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2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가능한 사랑》과 아리스토텔레스/키르케고르가 묻는 귀농의 선택 고구마를 다 캐고 난 뒤 텅 빈 밭을 바라보다가, 저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흙만 남은 밭이 이상하게도 지금 제 삶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뭔가 끝났는데, 다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 상태. 귀농인의 집 계약이 끝나가고, 월세 집이 나왔다는 소식이 왔고, 구직도 뜻대로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복잡한 마음 속에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영화 뉴스처럼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소식이 저를 한 시간 넘게 붙잡아두었습니다. 이창동이 선택한 새로운 길,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지혜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부부와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가 만나면서 서로의 삶과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입니다. 노동, 계급, 관계의 균열을 다룬다고 하.. 2026. 9. 15. 《밀양》으로 읽는 용서의 철학 (불교의 사성제, 야스퍼스와 실존주의, 고통)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영화 《밀양》이 왜 인간의 가장 깊은 상처를 건드리는 작품인지불교 철학이 말하는 “고통”과 “용서”의 진짜 의미억지 용서가 왜 오히려 인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중장년기의 상실과 배신감을 다루는 현실적인 마음 수행 방법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보는 불교적 치유 방식 교도소 면회 장면이 끝나고 화면이 잠시 멈추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 이미 용서받았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신애의 얼굴이 무너지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등받이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습니다. 그건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분노였습니다. 피해자가 아직 고통 속에 허우적이는 동안, 가해자가 먼저 평안해지는 장면. 《밀양》은 그 부조리를 너무도 정확하게 찔러왔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한참을 이 영화와 .. 2026. 5. 2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