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투성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하이데거의 피투성, 불교의 무상 "우리는 자신의 탄생을 선택하지 않았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남긴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당연한 말 아닌가,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실업 이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하루들을 보내다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떠올렸을 때, 그 말이 갑자기 다르게 읽혔습니다. 당연한 말이 아니라,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상실을 경험한 모든 사람에게 피투성(Geworfenheit)과 무상(無常)이라는 두 개의 렌즈를 건네며 묻습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뒤, 당신은 어떻게 살 것입니까.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불길 속에서 굳어버린 소년 — 피투성이란 무엇인가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2026. 9. 27. 나는 이 삶을 선택한 것일까 The Spirit of the Beehive 《벌집의 정령》과 하이데거로 바라본 ‘떠밀려 온 삶’과 새로운 가능성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어딘가에 던져져 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솔직히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철학 책 속 어느 관념적인 선언처럼 들렸거든요. 그런데 사과밭에서 사과를 따다가, 불현듯 그 말이 이해됐습니다. 제가 여기 있는 건 정말 제가 선택한 것이었을까요?벌집에도 질서는 있다, 하지만 자유는 없다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1973년 작 《벌집의 정령(The Spirit of the Beehive)》은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영화입니다.스페인 내전이 끝난 직후인 1940년대, 카스티야의 황량한 시골 마을. 일곱 살 소녀 아나는 마을에서 상영된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커다란 혼란에 빠집니다. 언니 이사벨은 "괴물은 죽은 게 아니라 정령이 되었다"고 말하고,.. 2026. 9. 16. 계약종료, 나는 누구인가? 영화 업 인 더 에어로 보는 실존주의와 정체성의 위기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저는 처음으로 공장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30년 넘게 일이 곧 저였습니다. 최근 단기 계약직 만료를 앞두고 문득 이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일이 없어지면 나는 누구인가?" 영화 업 인 더 에어는 그 질문에 정면으로 답을 건네는 작품입니다.일이 곧 나였던 삶, 정체성 융합의 함정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계약 만료일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엄습해왔는데, 처음에는 그게 단순히 경제적 불안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일이 사라질 것 같다는 공포가 아니라, 제 자신이 사라질 것 같다는 공포였습니다.심리학에서는 이를 직업 정체성 융합(Occupational Identity Fusion)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직업 정체성 융합이란, 개인의 자.. 2026. 5. 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