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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지를 지나, 이제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어바웃 타임》 ×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평범한 삶의 행복

by cinema-1 2026. 8. 13.

시간여행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결국 선택한 것은 완벽한 하루가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다르게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어바웃 타임》이 단순한 로맨스 영화로 끝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흘려봤는데, 실직 이후 집으로 가는 어느 기차 안에서 이 영화가 불현듯 다시 떠올랐습니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행복, 욕망이 아닌 아타락시아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실제로 강조한 것은 전혀 달랐습니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철학자인 에피쿠로스는 아타락시아(ataraxia)를 행복의 핵심 조건으로 보았습니다. 여기서 아타락시아란 불필요한 불안과 동요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평온 상태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무언가를 더 갖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것에서 불안을 걷어낸 상태입니다.

그는 아포니아(aponia)도 함께 강조했습니다. 아포니아란 육체적 고통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이 두 가지, 마음의 평온과 몸의 편안함이 갖춰지면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에피쿠로스는 보았습니다. 성공이나 부, 명예와는 거리가 먼 기준입니다.

저는 이 개념을 접하기 전까지 실직 이후 다시 취업해야 한다는 생각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불합격 통보가 올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어떤 곳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실망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마음 한쪽이 편안했습니다. 처음엔 그 감정이 낯설었는데, 에피쿠로스의 욕망론을 생각하고 나서야 조금 이해가 됐습니다.

제가 원했던 것이 정말 '일자리 그 자체'였는지, 아니면 '일자리가 없는 나를 불안해하지 않는 상태'였는지, 그 둘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욕망 분류에 대해 참고할 만한 시각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연스럽고 필요한 욕망: 음식, 안전, 우정처럼 삶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
  • 자연스럽지만 불필요한 욕망: 더 좋은 음식, 더 좋은 집처럼 없어도 되는 것
  • 자연스럽지도 않고 불필요한 욕망: 명성, 권력처럼 마음만 들뜨게 하는 것

이 기준으로 보면 "반드시 다시 취업해야 한다"는 강박이 세 번째 범주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픽테토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통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에픽테토스(Epictetus)는 1세기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로, 외부 환경이 아닌 자신의 판단과 태도에 집중하는 것이 자유의 시작이라고 본 인물입니다(출처: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

'퇴직이후 꼭 재취업을 해야한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퇴직 이후 재취업이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 욕망의 뿌리를 한 번쯤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에피쿠로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영화<어바웃 타임>과 에피쿠로스의 사상 이미지

 

 

《어바웃 타임》과 《퍼펙트 데이즈》가 겹치는 지점

《어바웃 타임》의 팀은 시간여행을 거듭하다 결국 깨닫습니다. 완벽하게 고친 하루가 아니라, 고치지 않아도 되는 하루를 충분히 살아내는 것이 행복에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이 결론이 저한테 와닿았던 건 영화를 본 직후가 아니라, 기차 안에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어느 날 오후였습니다.

남편이 있는 곳까지 대중교통으로 편도 4~5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예전 같으면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봅니다. 창밖에 지나가는 논밭과 산, 어느 역에서 내려 먹은 김밥 한 줄과 커피 한 잔. 그게 낭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스스로도 조금 신기합니다.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에서 공중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가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 개념과 자주 연결됩니다. 여기서 소요유란 세상이 정해놓은 목적지와 기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노니는 정신 상태를 가리킵니다. 목적지 없이 그냥 걷는 것도 하나의 삶이라는 시각입니다.

저는 이 두 영화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한쪽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도 결국 지금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고, 다른 한쪽은 처음부터 지금 이 자리에 머무는 이야기입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도착점이 같습니다.

저는 이 영화들이 단순히 "소박하게 살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를 묻는 것에 가깝습니다. 아들한테 "네가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 같이 갈래?"라고 물었던 날, 며칠 전까지 재취업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저한테 그 질문이 나온 게 지금 생각해도 좀 뜻밖이었습니다.

헤도닉 어댑테이션(hedonic adapta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헤도닉 어댑테이션이란 좋은 일이 생겼을 때의 기쁨도 시간이 지나면 기본 수준으로 돌아오는 심리적 현상을 가리킵니다. 취업이 된다고 해서 그 만족이 계속 유지되지는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행복 연구자 소냐 류보머스키 등의 연구에 따르면 삶의 만족도에서 환경적 변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크지 않으며, 일상 속 소소한 긍정 경험의 축적이 장기적 행복감에 더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출처: Greater Good Science Center, UC Berkeley).

남편의 재취업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기쁨이 지속적인 안정감으로 이어지려면 결국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어바웃 타임》이 보여주는 것도 그것입니다. 완벽한 날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날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

아들의 냉장고에 과일을 챙겨 넣는 일, 세탁기를 돌리는 일, 기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일. 이것들이 하루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실직 전에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퇴직 이후의 삶이 무언가를 잃은 것이 아니라, 뒤로 밀려나 있던 것들이 다시 앞으로 나오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듭니다. 저는 다시 일자리를 찾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 일이 내 하루를 더 나아지게 하는가"라는 질문은 계속 가지고 가려고 합니다. 일할 수 있는가와 어떻게 살고 싶은가는 서로 다른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볼 질문

  • 나는 지금 무엇을 이루기 위해 사는가, 아니면 무엇을 누리기 위해 사는가?
  • 자녀를 돕는 것과 자녀의 삶을 대신 책임지는 것의 경계는 어디일까?
  • 내가 지금 보내고 있는 평범한 하루가 사실은 나중에 가장 그리워할 하루는 아닐까?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직업 상담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96%B4%EB%B0%94%EC%9B%83%20%ED%83%80%EC%9E%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