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출세, 재물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부자들》 × 공자, 권력 앞에서 인간다움을 지키는 법

by cinema-1 2026. 7. 23.

오늘 일터에서 불쾌한 일을 겪었습니다. 거창한 권력 다툼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조직 안에서, 오래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경력을 무기처럼 꺼내 드는 사람을 마주한 것입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영화 《내부자들》의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스케일은 달랐지만, 권력이 사람을 다루는 방식만큼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습니다.

권력은 거울이다 — 영화가 보여주는 것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내부자들》(2015, 감독 우민호)은 정치인, 재벌, 언론이 서로를 이용하며 유지되는 권력 구조를 정면으로 들여다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저마다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 선택의 기준은 단 하나입니다. 내게 이득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것뿐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불편했던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누군가 명백히 잘못된 일을 알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침묵을 선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악한 사람이 나쁜 짓을 저지르는 장면보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조용히 고개를 돌리는 장면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철학에서 이런 현상을 두고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악의 평범성이란 거대한 악이 괴물 같은 인물에 의해서만 자행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없이 순응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유지된다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을 처음 제시한 것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였습니다(출처: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영화 속 인물들이 꼭 그렇습니다. 악당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 앞에서 멈춰 생각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공범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권력이 사람을 그렇게 바꾸는 것일까요. 아니면 원래 그 안에 있던 것을 꺼내 보이는 것일까요. 저는 영화를 볼수록 후자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권력은 사람을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명하게 드러내는 렌즈에 가깝습니다.

공자는 뭐라 했을까 — 의(義)와 군자의 거리

이쯤에서 공자의 말을 꺼내면 "갑자기 왜?"라고 느끼는 분도 계실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2,500년 전 이 노인이 정확히 지금 이 영화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의(義)를 군자의 핵심 덕목으로 꼽습니다. 의(義)란 옳음을 이익보다 먼저 놓는 태도를 말합니다.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익이 눈앞에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취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취하고 싶을 때, 그 순간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입니다(출처: 공자, 『논어』 「이인(里仁)」편).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자는 의를 생각하고, 소인은 이익을 생각한다." 여기서 군자(君子)란 높은 신분이나 벼슬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원칙을 기준으로 움직이려는 사람, 그 사람을 군자라 불렀습니다. 반대로 소인(小人)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이익을 먼저 계산하는 사람입니다. 《내부자들》의 인물들을 이 기준으로 바라보면, 대부분은 소인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목격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내가 나섰다가 손해를 보는 건 아닐까"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의가 아니라 이익을 먼저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꼭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공자가 말한 소인의 방식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했습니다.

비교해보면 더 뚜렷하게 보입니다.

  • 서양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덕(Virtue)을 습관의 산물로 보았습니다. 덕이란 올바른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체화되는 품성을 말합니다.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선택들이 쌓여 사람의 됨됨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 공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수신(修身)을 강조합니다. 수신이란 자기 자신을 먼저 바로 세우는 일을 말합니다. 밖을 바꾸기 전에 안을 먼저 살피라는 것입니다.

이 두 철학자는 시대도 다르고 언어도 달랐지만,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변화는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오늘 내가 내리는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영화 <내부자들>과 공자의 의와 청렴 사상에 대한 이미지

 

 

가장 말단의 자리에서도 — 청렴은 어디에 있는가

오늘 제가 겪은 일은 영화와 비교하면 아주 작은 사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거대한 권력 구조 속 비리는 멀게만 느껴지는데, 제 바로 옆에서 벌어진 일은 다릅니다.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웠습니다.

공자는 청렴(淸廉)을 거창한 덕목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청렴이란 남이 보지 않아도, 이익이 없어도,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태도입니다. 큰 자리에 있는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작은 조직에서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더 큰 조직에서는 어떨까. TV 뉴스나 영화에서만 보던 일들이 제 주변에서 현실로 나타났을 때, 처음엔 당혹스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한편으론, 이제야 세상의 어떤 결을 조금 더 직접 느끼게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맞서 싸우는 것만이 옳은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때로는 신중한 판단과 적절한 거리 유지가 더 지혜로운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겼느냐 졌느냐가 아닙니다. 그 순간, 이익만을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았는가. 그것이 공자가 물었던 질문이고, 《내부자들》이 끝까지 던지는 질문입니다.

청렴을 지키는 방법을 굳이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1. 남이 보지 않는 순간의 선택을 점검한다.
  2. 이익이 판단을 흐리고 있는지 스스로 묻는다.
  3. 침묵을 선택할 때, 그것이 지혜인지 편의인지 구분한다.
  4. 작은 타협이 반복될 때 어디로 향하는지 확인한다.

이 네 가지는 거창한 철학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는 질문입니다.

《내부자들》은 결국 이 질문을 관객에게 돌려줍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겠느냐고. 저는 이 글을 쓰면서도 그 답을 완전히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질문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출세보다 먼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 방향을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군자에 한 발짝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스포트라이트》 × 한나 아렌트
→ 침묵은 중립일까, 또 하나의 선택일까?
《12인의 성난 사람들》 × 소크라테스
→ 모두가 맞다고 할 때 질문할 용기
《굿 윌 헌팅》 × 마르틴 부버
→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

 

생각해볼 질문

  • 출세와 양심이 충돌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청렴은 큰 결단보다 작은 선택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 내가 속한 조직에서 신뢰를 지키기 위해 오늘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참고: https://namu.wiki/w/%EB%82%B4%EB%B6%80%EC%9E%90%EB%93%A4(%EC%98%81%ED%9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