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철학6 자연을 지키면서도 먹고살 수 있을까 《허니랜드》 × 한스 요나스 — 인간과 자연 사이의 책임 "반은 나를 위해, 반은 벌을 위해."이 짧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거창한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한 여자가 벌집 앞에서 중얼거리듯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장이 유독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쩌면 제가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는 것을 아주 단순하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배추 모종 하나가 품고 있던 질문실업급여 신청 결과를 기다리던 어느 여름, 저는 작은 텃밭에 배추 모종을 심었습니다. 친구 남편이 건네준 모종 몇 포기였습니다. 밭을 고르고 비닐을 씌우고 조심스럽게 심었는데, 며칠 만에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면서 잎이 힘없이 늘어졌습니다.물을 주며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 TV를 켜니 아랫지방에 폭우가 계속된다는 뉴스가 흘러나왔습.. 2026. 8. 19. 인간은 자연의 주인인가, 일부인가《프린세스 모노노케》로 읽는 노자의 자연철학 숲의 신 모로가 산을 등에 태우고 달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람을 가르는 흰 늑대의 발소리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그 순간, 저는 리모컨을 내려놓았습니다. 1997년에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웅장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면서는 달랐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멈춰,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연은 원래부터 인간 바깥에 있던 것인가." 마침 며칠 전 미세먼지 점검원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다시 쓰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지원동기 칸을 채우면서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는 걸,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노자가 경고한 것과 에보시가 선택한 것타타라 마을의 대장장이 에보시는 나쁜 사.. 2026. 8. 8. 환경을 지키는 것은 인간만을 위한 일일까 《월-E》로 읽는 아르네 네스의 심층생태학 마트 장바구니에 담긴 일회용 용기를 꺼내다가 문득 멈췄습니다. 오늘만 몇 개째인지 세어보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월-E》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쓰레기 더미 위에 홀로 남겨진 작은 로봇이, 아무도 보지 않는 지구에서 묵묵히 쓰레기를 압축하는 장면. 그 모습이 왜인지 낯설지 않았습니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어왔지만, 정작 '왜'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을 위해서? 미래 세대를 위해서? 그 대답 너머에 아르네 네스(Arne Næss)라는 철학자가 있었습니다.화분 하나를 조심스럽게 들고 가는 로봇의 손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영화 초반, 월-E는 폐허가 된 도시에서 홀로 일합니다. 감독 앤드루 스탠턴은 대사 없이 오직 화.. 2026. 8. 7.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투모로우》로 읽는 한스 요나스의 '책임의 원리' "우리가 경고했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았을 뿐이죠."영화 속 잭 홀 박사가 이 말을 내뱉는 순간, 저는 스크린을 보면서 묘한 감각이 들었습니다. 무서움도 분노도 아닌,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습니다. 뉴스에서 본 적 있는 표정, 회의실에서 들어본 적 있는 침묵 같은 것들이 겹쳐 보였습니다.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 2004)》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만든 재난 블록버스터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한스 요나스(Hans Jonas)의 책임의 원리와 함께 읽으면, 화면 속 폭풍보다 훨씬 무거운 무언가가 남습니다. 경고는 있었다, 듣는 귀가 없었을 뿐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장면은 해일도 빙하도 아닙니다. 잭 홀 박사가 정치인들 앞에서 기후 붕괴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 2026. 8. 5. 왜 우리는 지구보다 이미지를 더 소비하게 되었을까─ 《월-E》 ×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 철학 "인간은 필요한 것을 소비하는 존재다."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월-E》는 이 명제를 조용히 뒤집습니다. 인간이 지구를 떠난 이유가 전쟁도, 자연재해도 아니라 단순히 쓰레기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설정. 처음 봤을 때는 과장된 풍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봤을 때, 그 쓰레기 더미가 낯설지 않았습니다.감독이 숨긴 철학적 코드: 쓰레기는 욕망의 화석이다앤드루 스탠튼 감독은 인터뷰에서 《월-E》를 "인류가 만든 것들과 인류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 그냥 흘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지구 장면을 다시 떠올리면, 그 말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집니다.월-E가 매일 압축하는 쓰레기들은 단순한 폐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한.. 2026. 6. 7. "먼 나라의 전쟁과 우리 집 앞의 불길" :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레오폴드의 대지 윤리로 다시 쓰는 점검 일지" 예전의 저에게 환경이란 그저 막연한 배경에 불과했습니다. 미세먼지 민간점검원이라는 소명을 얻기 전까지, 발밑의 흙이나 굴러다니는 돌멩이는 그저 '말 없는 자연'일 뿐이었죠. 하지만 산업단지의 뿌연 하늘 아래 서서 차가운 대기질 측정기를 손에 쥐었을 때, 저는 비로소 대지가 우리에게 보내는 고통스러운 신호를 읽어내기 시작했습니다.영화 의 주인공 카렌은 광활한 아프리카의 땅을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저 역시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한 착각 속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태학자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가 제시한 '대지 윤리(Land Ethics)'를 만난 후, 그 믿음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레오폴드는 인간이 대지의 정복자가 아니라 그저 공동체의 '평범한 구성원.. 2026. 4. 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