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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2막13

80대까지 일해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할까 《인턴》이 말하는 퇴직 후 행복('왜 우리는 남과 비교하며 불안해할까' 김경일 교수의 강연) 어느 날 문득, 남의 SNS를 보다가 핸드폰을 내려놓은 적이 있습니다. 화면 속 누군가는 이미 새 직장을 잡았고, 또 누군가는 해외여행 중이었습니다. 제가 느낀 건 부러움이라기보다 설명하기 어려운 조급함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영화 《인턴(The Intern, 2015)》을 다시 꺼내 든 건 바로 그날 밤이었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다시 생각해보려 합니다.누군가의 이력서에는 '70세, 인턴'이라고 적혀 있다영화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잘 차려입은 노신사가 노트북 앞에 앉아 짧은 자기소개 영상을 녹화합니다. 이름은 벤 휘터커, 나이는 일흔. 그는 전화번호부 인쇄회사에서 40년을 일하고 은퇴했습니다. 아내도 세상을 떴고, 자녀들은 각자의 삶을 삽니다. 요.. 2026. 10. 3.
나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한국 영화 《인턴》과 보부아르가 바라본 나이와 일의 의미 버스를 놓쳤습니다. 영화 시작 시간은 다가오는데, 다음 버스를 기다리다간 첫 장면을 통째로 날릴 것 같았습니다. 결국 택시를 탔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이동 시간이 이 글 전체를 만들었습니다. 택시를 운전하시던 기사님이 "저 66세인데, 75세까지는 일해야죠"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영화관을 나온 뒤에도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75세까지 일해야지'가 아니라 '75세까지는 일할 거야'였습니다. 그 온도 차이가 작지 않았습니다.37년 경력자가 다시 인턴이 된다는 것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스포일러 없이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지점이 있어서요.2026년 9월 16일 개봉한 한국 영화 《인턴》에서 최민식이 연기하는 기호는 37년간 직장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젊은 CEO 선.. 2026. 9. 18.
30년 전에는 보지 못했던 메밀꽃: 《메밀꽃 필 무렵》 × 칸트 × 《천국의 나날들》 넓은 밀밭이 바람에 쓸린다. 카메라는 아무도 쫓아가지 않는다. 그냥 거기 있다. 테런스 맬릭의 《천국의 나날들》(1978)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인물의 대사가 아니라 바로 그 장면입니다. 황금빛 들판이 저녁 빛에 잠기는 그 몇 초 동안, 저는 스크린 앞에서 이상한 질문 하나를 붙들고 있었습니다."아름다움이란 것은, 볼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일까?"그 질문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봉평의 메밀꽃밭 앞에 섰을 때 그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달빛 아래 메밀꽃과 맬릭의 들판, 그 풍경이 묻는 것30여 년 전 처음 봉평을 찾았을 때는 솔직히 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이효석 문학관 입구를 서두르던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무엇을 먹일지, 다음 목적지까지 시간이 .. 2026. 9. 7.
다시 무대에 서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 《Stages》 × 찰스 테일러의 진정성 철학 아들과 나란히 공연장 바닥에 서 있던 그 밤이 자꾸 떠오릅니다. 처음엔 서기 싫다며 그냥 가겠다고 했던 아이가, 막상 가수의 표정을 가까이서 보더니 조금씩 몸이 풀렸습니다. 그 순간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아이는 지금 음악이 그리운 건지, 아니면 그때의 자기 자신이 그리운 건지. 며칠 뒤 영화 《스테이지》를 혼자 보면서, 그 질문이 다시 살아났습니다.밴드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영화는 벤 가르자가 처음으로 혼자 무대에 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그 장면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밴드가 있을 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름 석 자보다 밴드 이름이 먼저였고, 혼자 틀린 음 하나가 공연 전체를 망치는 법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울타리가 사라졌습니다.철.. 2026. 9. 6.
실업인정 교육을 놓친 날, 나는 새로운 삶의 리듬을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하루》 × 에픽테토스 실업인정 교육을 놓친 날 오후, 저는 차 안에서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고용센터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하루 전체를 흔들어놓았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하루를 잘못 살았다는 것이, 정말 내 삶 전체가 어긋나고 있다는 신호일까요? 홍상수의 《우리의 하루》는 바로 그 질문 앞에 조용히 서 있는 영화입니다.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홍상수는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찍었을까《우리의 하루》는 2023년 칸 영화제 감독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홍상수의 서른 번째 장편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사건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극적인 사건이 없습니다.인물들은 만나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 2026. 9. 4.
가족도 결국 서로 다른 한 사람을 만나는 관계다《우리들》 × 마르틴 부버 저는 오랫동안 가족이란 주말에는 함께 있어야 완성되는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주말에 남편이 자전거를 타러 나가면 왠지 섭섭했고, 아들이 혼자 게임을 하고 있으면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영화 한 편이 그 생각을 조용히 흔들어 놓았습니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은 초등학생들의 이야기인데, 보고 나서 제 머릿속에 남은 건 아이들이 아니라 저 자신이었습니다.피구 게임과 가족 안에서 '역할'로 존재하는 것《우리들》에는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체육 시간, 피구 팀을 나누기 위해 아이들이 하나씩 선택받는 장면입니다. 주인공 선은 마지막까지 지목되지 못하다가 어쩔 수 없이 팀에 끼게 됩니다. 팀 안에서도 선은 눈치를 살피며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밟지도 않은 선을 밟았다는 이유로.. 2026. 8. 30.
