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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들 사이에서도 부추는 향기를 냈습니다 《미나리》 × 빅터 프랭클

by cinema-1 2026. 9. 3.

할머니 순자가 개울가에 미나리 씨앗을 뿌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닙니다. 거창한 선언도 없습니다. 그냥 쪼그려 앉아, 손에 쥔 씨앗을 흙과 물 사이에 놓아줍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이런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저 씨앗은 지금 얼마나 많은 것들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할까. 그리고 저는, 지금 어떤 땅에 씨앗을 심고 있을까.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그 장면의 의미를 천천히 생각해보려 합니다.

살아남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다릅니다

《미나리》는 1980년대 미국 아칸소 주의 낯선 시골 땅에서 뿌리를 내리려는 한국계 이민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정이삭 감독이 2021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세상에 알려진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드라마틱한 전환도 없고, 감동적인 배경음악이 폭발하는 장면도 없습니다. 그냥 하루하루가 흘러갑니다. 아버지 제이콥은 농장에서 땀을 흘리고, 어머니 모니카는 불안을 감추고, 할머니 순자는 개울가에 미나리를 심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그냥 흘러가는 하루'가 이 영화의 전부이자 핵심이었습니다.

여기서 생존주의(Survivalism)와 구별되는 개념이 하나 등장합니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 그러니까 환경의 압박을 버티는 것과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다릅니다. 영화 속 미나리는 누가 돌봐주지 않아도 개울가에서 번성합니다. 잡초에 치이면서도 향기를 잃지 않습니다. 그 차이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로 읽힙니다.

제가 귀농인의 집 입주후 텃밭을 가꾸면서 비슷한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오고, 작물은 말라가는데 이름 모를 풀들은 무섭도록 자랐습니다. 어느 날 무성하게 자란 풀을 걷어내다가, 그 아래에서 부추를 발견했습니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는데, 조용히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향기가 났습니다.

그 순간이 이 영화를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프랭클이 텃밭에서 걸어 나온다면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입니다. 그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바탕으로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심리치료 이론을 세웠습니다. 로고테라피란 인간이 쾌락이나 권력보다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이론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때 가장 강해진다는 생각입니다.

프랭클이 남긴 말 중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묻는 것을 멈추고,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물어야 한다."(출처: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한동안 멈췄습니다. 지금 내가 묻고 있는 질문이 무엇인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언제쯤 상황이 나아질까"를 반복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미나리》의 제이콥도 비슷한 질문을 품고 살아갑니다. 농장이 성공하면, 돈이 생기면, 가족이 안정되면 하면서 기다려 보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묻습니다. 그 전에도 삶은 살아질 수 있지 않냐고.

프랭클의 철학에서 핵심은 이것입니다. 상황을 선택할 수 없어도 그 상황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는 것. 이를 응답 능력(Responsiblity, 책임)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는 이 단어 자체가 '응답하는 능력'에서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텃밭에서 풀을 베어낼 때 저도 그 선택 앞에 섰습니다.

모든 생명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풀이 너무 무성해지자 제가 심은 작물이 자라기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베어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갈등보다 오히려 선명함이 왔습니다. 내가 무엇을 살리고 싶은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프랭클이 말한 '의미를 향한 의지(Will to Meaning)'와 연결됩니다. 의미를 향한 의지란, 고통 속에서도 지금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선택하는 힘입니다. 화려한 결과가 아니라, 오늘 무엇을 돌보기로 했는가라는 작은 선택 안에 그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 <미나리>와 빅터프랭클의 철학사상 이미지

 

향기는 비교에서 오지 않습니다

부추는 잡초와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높이 자란 것도,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기 자리에 있었고, 자기 향기를 냈습니다.

이 장면을 다시 생각할 때마다 자현주의(Authenticity)라는 개념이 떠오릅니다. 자현주의란 실존주의 철학에서 말하는 개념으로,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역할에 맞춰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방식에 충실하게 사는 태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나답게 사는 것'이 진짜 삶에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삶에서 우리를 짓누르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대부분은 외부에서 옵니다.

  • 누군가는 아직도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
  • 또래보다 늦게 시작한 것 같다는 불안
  •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자책
  • 가족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이 목록을 쓰면서 제가 이 글에서 이 사람만 쓸 수 있는 문장이 하나 나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퇴직 이후 재취업에 도전했고, 계약이 끝나 다시 구직자가 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제가 가장 무서웠던 것은 실패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비교였습니다. 같은 나이에 누군가는 여전히 안정된 자리에 있다는 생각이 저를 가장 작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개울가의 미나리는 옆에 더 큰 풀이 있다고 해서 향기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이 '세상 속에 던져진 존재'라고 말했습니다(출처: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하이데거가 말한 '던져짐(Geworfenheit)'이란, 우리가 태어날 환경이나 시대를 선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민 가족으로 태어난 것도, 1980년대 아칸소의 황량한 땅 위에 놓인 것도 제이콥 가족이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땅에서 무엇을 심을지는 그들이 결정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그랬습니다. 퇴직이라는 상황은 제가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것, 새로운 관계에 씨앗을 심은 것은 제가 선택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고, 어떤 씨앗은 예상보다 훨씬 늦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어떤 씨앗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자리에서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마치 풀들 사이에서 발견한 부추처럼.

 

 

잡초 사이에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는 부추 사진


《미나리》는 명확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게 처음엔 아쉬웠는데, 지금은 그것이 이 영화의 정직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삶도 그렇게 흘러가니까요. 문제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날은 잘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본 뒤 이 질문 하나를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나를 덮고 있는 풀들 사이에서, 나만의 향기는 아직 남아 있는가.

화려하게 자라지 못해도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 향기가 나는가입니다.

 

생각해볼 질문

  • 지금 내 삶에서 나를 짓누르는 ‘잡초’는 무엇일까요?
  • 나는 모든 어려움이 사라져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내가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할 나만의 향기는 무엇일까요?

참고: https://namu.wiki/w/%EB%AF%B8%EB%82%98%EB%A6%AC(%EC%98%81%ED%9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