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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취업6

나이를 묻지 않는다고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턴》과 《더 컴퍼니 맨》으로 바라본 중장년 재취업과 노동의 존엄 저는 채용지원서를 보낸 뒤 하루 종일 메일함을 들여다봤습니다. 담당자가 읽었다는 표시는 떴는데, 아무 답이 없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지금도 기억합니다. 혹시 나이 때문은 아닐까.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력서 맨 위에 적힌 숫자 때문에. 그 의심이 떠오른 순간, 저는 두 편의 영화를 다시 떠올렸습니다.브리프케이스 하나로 출근하는 남자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인턴》(The Intern, 2015)에는 제가 오래 기억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70세의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가 첫 출근을 앞두고 양복을 다려 입고, 낡은 서류가방을 챙기는 장면입니다. 젊은 동료들이 후드티 차림으로 노트북을 끼고 들어오는 사무실에, 그는 마치 1970년대 맨해튼 직장인처럼 등장합니다.이 장면은 단순.. 2026. 10. 12.
동창은 NASA에 갔다 왔고, 나는 실업 상태였습니다 《어바웃 슈미트》 × 에픽테토스 퇴직 후 텅 빈 사무실 같은 집에 홀로 앉아 있는 남자. 잭 니콜슨이 연기한 워렌 슈미트는 마지막 퇴근을 마치고 돌아온 첫날 밤, 딱히 할 일이 없습니다. 30년 넘게 일한 보험회사는 아무 문제 없이 그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었고, 후임자는 정중하게 그를 돌려보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 표정을 지은 적이 있다고.오랜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동창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눈에 띄지 않던 친구인데, 지금은 서울의 유명 대학 교수가 되어 NASA까지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 마음은 축하보다 먼저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저는 그날 실업 상태였거든요.직업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 걸까워렌 슈미트의 가장 큰 고통은 실직이 아닙니다. 그는 정년.. 2026. 8. 31.
실망했는데 왜 후련했을까? 《드라이브 마이 카》와 붓다가 말하는 ‘놓아줌’의 의미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결과 자체보다 더 힘들 때가 있습니다. 될까 안 될까 하루에도 수십 번 생각이 오가고, 그 반복이 마음을 갉아먹습니다. 불교 철학에서는 이걸 고(苦, dukkha)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고(苦)란 단순히 큰 불행이나 고통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을 붙잡으려는 집착 자체에서 비롯되는 크고 작은 모든 불편함을 가리킵니다. 붓다가 말한 괴로움의 근원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마음을 묶어두는 방식에 있다는 겁니다.기다리는 마음이 괴로움을 키운다불합격이라는 사실은 하나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가", "이제 기회가 없는 것 아닐까" 같은 생각이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건 하나가 자신의 가치 전체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둔갑하는.. 2026. 8. 11.
왜 우리는 슬픔을 피하려 할까─ 《인사이드 아웃》으로 보는 불교의 마음 수행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왜 인간은 슬픔과 불안을 자꾸 밀어내려 하는가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된 이유불교가 감정을 대하는 방식“마음 수행”이 현실에서 왜 중요한가감정을 없애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 애니메이션이라는 말을 듣고 별 기대 없이 앉았다가, 영화가 끝난 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슬픔이라는 캐릭터가 핵심 기억 구슬을 건드리는 순간, 뭔가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왜 불편했을까요. 아마도 그 파란 캐릭터가 저 자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동서양 철학이 오랫동안 씨름해온 바로 그 지점에서 건드립니다.슬픔이라는 캐릭터가 불편했던 이유처음 영화를 볼 때, 저는 솔직히 기쁨이 .. 2026. 5. 25.
계약종료, 나는 누구인가? 영화 업 인 더 에어로 보는 실존주의와 정체성의 위기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저는 처음으로 공장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30년 넘게 일이 곧 저였습니다. 최근 단기 계약직 만료를 앞두고 문득 이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일이 없어지면 나는 누구인가?" 영화 업 인 더 에어는 그 질문에 정면으로 답을 건네는 작품입니다.일이 곧 나였던 삶, 정체성 융합의 함정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계약 만료일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엄습해왔는데, 처음에는 그게 단순히 경제적 불안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일이 사라질 것 같다는 공포가 아니라, 제 자신이 사라질 것 같다는 공포였습니다.심리학에서는 이를 직업 정체성 융합(Occupational Identity Fusion)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직업 정체성 융합이란, 개인의 자.. 2026. 5. 6.
영화 인타임으로 쉽게 이해하는 롤스 정의론 (무지의 베일·차등의 원칙·재취업 현실) "경력은 참 좋으신데… 음." 면접관이 말을 흐리는 그 짧은 침묵, 혹시 겪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퇴직 후 돋보기를 쓰고 밤새워 공부해서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재취업의 문이 활짝 열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말에 너무나도 감사히 여기며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다른 젊은 분과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저는 그저 그 분이 채용되도록 들러리를 선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 경험 이후, 영화 인타임과 존 롤스의 정의론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왜 우리에게 주어진 출발선은 이토록 뒤처져 있는 걸까요? 이 질문은 영화 에서도 등장합니다.👉 인간의 행복을 기준으로 정의를 설명하는 공리주의 관점이 궁금하다면 [설국열차 × 벤담 글 보기]무지의 베일 — 당신이 어.. 2026. 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