남편은 자전거를 타고, 아들은 게임을 하고, 나는 캠핑을 갔습니다 《김씨 표류기》 × 장자 이번 주말, 저는 계곡 캠핑장에 있었고 아들은 PC방에 있었고 남편은 자전거 도로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한 가족이 같은 날 전혀 다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 셈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이 상황 자체를 못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가족이 함께해야 가족답다는 생각,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주말이었습니다.소요유(逍遙遊)가 말하는 것: 각자의 리듬을 인정하는 법장자 철학에서 소요유(逍遙遊)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소요유란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본성에 맞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억지로 같은 모양에 끼워 맞추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고통이 커진다는 것이 장자 사상의 핵심입니다.저는 꽤 오래 이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주말마다 아들과 .. 2026. 8. 29.
내가 정착할 곳과 아들이 선택할 길 《죽은 시인의 사회》 × 에리히 프롬 솔직히 말하면, 저는 오늘 워크숍에서 꽤 많이 흔들렸습니다. 농촌에 정착하겠다고 준비하면서도 막상 오래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 앉으니 제가 얼마나 겉돌고 있는지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는 진짜 농촌에 정착할 거야?"라고 물었는데, 그 한 마디가 오히려 제 질문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도, 아들도, 결국 같은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워크숍이 드러낸 것, 정착의 민낯제가 참석한 자리는 도농순환 주민공모사업 워크숍이었습니다. 도농순환이란 도시와 농촌 사이를 오가며 자원과 사람이 상호 교류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단순히 농촌에 집을 얻는 것과는 다릅니다. 지역 사람들이 함께 문제를 발굴하고 사업을 구상하는 구조입니다. 저는 지인의 요청으로 참석했는데, 솔직히 처음.. 2026. 8. 28.
오늘은 아들에게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패터슨》과 장자가 말하는 나의 하루 솔직히 저는 그날 오후까지도 전화할 생각이었습니다. 습관이 그랬으니까요. 퇴근 시간 즈음이면 자연스럽게 아들 생각이 났고, "오늘 저녁은 뭐 먹었니?"가 하루의 마침표처럼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직을 하고 나서 그 습관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하루가 없어진 자리에 아들의 하루가 들어와 있었던 겁니다.실직 후 생긴 이상한 습관, 분리불안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직장을 잃고 나서 시간이 많아졌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더 바빠졌습니다. 일이 없으니 당연히 한가할 것 같은데, 오히려 아들에 대한 생각이 하루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밥은 먹었는지, 퇴근은 했는지, PC방에 간 건 아닌지.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이라고 부릅니다. 분리불안이란 애.. 2026. 8. 27.
엄마가 원하는 안정과 내가 원하는 삶은 다를 수 있다 《데미안》 × 헤르만 헤세 —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 아들이 "계속 다니기 싫다"고 말했을 때, 저는 잠깐 말을 잃었습니다. 정규직에 월세 지원에 근속 인센티브까지. 제가 퇴직 후 기간제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얼마나 간절하게 원했던 조건들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직후,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가 "엄마가 너무 원하는 걸 다 들어줘서 그렇다"는 말까지 듣고 나니, 울고 싶어졌습니다. 내가 잘못 키운 걸까. 더 냉정했어야 했을까. 그 혼란 속에서 오래된 책 한 권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습니다. OTT 새 가입이 귀찮아서 영화 대신 책으로 손이 갔는데,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싫다는 말 뒤에 있는 것솔직히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아들의 "싫다"가 단순한 불평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도 처음에는.. 2026. 8. 24.
할 일이 없어진 날, 다시 찾아간 곳에서 사람을 만났습니다 《리틀 포레스트》 × 장자 × 마르틴 부버 할 일이 없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으십니까. 바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그 순간이 더 낯설고 불안합니다. 저는 어느 아침, 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 질문 앞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텃밭에도 갈 수 없고, 특별히 해야 할 일도 떠오르지 않는 날. 귀농은 어렵고 귀촌여건도 안되고 직업을 갖기도 불가능한 지금, 정체성의 혼란 중에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다시 떠올린 건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묻는 핵심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속도로 살고 있습니까?"혜원의 귀향이 도망이 아닌 이유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영화의 줄거리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질문들이 오늘의 주제입니다.주인공 혜원은 도시에서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처음 그 장.. 2026. 8. 22.
영화 <와일드 씽>과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가 주는 인생 2막의 위로 퇴직 후 3년째 지방에 내려와 텃밭과 일자리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귀농귀촌이 이렇게 막막할 줄은 몰랐거든요. 그러던 중 전직 동료들과 함께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손재곤 감독의 이었는데, 20년 만에 다시 무대를 꿈꾸는 중장년 댄서들의 이야기가 가슴 어딘가를 세게 건드렸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머릿속에 맴돈 건 "그래서 나는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영화가 건드린 것: "넌 이미 끝났어"라는 말에 저항하기영화 의 주인공들은 세기말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 출신입니다. 표절 논란으로 강제 해체된 뒤 20년이 지났고, 각자는 생계형 방송 리포터, 빚더미 위의 솔로, 재벌가 며느리라는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 2026.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