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2 결과를 알 수 없어도 행동할 이유가 있는가 《하얼빈》 × 알베르 카뮈 "나는 동양 평화를 위해 행동했다." 이 한 마디를 들었을 때, 저는 잠시 멍했습니다. 결과를 확신하지 못한 채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 남긴 말치고는 너무 담담했기 때문입니다. 《하얼빈》은 그 담담함이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2026년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영화의 스포일러를 일부 다루고 있으므로,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결과를 모르면서도 움직이는 사람들광복절을 앞둔 지난주, 저는 지인과 함께 지역 영상센터에서 《영웅》을 다시 봤습니다. 이미 한 번 본 영화였는데도 이번엔 유독 조마리아 여사의 장면에서 손을 꼭 쥐었습니다. 아들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어머니는 수의를 준비합니다. 살려달라고 빌지 않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저.. 2026. 8. 15. 광복절에 다시 본 《영웅》과 칸트 의무윤리: 안중근과 조마리아를 통해 생각해보는 부모의 사랑과 자녀의 독립 아들에게 "알아서 저녁 먹어"라고 말해놓고 영화관을 나오자마자 마트로 향했습니다. 광복절을 앞두고 지역 영상센터에서 무료 상영된 《영웅》을 다시 보고 난 직후였습니다.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의 수의를 손수 짓는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제가, 결국 아들 먹을거리를 사러 간 것입니다. 이 간극이 오히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의 핵심이었습니다.조마리아의 선택, 칸트 의무윤리로 읽다영화 《영웅》에서 저를 가장 오래 붙들었던 장면은 안중근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앞두고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조마리아 여사.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는 그저 위대한 모성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에 다시 보면서 칸트 의무윤리(Kantian Deontological Ethics)가 떠올랐습니다. 칸트 의.. 2026. 8. 1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