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31 청년은 왜 시대 앞에서 괴로워하는가─ 《동주》 × 장폴 사르트르 《동주》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 영화가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을 줄 몰랐습니다. 독립운동 영화라는 말에 어떤 뜨거움을 기대했는데, 막상 스크린 앞에 앉으니 영화는 시종일관 낮은 목소리로만 말했습니다. 흑백의 화면 속 청년은 총을 들지도, 군중을 이끌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되묻고 또 되물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묘하게 멈칫했습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영화 속 침묵이 던지는 철학적 물음이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건 단순한 서사가 아니었습니다. 윤동주라는 인물이 가장 자주 하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자기 응시입니다. 그는 사촌 송몽규가 직접 투쟁의 길로 나아가는 동안, 혼자 방 안에서 시를 씁니다. 그리고 그 행위 자체를 부끄러워합니다. ".. 2026. 6. 12. 왜 권력은 생각하는 청년을 두려워할까─ 《박열》 × 한나 아렌트 재판정에서 박열은 조선 옷을 입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선언이었습니다. 굴복하지 않겠다는, 당신이 정의한 세계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법정이 아니라 철학 강의실을 떠올렸습니다. 박열이 권력을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본질을 해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재판정의 박열, 아렌트가 말한 '생각하는 인간'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독립운동 서사 정도로만 받아들였습니다. 두 번째로 봤을 때, 재판 장면이 완전히 다르게 읽혔습니다. 일본 제국의 검사들이 박열을 심문하는 동안, 정작 당황한 쪽은 권력이었습니다. 그는 답을 숨기거나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질문을 되돌려 보냈습니다. 왜 국가는 인간의 사상을 두려워하는가, 라고.한나 .. 2026. 6. 11. 좋은 정치는 무엇으로 결정될까 《변호인》 × 공자 서양 철학은 오랫동안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제도와 계약으로 답해왔습니다. 홉스는 국가를 개인들이 생존을 위해 맺은 계약의 산물로 봤고, 롤스는 공정한 절차로 정의를 세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달랐습니다. 그에게 정치는 제도 이전에 사람의 문제였습니다. 이 두 시선이 충돌하는 지점에 영화 《변호인》이 서 있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단순히 잘 만든 법정 드라마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봤을 때 비로소 보였습니다. 이 영화가 묻고 있는 것은 특정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권력이란 무엇이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철학의 가장 오래된 질문이라는 사실을.감독이 숨긴 철학적 코드 — 무너지는 이름들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멈췄던 장면은 법정에서 차동영 검사와 송우석이 마.. 2026. 6. 6. 끝날 전쟁인데 왜 계속 싸워야 하는가《고지전》 × 알베르 카뮈 《고지전》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이상하게도 분노보다 멍함이 먼저 왔습니다. 총격전도, 전우의 죽음도 아니라 "곧 휴전인데 왜 아직도 싸우는 거죠?"라는 병사의 한 마디가 가슴에 걸렸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전쟁 서사가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건 그로부터 한참 뒤였습니다. 카뮈가 이 영화를 봤다면, 그는 아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맞다. 저게 바로 부조리다."감독이 숨긴 철학적 코드: 끝나지 않는 산, 반복되는 죽음장훈 감독은 애록고지를 단순한 전략적 요충지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 고지는 빼앗기면 다시 빼앗고, 탈환하면 또 빼앗기는 공간입니다. 승패는 없고 반복만 있습니다. 이 구조를 처음 의식했을 때, 솔직히 이 부분에서 멈칫했습니다.. 2026. 6. 4. 아들 장가보낸 엄마의 마음, 왜 이렇게 허전할까─ 영화 《맘마미아!》와 사르트르 실존주의 철학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자녀 결혼 후 부모가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빈 둥지 증후군’은 왜 찾아오는가영화 《맘마미아!》가 엄마들의 눈물을 건드리는 이유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중년 이후 삶에 주는 메시지자녀를 떠나보낸 후 부모가 다시 자기 삶을 찾는 방법 사랑을 다 쏟아붓고 난 자리는 왜 이렇게 고요할까요. 아이를 세상으로 내보내는 순간, 기쁨과 공허함이 동시에 밀려드는 그 감각 앞에서 저도 한참 멈춰 있었습니다. 영화 《맘마미아!》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그리고 노자의 도가 철학을 함께 들여다보면, 그 낯선 공허함이 사실 얼마나 깊은 철학적 물음을 품고 있는지 조금씩 윤곽이 잡혀옵니다.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시간 — 《맘마미아!》는 무엇을 묻는가영화 《맘마미아!》(감독 필리다 로이드, 2008)는 그리.. 2026. 5. 31. 《더 킹》으로 읽는 권력과 욕망 (니체의 권력 의지, 무위, 실존)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왜 인간은 권력을 가지면 변하는가니체가 말한 ‘권력 의지’란 무엇인가영화 《더 킹》이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성공 이후 더 공허해지는 인간 심리현대 사회에서 권력과 욕망이 작동하는 방식 "권력은 인간을 타락시킨다." 오래된 명제입니다. 그런데 《더 킹》은 이 명제를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타락이 권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이미 안에 있던 무언가를 끌어올린다고 이 영화는 말합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잘 만든 정치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로 봤을 때, 박태수의 눈빛이 달라 보였습니다.이 영화가 품은 철학적 질문 — 권력은 인간을 만드는가, 드러내는가박태수는 처음부터 악인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무시당하고, 세상의 규칙을 일찍 눈치챈 소년이었을 뿐입니다. 그가 검.. 2026. 5. 30. 