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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락시아5

명절 선물은 사랑일까, 체면일까 《소공녀》와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정말 필요한 것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이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집보다 위스키와 담배가 중요하다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명절을 앞두고 마트 진열대 앞에 멍하니 서 있던 어느 오후, 저는 그 대사의 의미를 조금 다른 곳에서 만났습니다.집을 포기한 여자가 진짜 지킨 것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만,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먼저 말씀드립니다. 2018년 전고운 감독의 첫 장편 《소공녀》는 가사도우미 미소의 이야기입니다. 새해가 되면서 월세가 오르고 담배와 위스키 가격까지 올랐지만 그녀의 일당은 그대로입니다. 미소는 결국 집을 포기합니다.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지킵니다.처음에 저는 이 선택을 .. 2026. 9. 25.
실업인정 교육을 놓친 날, 나는 새로운 삶의 리듬을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하루》 × 에픽테토스 실업인정 교육을 놓친 날 오후, 저는 차 안에서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고용센터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하루 전체를 흔들어놓았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하루를 잘못 살았다는 것이, 정말 내 삶 전체가 어긋나고 있다는 신호일까요? 홍상수의 《우리의 하루》는 바로 그 질문 앞에 조용히 서 있는 영화입니다.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홍상수는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찍었을까《우리의 하루》는 2023년 칸 영화제 감독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홍상수의 서른 번째 장편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사건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극적인 사건이 없습니다.인물들은 만나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 2026. 9. 4.
인생의 목적지를 지나, 이제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어바웃 타임》 ×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평범한 삶의 행복 시간여행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결국 선택한 것은 완벽한 하루가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다르게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어바웃 타임》이 단순한 로맨스 영화로 끝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흘려봤는데, 실직 이후 집으로 가는 어느 기차 안에서 이 영화가 불현듯 다시 떠올랐습니다.에피쿠로스가 말한 행복, 욕망이 아닌 아타락시아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실제로 강조한 것은 전혀 달랐습니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철학자인 에피쿠로스는 아타락시아(ataraxia)를 행복의 핵심 조건으로 보았습니다. 여기서 아타락시아란 불필요한 불안과 동요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평온 상태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무언가를 더 갖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것에서 불안을 걷.. 2026. 8. 13.
불합격했는데, 왜 마음 한쪽이 편해졌을까《인생은 아름다워》와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행복의 조건 수용소 안, 귀도는 아들의 눈을 피해 총살장으로 끌려가면서도 과장된 발걸음으로 걷습니다. 마치 우스꽝스러운 병사 흉내를 내듯이. 조슈아가 그 뒷모습을 보고 있다는 걸 알기에, 귀도는 끝까지 웃음을 연기합니다. 그 장면 앞에서 저는 한참 멈췄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그 순간을 다시 생각해보려 합니다.그런데 저는 그날 유독 그 장면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미세먼지 감시원 채용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은 직후였거든요. 8개월 동안 일했던 자리였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탈락이었습니다. 이상한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자 실망 아래에서 뭔가 후련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그게 뭔지 몰라서 영화를 다시 켰고, 귀도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에피쿠로스(Epicurus)가 떠.. 2026. 8. 9.
에피쿠로스 행복론과 어바웃 타임 (아타락시아, 평온, 욕망) 솔직히 저는 에피쿠로스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쾌락주의'라는 단어만 보고 방탕하게 살라는 철학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의 철학을 제대로 들여다보니 정반대였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철학이더군요. 주식시장이 6000포인트를 넘어섰다는 플랭카드가 거리에 넘쳐나고, 전철에서는 모두가 휴대폰으로 시황을 들여다보는 지금, 저 역시 뒤처지는 게 아닌가 싶은 불안감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습니다.욕망이 멈추지 않는 시대, 에피쿠로스를 다시 보다헬레니즘 시대는 전쟁의 피로감 속에서 사람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시기였습니다. 그 시절 등장한 에피쿠로스 학파는 끝없는 전쟁과 혼란 속에서 평온을 찾는 방법을 제시했죠. 지금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 2026.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