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조커는 왜 탄생했는가
사회와 개인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인간은 본래 폭력적인 존재인가
괴물은 태어나는 걸까요, 아니면 만들어지는 걸까요. 영화 조커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질문 앞에서 한동안 멈췄습니다. 아서 플렉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면서 불편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건, 그게 단순한 악당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서 플렉은 처음부터 괴물이었는가
직접 겪어보니 이런 질문이 참 불편합니다. 뉴스에서 끔찍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가해자를 향해 "원래 저런 사람이었겠지"라고 말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 판단이 얼마나 성급한 것인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서는 폭력적으로 태어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감정 조절이 어려운 신경학적 조건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신경학적 조건이란 뇌와 신경계의 구조적 차이로 인해 감정이나 행동 조절이 일반적인 방식과 다르게 나타나는 상태를 말합니다. 아서의 경우 부적절한 상황에서 웃음이 터지는 증상이 그 예입니다. 그는 이 증상을 스스로도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고통받습니다.
심리학계에서는 범죄 행동의 원인을 분석할 때 단일 요인이 아닌 생물심리사회적 모델(Bio-Psycho-Social Model)을 적용합니다. 생물심리사회적 모델이란 개인의 생물학적 기질, 심리적 내면, 사회적 환경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여 한 인간의 행동을 형성한다는 관점입니다. 실제로 제가 범죄 관련 방송을 보면 변호사, 심리학자, 경찰, 기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나와 사건을 각기 다른 층위에서 해석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합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그만큼 여러 시각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사회구조가 사람을 밀어내는 방식
미셸 푸코의 규율 권력(Disciplinary Power) 개념은 조커를 이해하는 데 정말 핵심적입니다. 규율 권력이란 사회가 감시와 규범을 통해 개인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분류하고, 비정상으로 낙인찍힌 사람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아서는 정확히 이 배제의 대상이 됩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는 점은 매트릭스의 현실 인식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그를 위한 복지 서비스는 예산 삭감으로 끊기고, 직장에서는 해고당하고, 거리에서는 폭행을 당합니다. 사회는 그를 이해하거나 돕는 대신 그냥 밀어냈습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보면서 든 생각은, 이건 영화 속 고담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도 정신건강 서비스 접근성은 여전히 낮습니다. 국내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과 인프라 현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정신질환 경험자 중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비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출처: 국립정신건강센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을 보면 비슷한 구조가 보입니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에게도 때로는 관계에서 어려움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를 탓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입니다. 집단 괴롭힘이 용인되는 분위기, 그것을 묵인하는 어른들, 경쟁을 부추기는 구조 자체가 함께 다루어져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조커와 현실이 겹칩니다.
선택과 책임, 실존주의가 던지는 질문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논의가 너무 단순해집니다. 사회가 나쁘니까 개인은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결론은 위험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조커를 단순한 피해자 서사로 읽으면 안 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장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Existentialism)는 이 지점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실존주의란 인간은 어떤 본질이나 운명에 의해 결정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했습니다. 아서는 분명 여러 번 선택의 기회를 가졌고, 결국 조커가 되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선택의 문제는 인터스텔라에서도 감정과 이성 사이의 선택으로 나타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층위의 이야기입니다. 환경이 선택을 어렵게 만들 수는 있지만, 선택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사르트르가 말한 대로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입니다. 문제는 그 책임을 지는 것이 공평하게 가능한 환경인가 하는 것입니다. 억압적인 구조 속에서 주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그 불공평함을 인정하면서도 선택의 책임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조커가 우리에게 남기는 진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폭력성과 사회계약의 붕괴
영화 후반부의 폭동 장면은 토마스 홉스의 자연상태(State of Nature) 개념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연상태란 홉스가 말한 사회 질서가 붕괴된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그는 이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서 한 사람의 폭력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폭동으로 변하는 장면은, 조커가 단지 개인의 광기가 아니라 사회적 분노의 폭발임을 보여줍니다.
조커가 살고 있는 고담시의 불평등 구조는 단순히 배경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사회계약론(Social Contract Theory)의 파탄입니다. 사회계약론이란 개인들이 서로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 자신의 자유 일부를 국가나 사회에 위임한다는 이론으로, 홉스는 이 계약이 무너지면 폭력적 혼돈이 온다고 경고했습니다. 고담시의 시민들은 이미 그 계약이 자신들에게 아무런 혜택을 주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었고, 조커는 그 분노에 불을 붙인 셈입니다. 이러한 사회 구조의 붕괴는 설국열차의 계급 갈등과도 닮아 있습니다.
실제로 사회적 박탈감과 폭력 범죄 사이의 상관관계는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세계보건기구(WHO)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폭력 발생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WHO). 조커가 묘사하는 사회 붕괴는 과장된 허구가 아니라, 극단적인 방식으로 가시화된 현실의 경고에 가깝습니다.
조커 탄생의 핵심 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회적 배제: 복지 서비스 단절, 고립, 반복적 폭력 피해
- 심리적 취약성: 신경학적 조건과 외상(트라우마)의 누적
- 구조적 불평등: 계층 간 불평등과 사회계약의 붕괴
- 개인의 선택: 분노를 폭력으로 전환하는 최종 결정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작동했을 때 '조커'라는 존재가 탄생합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조커는 사회도 개인도 어느 한쪽만의 책임이 아닌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살고 있는 구조를 좀 더 의식하게 되었고, 동시에 그 구조 안에서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결국 제 몫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독자분들께도 조커를 단순한 악당 영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와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한 번 더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철학을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아서 플렉의 이야기는 이미 그 자체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생각해볼 질문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고 있는가?
개인의 선택은 어디까지 자유로운가?
나 역시 다른 환경이었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 가능성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