삶의 목적을 꼭 찾아야만 행복할까─ 《소울(Soul)》 × 불교 철학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왜 우리는 끊임없이 “특별한 삶”을 꿈꾸는가불교는 왜 “진짜 나”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하는가번아웃과 공허함이 반복되는 이유영화 《소울》이 현대인의 불안을 어떻게 보여주는가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순간일 수 있다는 불교적 통찰 서양 철학은 오랫동안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불교는 그 질문 자체를 뒤집습니다. "'무엇을 위해'라는 집착이 이미 고통의 씨앗이다."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을 처음 봤을 때는 이 두 사유가 한 영화 안에서 이렇게 팽팽하게 충돌하고 있다는 걸 미처 몰랐습니다. 두 번째 봤을 때, 조 가드너가 피자 한 조각을 천천히 씹는 그 짧은 장면에서 손이 멈췄습니다.꿈을 이루는 순간 찾아온 공허함영화는 조 가드너가 평생 꿈꿔온 재즈 무대에 .. 2026. 5. 27. 《밀양》으로 읽는 용서의 철학 (불교의 사성제, 야스퍼스와 실존주의, 고통)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영화 《밀양》이 왜 인간의 가장 깊은 상처를 건드리는 작품인지불교 철학이 말하는 “고통”과 “용서”의 진짜 의미억지 용서가 왜 오히려 인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중장년기의 상실과 배신감을 다루는 현실적인 마음 수행 방법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보는 불교적 치유 방식 교도소 면회 장면이 끝나고 화면이 잠시 멈추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 이미 용서받았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신애의 얼굴이 무너지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등받이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습니다. 그건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분노였습니다. 피해자가 아직 고통 속에 허우적이는 동안, 가해자가 먼저 평안해지는 장면. 《밀양》은 그 부조리를 너무도 정확하게 찔러왔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한참을 이 영화와 .. 2026. 5. 26. 왜 우리는 슬픔을 피하려 할까─ 《인사이드 아웃》으로 보는 불교의 마음 수행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왜 인간은 슬픔과 불안을 자꾸 밀어내려 하는가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된 이유불교가 감정을 대하는 방식“마음 수행”이 현실에서 왜 중요한가감정을 없애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 애니메이션이라는 말을 듣고 별 기대 없이 앉았다가, 영화가 끝난 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슬픔이라는 캐릭터가 핵심 기억 구슬을 건드리는 순간, 뭔가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왜 불편했을까요. 아마도 그 파란 캐릭터가 저 자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동서양 철학이 오랫동안 씨름해온 바로 그 지점에서 건드립니다.슬픔이라는 캐릭터가 불편했던 이유처음 영화를 볼 때, 저는 솔직히 기쁨이 .. 2026. 5. 25. 부처님 오신날 《신과함께》로 읽는 업(業)과 실존의 심판 처음 《신과함께》를 극장에서 봤을 때,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화려한 CG 판타지로 소비하고 나왔습니다. 저승 차사가 등장하고, 불꽃이 튀는 지옥 법정이 펼쳐지는 장면들은 분명 볼거리가 풍부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소방관 김자홍이 재판정에서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는 그 표정이었습니다. 지옥의 스케일이 아니라 그 얼굴이 오래 남았습니다. 다시 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묻고 있는 것이 "어디서 벌 받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저승 법정이라는 거울 — 업(業)의 구조와 영화의 뼈대불교에서 업(業, karma)이란 단순히 "착하게 살면 복 받는다"는 통속적 의미가 아닙니다. 업이란 인간이 몸과 말과 마음으로 행한 모든 의도적 행위의 총체.. 2026. 5. 24. 왜 인간은 과거로부터 도망치지 못할까─ 영화 《박하사탕》으로 보는 장폴 사르트르의 자유와 책임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영화 박하사탕이 지금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장폴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와 책임의 의미폭력의 시대가 한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가인간은 정말 자신의 선택대로 살아갈 수 있는가상처받은 시대 속에서도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인가 저도 처음에는 박하사탕이 그냥 무거운 영화 하나로만 기억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제천에서 3년째 살면서 진소마을이 촬영지였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관련 글을 쓰다가 뒤늦게 알게 됐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가까이에 있던 것을 멀리서 찾고 있었던 셈입니다.시간을 거꾸로 돌린 영화, 진소마을이 간직한 기억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진소마을은 영화 박하사탕(2000년 개봉, 감독 이창동)의 주요 촬영지입니다. 영화가 개봉한 지 25년 가.. 2026. 5. 22. 계약종료, 나는 누구인가? 영화 업 인 더 에어로 보는 실존주의와 정체성의 위기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저는 처음으로 공장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30년 넘게 일이 곧 저였습니다. 최근 단기 계약직 만료를 앞두고 문득 이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일이 없어지면 나는 누구인가?" 영화 업 인 더 에어는 그 질문에 정면으로 답을 건네는 작품입니다.일이 곧 나였던 삶, 정체성 융합의 함정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계약 만료일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엄습해왔는데, 처음에는 그게 단순히 경제적 불안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일이 사라질 것 같다는 공포가 아니라, 제 자신이 사라질 것 같다는 공포였습니다.심리학에서는 이를 직업 정체성 융합(Occupational Identity Fusion)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직업 정체성 융합이란, 개인의 자.. 2026. 5. 6.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