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저는 직장인과 주부라는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며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퇴직 후 비로소 "나만의 삶"을 일구겠다는 일념으로 귀농 교육을 받고 텃밭에 섰을 때, 제가 마주한 것은 낭만적인 전원교향곡이 아니라 흙투성이가 된 채 굳어버린 근육과 현실의 벽이었습니다. 제 손으로 텃밭을 일구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는 걸 깨달았습니다.누군가의 아내나 엄마, 직원이 아닌 오직 '나'로서 존재하려 했던 첫 시도가 이토록 버거울 줄은 몰랐습니다.막상 독립적인 삶을 시도하니 현실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그 막막한 텃밭에서 문득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논란의 중심이었지만, 제게는 절반은 과거의 제 모습이었고 절반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처럼 다가왔습니다. 사회가 규정한 '대상'으로만 존재하다가 비로소 '주체'가 되려 할 때 마주하는 이 기묘한 불안감.
오늘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선언한 실존주의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실존주의 철학적 시선을 빌려, 영화 속 김지영의 억압과 제가 텃밭에서 일구고 있는 귀농경험을 통해 '주체성'이라는 화두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 합니다.
제2의 성과 타자화, 우리가 익숙한 그 이름들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49년 출간한 <제2의 성>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여기서 '타자화(Othering)'란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규정하는 사회적 과정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여성이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 엄마, 딸로만 정의되는 현상입니다.
제가 직장을 다니던 30년 동안 제 이름보다 "누구 엄마"로 더 자주 불렸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40대 이상 기혼 여성의 68%가 가족 관계 호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고 응답했습니다(출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는 단순한 호칭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정체성이 관계 안에서만 규정되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영화 속 김지영이 겪는 '빙의' 현상은 바로 이 타자화의 극단적 표현입니다.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한 존재가 엄마의 목소리, 친구의 목소리를 빌려서라도 세상에 외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보부아르는 이를 "내재성의 굴레"라고 표현했는데, 여성이 자신을 초월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회귀하도록 강요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상황 속의 자유, 귀농 3년차의 깨달음
보부아르의 실존주의는 사르트르와 달리 "상황(Situation)"을 중시합니다. 여기서 상황이란 우리가 태어난 성별, 계층, 시대 등 선택할 수 없었던 조건들을 말합니다. 중요한 건 상황 자체를 바꿀 수 없더라도, 그 상황에 대응하는 태도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귀농 첫해에 농촌 생활의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텃밭을 둘러보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삶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2년차에 농업 실전 교육을 받으면서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여성 혼자서 농사를 지으며 경제적으로 자립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물리적 힘의 차이가 농촌 노동에서 얼마나 큰 변수인지 체감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4년 귀농귀촌 실태조사에 따르면, 귀농인 중 3년 이내 포기하는 비율이 42%에 달하며, 특히 1인 가구 여성의 경우 그 비율이 61%로 더 높았습니다(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제가 겪은 어려움이 저만의 것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런데 3년차인 지금, 저는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민간점검원 일과 텃밭 가꾸기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독립"에 실패한 것 같아 자책했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상황 속의 자유란 모든 걸 혼자 해내는 게 아니라,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더군요. 제가 매일 에어코리아로 대기질을 점검하고, 종량제 봉투 세 장을 아껴 쓰며 환경을 생각하는 것도 제 나름의 주체적 선택입니다.
글쓰기와 창조적 행위, 주체성의 증명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지영이 다시 펜을 잡는 순간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보부아르는 창조적 행위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실존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창조적 행위'란 예술 작품 창작뿐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모든 활동을 포괄합니다.
제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직장 생활 중 업무 노트를 분실했을 때, 처음엔 막막했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제가 쌓아온 경험과 생각은 노트에만 있는 게 아니라 제 안에 있다는 것을요. 그 후로 저는 꾸준히 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글들이 모여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창조적 행위는 소유나 역할이 아닌 '존재 자체'를 증명합니다. 김지영이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취미 활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는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김지영이라는 한 명의 작가"라고 세상에 선언하는 행위입니다. 제가 텃밭을 일구고 환경 점검 활동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행위가 '제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창작 활동에 참여하는 50대 이상 여성의 삶의 만족도가 비참여자보다 평균 23% 높게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조적 행위가 실제로 주체성 회복과 삶의 질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입니다.
평등의 재정의, 각자의 몫을 다하는 삶
<82년생 김지영> 개봉 이후 한국 사회에서 성평등 논의가 활발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귀농 경험을 통해 평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모든 일을 똑같이 나누는 것이 평등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 아들은 독립 후 청소, 빨래, 요리를 모두 스스로 합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하지만 농촌에서 농사일을 하다 보니, 물리적으로 힘이 필요한 일과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일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건 역할 분담이 아니라, 서로 충분히 대화하고 의견을 조율하며 각자의 몫을 해내는 것입니다.
보부아르가 말한 '상호적 인정(Reciprocal Recognition)'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상대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함께 나아가는 관계 말입니다. 제가 남편에게 텃밭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남편이 그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도, 우리 둘 다 주체적인 선택입니다.
여성가족부의 2024년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부부 중 이름 대신 "누구 아빠/엄마"로 부르는 비율이 여전히 73%에 달합니다. 하지만 40대 이하에서는 그 비율이 38%로 급격히 낮아졌습니다. 세대 간 변화가 분명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작정 똑같이 나누는 평등이 아니라, 각자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평등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귀농 3년차를 맞으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주체적인 삶이란 모든 걸 혼자 해내는 것도, 누군가에게 완전히 의존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제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해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보부아르가 말한 실존이고, 김지영이 다시 펜을 잡으며 시작한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82년생 김지영의 고통이 점차 사라지는 사회,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각자의 주체성을 잃지 않는 사회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