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니체 초인의 진짜 의미
왜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는가
현실에서 자기극복을 실천하는 방법
칠판 앞이 뿌옇게 번지던 날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안과에서 약시 판정을 받았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안경 하나 맞추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임용 신체검사에서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30년을 버텼습니다. 퇴직 후 지금도 민간점검원으로 직접 운전하며 현장을 다니는 삶. 그 삶 속에서 처음으로 니체를 읽고 눈물이 났습니다.
인간은 왜 부족하다고 느끼는가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간을 "동물과 초인 사이에 걸쳐진 다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이 처음엔 그냥 문학적 수사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이 한 문장이 삶의 불편한 진실을 건드린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니체 철학에서 핵심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실존주의(Existentialism)입니다. 실존주의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고정된 본질을 갖는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쉽게 말해 "네가 어떻게 살았느냐가 네가 누구인지를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부족하다는 감각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시력은 늘 불편했고, 동생들까지 챙겨야 했던 집안 형편은 선택지를 좁혔습니다. 공무원이 된 뒤에도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은 불안이 항상 어디선가 저를 짓눌렀습니다. 그런데 니체는 그 불안 자체가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완성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고, 그 감각이 오히려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초인이란 누구인가, 오해와 진짜 의미
초인(Übermensch, 위버멘쉬)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서 위버멘쉬란 독일어로 '위를 향해 넘어서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특별한 능력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어제의 자신을 넘어서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슈퍼히어로가 아닙니다. 성공한 CEO도 아닙니다. 이처럼 변화 속에서의 선택 기준은다크 나이트의 도덕적 갈등과도 이어집니다.
저도 처음엔 니체를 그냥 허무주의를 외치는 철학자로만 받아들였습니다. "신은 죽었다"는 말만 떠올렸으니까요. 그런데 그가 마지막에 길거리에서 채찍질 당하는 말의 목을 부여잡고 오열하다 쓰러졌다는 일화를 읽었을 때, 저는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철학자가 아니라 한 인간이, 삶에 너무 격렬하게 반응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가 말한 초인의 개념이 그때부터 다르게 읽혔습니다.

니체의 의지력(Will to Power, 권력의지)도 자주 오해받는 개념입니다. 권력의지란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스스로 뛰어넘으려는 내면의 충동을 의미합니다.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자신을 극복하는 힘입니다.
이 해석을 알고 나면 록키가 왜 니체의 초인과 연결되는지 바로 이해가 됩니다.
록키와 자기극복의 철학
영화 록키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필라델피아의 무명 복서. 기대받지 못한 삶. 낮은 자존감. 그런데 그가 결국 링 위에 서는 장면을 볼 때마다, 저는 그 이야기가 단순한 스포츠 영화가 아니라는 걸 느낍니다. 이러한 자기통제와 태도는 마션의 문제 해결 방식과도 연결됩니다.
록키의 훈련 철학을 자기극복이라는 틀로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비교 대상을 타인이 아닌 어제의 자신으로 바꾼다
- 고통을 피하지 않고 성장의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 결과(챔피언)보다 과정(끝까지 버티는 것)을 우선한다
이러한 선택의 문제는 인터스텔라에서도 극한 상황 속 성장으로 나타납니다.
저도 퇴직 후 가장 기피하던 운전을 하며 현장을 돌아다니는 일을 시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한쪽 시력이 거의 나오지 않는 눈으로 운전을 하는 게 두렵지 않았냐고요.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하지 않으면 삶 자체가 멈추는 기분이었습니다. 니체가 "멈추는 순간 인간은 무너진다"고 했을 때, 저는 그 말이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라 제 일상의 언어로 들렸습니다.
록키가 새벽에 계단을 뛰어오르는 장면은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장면의 핵심은 어제보다 한 계단 더 오르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니체의 자기극복(Selbstüberwindung)과 정확히 겹치는 지점입니다. 자기극복이란 외부의 조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는 태도 자체를 뜻합니다.
성장은 선택이 아니라 존재 방식이다
아득바득 살아도 돈을 많이 벌지 못했고, 자식이 크게 잘나가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명예도 없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건지, 솔직히 문득문득 회의감이 듭니다. 그냥 오늘 하루 열심히 살면 언젠가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으로 삶을 붙들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직접 니체의 텍스트를 읽어보니, 그가 말하는 성장은 결과와 무관합니다. 니체 철학에서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개념이 나오는데, 영원회귀란 "지금 이 삶이 무한히 반복되더라도 똑같이 살겠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사유 실험입니다. 결과적으로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그 과정을 충분히 살았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한참 멍하니 있었습니다.
성인 발달 심리학 분야에서도 유사한 근거가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결과보다 스스로 선택하고 지속한 과정에서 더 큰 의미감을 얻는다는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니체가 19세기에 직관으로 포착한 것을 현대 심리학이 데이터로 확인한 셈입니다.
철학 연구자들에 따르면 니체의 초인 사상은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대안으로 제시된 개념이며, 이는 단순한 강함이 아니라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출처: 한국니체학회). 삶이 힘들고 괴롭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그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니체가 말한 초인의 실천입니다.
남편도 자식들도 제 시력에 관심이 없고, 어떻게 운전하며 다니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 외로움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외로움 속에서도 오늘 현장을 다녀왔다는 사실, 그것이 어제의 저를 한 발 넘어선 것이라고 이제는 생각하려 합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계속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초인에 가까워진다는 니체의 말이, 제게는 가장 현실적인 위로입니다.
니체가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삶에 대한 의지를 붙들었던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부터, 저는 그의 철학을 조금 다른 눈으로 읽게 됐습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충실하며 "너 자신이 되어라"는 말의 무게가, 이제는 비로소 느껴집니다. 록키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 오늘도 그게 전부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되새깁니다. 이 글이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감각을 느끼는 누군가에게도 닿았으면 합니다.
🤔 생각해볼 질문
나는 지금 성장하고 있는가, 아니면 반복하고 있는가?
나의 기준은 타인인가, 과거의 나인가?
나는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