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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한국 영화 《인턴》과 보부아르가 바라본 나이와 일의 의미

by cinema-1 2026. 9. 18.

버스를 놓쳤습니다. 영화 시작 시간은 다가오는데, 다음 버스를 기다리다간 첫 장면을 통째로 날릴 것 같았습니다. 결국 택시를 탔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이동 시간이 이 글 전체를 만들었습니다. 택시를 운전하시던 기사님이 "저 66세인데, 75세까지는 일해야죠"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영화관을 나온 뒤에도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75세까지 일해야지'가 아니라 '75세까지는 일할 거야'였습니다. 그 온도 차이가 작지 않았습니다.

37년 경력자가 다시 인턴이 된다는 것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스포일러 없이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지점이 있어서요.

2026년 9월 16일 개봉한 한국 영화 《인턴》에서 최민식이 연기하는 기호는 37년간 직장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젊은 CEO 선우(한소희)의 회사에 '실버 인턴'으로 들어갑니다. 경력 면에서 보면 어딘가 역설적인 설정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설정이 오히려 꽤 정직하다고 느꼈습니다.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는 순간, 나이나 경력과 무관하게 다시 배워야 할 것들이 생깁니다. 기호 역시 디지털 환경에 허둥대고, 젊은 동료들의 문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제 생각이 거기서 멈췄습니다.

저도 한때 새일센터에서 3개월 인턴으로 일했습니다. 사무 업무를 배우고, 팀장님의 꼼꼼한 요구에 응하면서, 직장이라는 공간이 월급을 받는 장소 이상이라는 걸 다시 실감했습니다. 동시에 분명히 알게 된 것도 있었습니다. 인턴은 인턴일 뿐이라는 것. 다음 단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기호의 설정이 영리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37년의 경험을 잃어버린 게 아닙니다. 다만 그 경험이 화면에 바로 보이는 기술 형태로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 판단의 여유, 관계를 맺는 속도 같은 것들은 시스템 로그인 능력과는 다른 종류의 자산입니다. 영화는 기호가 젊은 조직에 무언가를 가르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에게 없는 것을 발견하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인턴(한국영화)과 보부아르의 철 학사상 이미지

 

 

보부아르와 아렌트가 '늙는다는 것'에 던진 질문

이 지점에서 두 철학자를 불러오고 싶습니다.

먼저 프랑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입니다. 《제2의 성》으로 잘 알려진 그는 말년에 《노년(La Vieillesse)》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여기서 보부아르는 노년을 단순히 몸이 늙는 과정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타자화(Othering)'라는 개념을 통해 노년을 설명합니다. 타자화란 사회가 특정 집단을 '저쪽 사람들'로 규정함으로써 그들의 가능성을 미리 닫아버리는 과정을 뜻합니다. 노인을 '이미 지나간 존재'로 분류하는 순간,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질문조차 받지 못하게 됩니다(출처: Simone de Beauvoir, 『노년(La Vieillesse)』, 1970).

솔직히 처음엔 이게 너무 이론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구직을 다시 준비하면서 이 개념이 꽤 구체적으로 체감되었습니다. 이력서를 넣기도 전에 나이가 먼저 보이는 것처럼 느껴질 때, 보부아르가 말한 타자화가 그냥 책 속 개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다음은 독일 출신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입니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에서 인간의 활동을 세 층위로 나눴습니다(출처: Hannah Arendt,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1958).

  • 노동(Labor): 생존을 위해 반복되는 활동. 먹고 자고 다시 일하는 순환.
  • 작업(Work):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는 활동. 물건을 만들거나 기록을 남기는 것.
  • 행위(Action): 타인과 함께하는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

아렌트에게 가장 중요한 층위는 세 번째 '행위'입니다. 행위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말하고 관계 맺으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뜻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직장을 잃는다는 건 월급만 사라지는 일이 아닙니다. 매일 만나던 사람, 내가 맡았던 역할,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함께 흐려집니다. 실직 이후의 공허함이 경제적 불안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인턴을 마치고 나서 느꼈던 허전함도 그런 성격이었습니다. 소득이 없어서만이 아니라, 내가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감각이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몇 살까지'보다 '어떤 삶을 위해'

영화관에서 돌아오는 길, 택시기사님의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75세까지는 일하고 싶어요."

그 말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숫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언제까지 일할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회가 정한 정년이나 주변의 시선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속도를 자기가 가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현실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압니다. 노동시장에는 연령의 벽이 있고, 개인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조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방향까지 사회가 대신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 속 기호가 보여주는 것도 그 지점입니다. 그는 젊은 직원들과 똑같아지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시간이 만들어준 방식으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도 그를 통해 자신에게 없는 경험을 만납니다. 이것은 '나이 들어도 젊은 것처럼 일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이가 다르면 일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인생 2막이 인생 1막의 복사본일 필요는 없습니다. 예전과 같은 직업, 같은 방식, 같은 성취를 반복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들고 지금의 나에게 맞는 자리를 새로 찾는 것, 그게 인생 2막일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아직 답이 없습니다. 몇 살까지 일할지도, 어떤 일이 맞는지도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턴》을 보고 나서, 그리고 보부아르와 아렌트를 다시 꺼내면서, 질문 하나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나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에서 '나는 어떤 삶을 위해 일할 것인가'로. 그 질문을 스스로 붙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이미 2막의 시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생각해 볼 세 가지 질문

첫째, 나는 일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가?
소득, 사회적 역할, 인간관계, 성취감, 생활의 규칙성 가운데 지금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둘째,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 가운데 내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직함이나 회사 이름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능력,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 책임감, 생활 경험처럼 새로운 일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남이 정한 정년과 별개로 내가 원하는 ‘일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
오래 일하는 것이 목표일 수도 있고, 적게 일하면서 다른 활동을 함께하는 것이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에 맞는 방식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참고한 철학 자료

  •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The Coming of Age)》의 노년과 타자화에 관한 논의. 보부아르는 노년을 생물학적 변화만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조건과 타인의 시선 속에서 경험되는 현상으로 분석했습니다.
  •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의 노동·작업·행위에 관한 논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세 범주로 구분하고 특히 행위를 타인과 함께하는 세계에서 인간의 자유와 개별성이 드러나는 활동으로 분석했습니다.
  • 영화 《인턴》, 김도영 감독, 최민식·한소희 주연. 2026년 9월 16일 개봉, 37년 사회생활 경력의 실버 인턴 기호와 젊은 CEO 선우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8B%9C%EB%84%A4%EB%A7%88%20%EC%B2%9C%EA%B5%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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