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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8

취업박람회에서는 늦었다고 했지만, 배움에는 늦은 나이가 없었다 《오마주》와 아렌트·보부아르·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다시 시작하는 삶 어느 날 오전에는 새 기술을 배우며 설레고, 오후에는 취업박람회에서 조용히 낙담했습니다. 같은 날, 같은 몸으로 겪은 두 가지 감정이었습니다. 그 간극 속에서 신수원 감독의 영화 《오마주》가 불쑥 떠올랐습니다. 지완이라는 중년 여성 감독이 낡은 필름 앞에서 다시 카메라를 바라보는 장면처럼, 저도 그날 무언가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취업박람회와 영상 실습 사이에서, 하루에 두 개의 나를 만났습니다그날 아침은 지역 축제 현장에서 시작됐습니다. 자원봉사센터 유튜브 크리에이터 과정의 첫 실습이 있었습니다. 강사님이 알려준 대본을 들고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었는데, 막상 해보니 인터뷰 하나가 이렇게 어색할 줄 몰랐습니다. 결국 대본을 살짝 벗어나 제 방식대로 찍었고, 편집을 마치고 나서는 아쉬운 장면이 눈.. 2026. 10. 8.
딸기 모종 하나를 양보하고 생각한 농부의 의미 《The Biggest Little Farm(위대한 작은 농장)》과 레오폴드의 대지윤리 딸기 모종 심기를 양보하면서 저는 멈췄습니다. 아주 작은 순간이었는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작두콩 봉지를 식탁에 올려두고 생각했습니다. 농부는 도대체 무엇을 만드는 사람일까. 농산물이라고 대답하면 맞습니다. 그런데 뭔가 부족합니다. 그 질문을 붙잡고 《The Biggest Little Farm(위대한 작은 농장》을 다시 떠올렸습니다.황무지에서 시작된 질문, 농장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존 체스터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8년을 기록한 이 다큐멘터리는 2019년 미국에서 완성되었고, 한국에서는 2023년에 정식 개봉했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영화 초반, 체스터 부부가 캘리포니아 남부의 황폐한 농지에 처음 발을 디디는 장면이 있습니다. 카메라는 갈라진 흙을 천천히.. 2026. 9. 20.
나는 누구를 위해 농사를 짓는가 《라이더》(The Rider)와 에피쿠로스가 묻는 노동과 행복의 의미 저는 그 장면에서 손을 멈췄습니다. 브래디가 다 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시 말 위에 오르려는 순간이었습니다. 말을 탈 수 없다면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수 없다는 듯이. 그 눈빛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이런 질문이 입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없어지면, 나는 누구인가?"클로이 자오 감독의 《라이더》(The Rider, 2017)는 화려한 사고 실험이 아닙니다. 실존했던 카우보이의 이야기를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찍은 영화입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그 질문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일을 잃은 사람은 무엇을 잃는가브래디는 로데오 카우보이입니다. 낙마 사고로 두개골에 금속판이 박힌 뒤 의사는 다시 타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짜로 묻는 것은 신체적 위험.. 2026. 9. 13.
저 집과 땅이 내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리틀 포레스트》 × 장자 — 남의 좋은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아서 혜원이 처음 고향 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짐 가방 하나를 끌고,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가서 밥을 짓는 그 장면. 저는 처음 그 장면을 보면서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시험에 떨어지고, 연애도 꼬이고, 서울이 버거워진 사람이 결국 돌아온 자리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영화가 귀농을 권유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 저만 그렇게 읽은 게 아닐 거라 믿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그 장면을 다시 생각해보려 합니다.밭을 갈면서 혜원이 찾은 것《리틀 포레스트》(임순례 감독, 2018)에는 사건이 거의 없습니다. 혜원은 씨를 뿌리고, 풀을 뽑고, 음식을 만들고, 친구와 밥을 먹습니다. 봄이 오면 봄 음식을 만들고, 겨울이 오면.. 2026. 8. 18.
스페인은 왜 강했을까? 《머니볼》로 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습관 철학 "우리는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말은 처음 읽을 때 너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냥 넘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문장이 진짜로 무섭다는 걸, 귀농 3년 차 어느 무더운 여름 오후에 깨달았습니다. 풀을 뽑다 손을 놓고 멍하니 앉아 있던 그 순간이 떠올랐습니다.스타 없이도 이길 수 있다는 질문《머니볼》은 2011년 베넷 밀러 감독이 연출한 영화입니다. 브래드 피트가 메이저리그 구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을 연기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이 영화의 핵심 질문은 간단합니다. "돈도 없고 스타도 없는 팀이 어떻게 강팀을 이길 수 있는가?" 빌리 빈이 선택한 답은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 2026. 7. 20.
82년생 김지영으로 보는 사회 구조: 보부아르의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우리는 어떻게 ‘사회적 존재’로 만들어지는가보부아르의 ‘타자’ 개념 쉽게 이해하기개인의 선택은 어디까지 자유로운가 퇴직 후 처음으로 "내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을 때, 저는 텃밭 앞에 서서 멍하니 굳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삽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30년 동안 당연하게 해온 집안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다시 꺼내든 영화가 82년생 김지영이었습니다. 절반은 과거의 제 이야기, 절반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처럼 다가왔습니다. 주인공 김지영의 삶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합니다.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인데 이러한 현실의 문제는 매트릭스에서도 '보이지 않는 구조’라는 방식으로 드러납니다.사회화: 우리는 어떻게 '역할'로 만들어졌는가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은 태.. 2026. 4. 21.
"바보 검프가 증명한 가장 위대한 지능" : 슈바이처의 생명 긍정과 포레스트 검프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에 둘러싸여 살려고 하는 생명이다."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가 남긴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까지 닿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귀농 후 텃밭에서 굳은 흙을 뚫고 올라오는 가느다란 싹을 지켜보고, 미세먼지 민간점검원으로 거대한 산업 단지의 분진 앞에 서서 무력감을 느낄 때 비로소 이 문장은 제 삶 속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나의 숨 가쁨이 저 작은 풀꽃의 시듦과 다르지 않다는 감각. 영화 의 주인공처럼 앞뒤 계산하지 않고 오직 생명을 향한 순수한 마음으로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도 절실한지 요즘 자주 생각합니다. 특히 길 위의 작은 생명들을 위해 자신의 끼니보다 고양이 간식을 먼저 챙기는 제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저는 람바레네의 성자로 불린 슈바이처.. 2026. 3. 31.
노자 철학과 Into the Wild (무위자연, 소국과민, 도덕경) 집안 옷장을 정리하다가 10년 넘게 입지 않은 옷들이 한가득 나왔습니다. 버리지 못하고 쌓아뒀던 물건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을 가지려 했을까요? 영화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의 주인공 크리스 맥캔들리스는 모든 것을 버리고 알래스카로 떠났습니다. 그의 선택이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노자의 철학으로 보면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저 역시 뒤늦게 귀농을 결심하고 시골로 내려왔는데, 그제야 노자가 말한 무위자연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도가도 비상도, 노자가 본 문명의 문제노자의 『도덕경(道德經)』 첫 문장은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입니다. 도를 도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그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저는 .. 2026.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