들의 이야기가 가슴 어딘가를 세게 건드렸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머릿속에 맴돈 건 "그래서 나는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영화가 건드린 것: "넌 이미 끝났어"라는 말에 저항하기영화 의 주인공들은 세기말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 출신입니다. 표절 논란으로 강제 해체된 뒤 20년이 지났고, 각자는 생계형 방송 리포터, 빚더미 위의 솔로, 재벌가 며느리라는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 2026.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