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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지금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 앞에서 —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정약용에게 묻다

by cinema-1 2026. 8. 20.

명함을 처음 없애본 게 언제였습니까. 저는퇴직 다음 날 잘 사용하지 않았던 명함이었지만 서랍 한쪽에 있었던 명함 뭉치를 버리려다가, 그냥 서랍 안에 넣어두었습니다. 버리지도 못하고. 그 작은 종이 몇 장이 없어진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묵직했습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보다가 그 서랍속 명함 생각이 났습니다. 직함이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 직함 없이도 충분한 것인지. 그 질문을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아주 또렷하게 던집니다.

커피를 타는 손이 장부를 꿰뚫는다

2020년 개봉한 이종필 감독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만, 이 영화의 핵심은 결말의 반전이 아니라 세 여자의 일상에 있습니다.

이자영, 유나, 보람. 셋 다 상고 출신의 말단 여직원입니다. 회의실 문을 열면 제일 먼저 커피를 타고, 복사기 앞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입니다. 회사는 그들을 그런 사람으로 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 그들도 스스로를 그렇게 보도록 강요받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한 가지 사실을 집요하게 보여줍니다. 직함은 말단이지만, 실력은 어디에도 종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 자영은 생산 현장의 흐름을 손바닥처럼 알고, 유나는 회계 장부의 숫자가 틀린 순간을 눈치채고, 보람은 영어 원문 데이터를 해독해 공장의 폐수 방류 사실을 파헤칩니다. 저는 이 장면들에서 멈췄습니다. 직함이 그들의 능력을 숨긴 게 아니라, 회사가 그것을 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철학에서 말하는 소외(Alienation)의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소외란 인간이 자신이 만든 것, 혹은 자신이 속한 구조로부터 분리되어 낯선 존재처럼 느껴지는 상태를 뜻합니다. 헤겔이 처음 체계화하고 마르크스가 노동 현장으로 끌어온 개념인데,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나는 분명 이 일을 하는 사람인데, 이 일 안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 느낌." 세 여직원이 정확히 그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도 30년 직장생활 중 그런 순간이 없지 않았습니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무엇을 썼는가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801년 신유박해로 강진에 유배됩니다. 조정의 신임을 받던 관료가 하루아침에 죄인이 된 것입니다. 직함도, 권력도, 돌아올 기약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18년 동안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포함해 500여 권에 이르는 저술을 남깁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직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오히려 자신이 진짜로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를 써 내려간 것입니다.

정약용 사상의 중심에는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실사구시란 실제 현실에서 출발해 진실을 탐구하고, 그것을 삶에 쓸 수 있어야 한다는 태도를 뜻합니다. 지식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고치는 데 쓰이는 지식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출처: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이 관점에서 보면, 정약용에게 직함은 능력의 증명이 아니었습니다. 그 능력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영화와 정확히 포개진다고 생각합니다. 삼진전자의 세 여직원은 회사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들의 능력은 회사의 판단과 무관하게 존재했습니다. 정약용은 조정으로부터 쫓겨났지만, 그의 사유는 유배지에서 더욱 깊어졌습니다. 직함이 없어진다고 해서 능력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 이것이 두 이야기가 시대를 넘어 만나는 지점입니다.

 

 

영화<삼진그룹영어토익반>과 정약용의 사상관련 이미지

 

"지금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 앞에서

 

퇴직 후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그것이었습니다. "요즘 무슨 일 하세요?" 명함을 꺼낼 수 없을 때, 저는 그 질문이 두려웠습니다. 소속과 직함이 없는 사람에게 그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날카롭게 꽂힙니다.

그런데 퇴직 이후 제가 거쳐 온 일들을 다시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 아동안전지킴이: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
  • 기간제교사: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 여성새로일하기센터 인턴: 구직자의 새 출발을 돕는 일
  • 미세먼지 감시원: 지역의 공기를 지키는 일
  • 경제총조사 지원담당: 나라의 경제 현황을 기록하는 일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직업들입니다. 하지만 다시 보면 하나의 흐름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삶에 실제로 닿아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아이를 지키고, 사람을 가르치고, 일자리를 연결하고, 환경을 살피고, 사회의 숫자를 세었습니다. 이것은 실패의 이력이 아니라 능력의 목록이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정약용의 실학 정신을 지금 언어로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어떤 직함을 달았느냐보다, 그 일이 실제로 누구에게 닿았느냐가 중요하다. 그 기준으로 보면, 저의 퇴직 이후 5년은 비어 있지 않았습니다.

직함이 사라질 때 비로소 보이는 것

자아 동일시(Self-identifica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신을 특정 역할이나 집단과 동일하게 여기는 심리적 과정을 뜻합니다. 쉽게 말하면, "나는 ○○회사 ○○팀장이다"라는 문장이 "나는 누구인가"의 답이 되어버리는 상태입니다. 이 동일시가 너무 강할 때, 직함을 잃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30년 직장생활 동안 저는 아마도 그 동일시 속에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퇴직 후 계약이 끊길 때마다 자신감이 떨어진 것도, 어쩌면 능력이 줄어서가 아니라 직함과 자신을 너무 강하게 묶어왔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영화 속 세 여직원은 그 묶음에서 스스로를 풀어냅니다. 자신을 "커피 타는 사람"으로 규정한 회사의 시선을 거부하고, 공장 뒤 하천의 페놀 냄새를 맡고, 장부를 다시 들여다보고, 영어 원문을 해독합니다. 직함이 부여한 자리를 넘어서 자신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입니다.

정약용은 유배 18년 동안 그것을 했습니다. 죄인이라는 이름 아래서, 조선 행정의 개혁을 설계했습니다. 직함이 없어진 순간이 오히려 자신이 진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저에게도 그 질문을 돌릴 수 있습니다. 경제총조사 계약이 끝나던 그 날, 저는 능력을 잃은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또 하나의 직함을 내려놓은 것이었을까요.

두 이야기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직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 진짜로 할 수 있는 일의 윤곽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 이 질문을 남기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의 직함이 없어진다면,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당신의 능력의 목록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 목록은 생각보다 훨씬 두꺼울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본 뒤, 서랍 속 명함을 다시 꺼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생각해볼 질문 3가지

  • 나는 직업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지금까지의 역할을 하나 내려놓은 것일까?
  • 내가 해온 여러 일 가운데 돈이나 직함과 관계없이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 앞으로의 삶에서 ‘일을 하는 나’와 ‘그냥 살아가는 나’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참고: https://namu.wiki/w/%EC%82%BC%EC%A7%84%EA%B7%B8%EB%A3%B9%20%EC%98%81%EC%96%B4%ED%86%A0%EC%9D%B5%EB%B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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