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영화 박하사탕이 지금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
장폴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와 책임의 의미
폭력의 시대가 한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가
인간은 정말 자신의 선택대로 살아갈 수 있는가
상처받은 시대 속에서도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인가
저도 처음에는 박하사탕이 그냥 무거운 영화 하나로만 기억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제천에서 3년째 살면서 진소마을이 촬영지였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관련 글을 쓰다가 뒤늦게 알게 됐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가까이에 있던 것을 멀리서 찾고 있었던 셈입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린 영화, 진소마을이 간직한 기억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진소마을은 영화 박하사탕(2000년 개봉, 감독 이창동)의 주요 촬영지입니다. 영화가 개봉한 지 25년 가까이 지났고, 지금은 방문객이 많지 않은 조용한 시골 마을이 되었습니다. 제가 3년 넘게 제천 도시 중심부와 남부면 일대를 오가며 지역 구석구석을 다녔는데도 이 마을을 놓쳤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조금 멋쩍습니다.
영화의 구조 자체가 독특합니다. 이창동 감독은 역순 서사(Reverse Chronology)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역순 서사란 이야기의 결말을 먼저 보여주고,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며 그 결말이 왜 생겨났는지를 하나씩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관객은 망가진 인간을 먼저 목격하고, 점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 구조 덕분에 처음에 밉게 느껴졌던 주인공 영호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성장이나 변화를 순서대로 보여준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은 그 반대입니다. 그리고 그게 오히려 더 강렬하게 작동합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단순한 역사적 배경으로 쓰지 않고, 한 인간의 내면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지금 다시 봐도 묵직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영화 속에서 국가 폭력이 영호라는 인물에게 남긴 것은 단순한 트라우마(Trauma)가 아닙니다. 트라우마란 극도로 충격적인 경험이 심리적 상흔으로 남아 이후의 판단과 행동을 왜곡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영호는 그 이후 감정을 닫고, 타인에게 폭력적인 사람으로 변해가는데, 그 과정이 너무 단계적이라 보는 내내 불편합니다. 제가 귀농귀촌 교육 현장에서 만났던 분들 중에도 비슷한 흐름을 걷는 경우를 봤습니다. 처음에는 부푼 꿈을 갖고 왔다가, 복잡한 가정사와 경제적 압박이 겹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무너져 갔습니다. 그 모습이 영호와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촬영지로서 진소마을이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영화 자체가 대중적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5.18 기념 주간이 돌아올 때마다 다시 꺼내 보게 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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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가 말한 자유, 실제로 적용해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다"고 했습니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의 핵심 명제입니다. 실존주의란 인간은 미리 정해진 본질 없이 태어나며,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간다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듣기엔 멋있습니다. 하지만 제 삶에 실제로 대입해보면 이야기가 상당히 복잡해집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병든 부모님을 부양하고, 자식을 최선을 다해 키웠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결국 이렇게 제천으로 내려왔습니다. 이게 진정으로 자유로운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내몰린 결과인지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사르트르의 언어로 따지면 저는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 앞에 놓인 조건들을 생각하면 마냥 그렇게 보기도 어렵습니다.
사르트르는 이런 상태를 자기기만(Bad Faith)이라고 불렀습니다. 자기기만이란 자신에게 실제로 선택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영화 속 영호가 딱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도 가끔 그 경계에서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사회적 압박이나 가족 문제 앞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너무 쉽게 나오더라고요.

제가 특히 요즘 고민하는 건, 30대가 된 자식이 스스로 선택한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면서 경제적 부담은 여전히 부모에게 미루는 상황입니다. 사르트르 식으로 보면 이건 자유가 아닙니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르고, 그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순간 그것은 자기기만의 다른 이름이 될 뿐입니다. 퇴직 후 저는 어렵사리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채용이 거절되고 대신 민간점검원 일과 경제조사원 일을 하며 남편은 자동차정비 일을 알아보면서 성인 자식의 생활비를 마련하는 상황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는지, 솔직히 무겁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단순히 자식 탓으로, 또는 부모의 양육 실패로만 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취업난, 경쟁 구조, 자립을 막는 사회 시스템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청년층(15~29세) 체감 실업률은 20%를 웃돌고 있습니다(출처: 통계청). 개인의 의지와 사회 구조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하는지, 영화 박하사탕은 그 질문을 25년째 던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역순 서사 구조로 인해 결말을 먼저 알면서도 과거를 따라가게 되는 몰입감
-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단순 배경이 아닌 인물 변화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
- 자기기만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이론이 아닌 한 인간의 삶으로 구체화한 서사
- 국가 폭력과 개인의 선택 사이에서 "그건 정말 그의 잘못인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유보
이 네 가지가 겹쳐지면서 영화는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적 질문지가 됩니다.
영화 박하사탕과 장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연결해서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핵심은 하나입니다. 인간은 선택해야 하는 존재이지만, 그 선택이 이루어지는 환경 자체가 이미 폭력적이거나 불균형하다면, 그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만 지우는 것은 무리입니다. 제천 진소마을을 찾아가는 일도, 영화를 다시 보는 일도, 결국은 이 질문과 한 번 더 마주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봄이 지나기기전 한 번 직접 가볼 생각입니다.
🤔 생각해볼 질문
인간은 시대의 폭력 속에서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까?
나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는 않을까?
시간이 지나며 변한 내 모습 중, 정말 내가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참고: https://namu.wiki/w/%EC%9E%A5%ED%8F%B4%20%EC%82%AC%EB%A5%B4%ED%8A%B8%EB%A5%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