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예전에 환경이라는 개념을 막연하게만 생각했습니다. 미세먼지 민간점검원으로 일하기 전까지는 흙이나 돌멩이 하나를 볼 때 '그냥 자연'이라고만 여겼죠. 그런데 산업단지의 뿌연 하늘 아래 서서 대기질을 측정하다 보니, 대지가 우리에게 보내는 고통스러운 신호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인공 카렌처럼, 저 역시 땅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주체라고 착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도 레오폴드가 제시한 대지 윤리(Land Ethics)를 접하면서, 우리는 대지의 정복자가 아니라 평범한 구성원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민간점검원의 눈에 비친 '고통받는 대지'
오늘도 순찰 중에 초록 풀들이 무성하게 돋아난 밭 가장자리에서 차량 내 쓰레기를 소각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이 정도 태우는 게 무슨 대수냐"는 말씀에, 작은 불씨가 큰 화재로 번질 수 있고 매캐한 연기가 대기질을 망친다는 점을 차근차근 설명해 드렸습니다. 과태료 이야기를 꺼내니 그제야 마지못해 불길을 잡으시더군요.
최근 미국과 이란 간의 긴장감이 높아지며 종량제 봉투 생산량이 줄어들고 판매가 제한되자, 역설적으로 우리 주변에 불법 소각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평화로운 우리네 농촌의 공기와 개인의 일상까지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광활한 평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유도 바로 우리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지 윤리, 인간 중심에서 생태 중심으로
알도 레오폴드는 그의 저서 『모래 군의 열두 달』에서 혁명적인 환경철학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윤리의 범위를 인간 사회를 넘어 토양, 물, 식물, 동물까지 포함한 '대지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는 대지 윤리(Land Ethics)입니다. 여기서 대지 윤리란 인간이 자연의 소유자가 아니라 생태계 공동체의 평범한 시민이라는 관점을 의미합니다(출처: 환경부 생물다양성 정보).
레오폴드는 대지의 온전성(Integrity), 안정성(Stability), 아름다움(Beauty)을 보전하는 것만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온전성이란 생태계가 본래의 기능과 구조를 잃지 않고 유지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제가 귀농 후 작은 텃밭을 일구면서 느낀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텃밭에서 잡초를 뽑다가 문득 멈춘 적이 있습니다. 그 풀들도 토양의 유실을 막고 영양분을 순환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레오폴드가 말한 '산을 생각하라(Thinking Like a Mountain)'는 표현이 바로 이런 의미였습니다. 눈앞의 이익만 쫓는 근시안적 사고를 버리고, 생태계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죠.
순찰중에 또 다시 산을 깍아내리는 공사현장에서 현장 소장님께 무슨공사냐고 물으니 산을 깍아 차고지를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 하나가 또 사라지는구나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생태중심주의가 지나치게 이상적이이며 그렇게 모든 것을 제한하면 인간이 먹고 살 수 있는게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대지 윤리는 이상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들이마시는 맑은 공기는 생태계가 건강할 때만 허락되는 선물이니까요.
영화 속 카렌, 소유에서 공존으로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1985년 개봉한 영화로, 케냐의 광활한 커피 농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카렌은 아프리카 땅을 소유하고 관리하려 하지만, 자연은 결코 인간의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가뭄과 화재, 사자의 습격은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라는 착각을 무참히 깨뜨립니다.
영화에서 카렌의 연인 데니스가 건네는 대사가 인상적입니다. "당신은 이 땅을 소유할 수 없어. 그저 이곳의 일부일 뿐이지." 이 말은 레오폴드의 대지 윤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인간은 자연의 정복자가 아니라 구성원이라는 관점 말입니다.
제 동생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동생은 직장 근처에서 떠돌던 길고양이를 돌보다가 퇴사하면서 집으로 데려와 키우고 있습니다. 산책할 때마다 고양이 간식을 챙겨서 길고양이를 만나면 나눠주곤 하죠. 고양이뿐 아니라 새, 물고기 같은 생명체를 만나면 슈바이처처럼 친근하게 대합니다. 동물학대 뉴스가 나오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자신은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도 고양이가 아프면 많은 돈을 들여 병원에 갑니다.
저는 동물보다는 식물이나 무생물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더 나아가 최근에는 돌멩이 하나에도 애착을 가지고 있죠. 누군가 나무를 함부로 베거나 꽃을 짓밟거나 돌에 낙서를 하면 화가 납니다. 관심 분야는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다만 동생이 저보다 슈바이처의 생명외경(Reverence for Life) 사상을 더 실천하고 산다면, 저는 레오폴드의 입장에서 자연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모든 것을 잃고 떠나는 카렌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평온해 보입니다. 소유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비로소 대지의 구성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시민적 의무
미세먼지 민간점검원으로 일하면서 저는 매일 대기질 수치를 측정합니다. 비산먼지가 날리는 공사 현장을 단속하고 불법 소각을 막는 일은 단순히 인간의 건강을 지키는 행위를 넘어섭니다. 이것은 대지 공동체의 온전성을 회복하려는 작은 몸부림입니다.
최근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미세먼지(PM2.5) 연평균 농도는 개선 추세이지만 여전히 WHO 권고 기준을 초과하고 있습니다(출처: 환경부 대기환경정보). 이 수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대지 공동체의 '건강 점수'이자 우리가 얼마나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집 앞 텃밭에서 캐낸 돌멩이들과 흙 한 줌을 볼 때, 예전과는 다른 시선이 생겼습니다. 이것들이 '내가 가진 물건'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생명 공동체'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생명중심주의 사상가들은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고 목적론적 자기실현을 하는 존재로 대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목적론적 자기실현이란 모든 생명체가 고유한 목적을 가지고 스스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레오폴드와 같은 생태중심주의에서는 생명을 지닌 존재들뿐만 아니라 무생물도 지구의 소중한 구성원으로 여깁니다. 저는 이제 이런 실천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 물 한 방울도 아껴 쓰고, 불필요한 낭비를 줄입니다
- 돌멩이 하나에도 감사하며, 함부로 버리지 않습니다
- 깨끗한 공기로 숨 쉬는 것이 생태계의 안정이 유지될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태도가 지나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텃밭을 가꾸고 대기질을 측정하는 현장에 서 보면, 이것은 과도한 요구가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미세먼지를 줄이는 노력은 단순히 제 폐 건강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이 땅의 모든 구성원을 위한 시민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레오폴드가 말했듯, 우리는 대지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평범한 시민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떠날 때 이 땅을 어떤 모습으로 남겨야 할까요? 적어도 우리가 받았던 것보다 더 나쁜 상태로 남기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카렌이 아프리카를 떠나며 느꼈을 그 평온함처럼, 우리도 언젠가 대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