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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 것은 ‘더 열심히’가 아닐지도 모른다 《퍼펙트 데이즈》와 장자가 말하는 내려놓음의 자유

by cinema-1 2026. 8. 10.

통계조사 계약이 끝나고 두 번째 맞이하는 월요일, 지난주에 미세먼지감시원 채용 불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지난해부터 8개월을 일했고 당연히 다시 될 거라고 기대했던 터라 실망이 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자 마음 한구석이 오히려 편해지는 겁니다. 불합격인데 왜 후련한 걸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영화 한 편과 오래된 철학 한 권이 떠올랐습니다.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 왜 마음이 편해졌을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불합격 문자를 확인하고 잠깐 허탈했는데, 오후가 되자 이상하게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날 저는 고용센터에 구직급여를 신청하러 갔다가 지인을 만나 예쁜 카페에 들렀고, 붐비지 않는 시간에 마트에서 장을 봤습니다. 출근했더라면 절대 누릴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구직급여란 고용보험에 가입된 근로자가 비자발적으로 실직했을 때 재취업 활동 기간 동안 지급받는 실업급여의 일종입니다. 여기서 실업급여란 단순한 생계 보조금이 아니라, 다음 일자리를 준비하는 동안 삶의 리듬을 유지하게 해주는 제도적 안전망을 의미합니다. 고용보험 가입 기간과 나이에 따라 수급 기간이 달라지므로, 퇴직 후에는 가장 먼저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고용보험).

그런데 후련함의 진짜 이유는 제도 덕분만이 아니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일자리를 기다린 게 아니라, '나는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증명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퇴직 이후에도 계속 긴장하며 살아왔고, 아들의 독립을 돕고 싶다는 마음도 그 긴장을 키웠습니다. 불합격은 그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는 계기가 된 셈입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와 장자의 철학 사상 이미지

 

퍼펙트 데이즈가 보여주는 평범한 하루의 무게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조금 심심하다고 느꼈습니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입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도구를 챙기고, 같은 자리를 닦습니다. 극적인 사건도, 갑작스러운 성공도 없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런 질문이 남았습니다. "저 사람은 정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걸까?" 히라야마는 화장실 청소를 마친 후 나무와 햇빛을 바라봅니다. 그 나무가 그에게 생산성을 높여주거나 돈을 벌어다 주는 건 아닙니다. 그저 바라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 장면은 장자 철학의 소요유(逍遙遊)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소요유란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이나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는 태도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남의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있는 곳에 그냥 있을 수 있는 상태입니다. 히라야마가 나무를 바라보는 그 잠깐이 바로 소요유의 모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느껴봤는데, 출근 시간에 눈이 떠져도 갈 곳이 없는 월요일 아침은 처음엔 정말 낯설고 허전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에 독립한 아들 집에 빨래를 갖다 주고, 지인과 카페에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 됩니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결코 낭비가 아니었다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장자가 말하는 무용지용, 쓸모없음의 쓸모

장자 철학에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무용지용이란 당장 경제적 가치가 없어 보이는 것도 다른 관점에서는 충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크게 자라지 못해 목재로 쓸 수 없는 나무가 오히려 베이지 않아 오래 살아남는다는 장자의 비유가 여기서 나옵니다.

이것을 퇴직 후의 삶에 적용하면 질문 하나가 생깁니다. 출근하지 않는 시간은 정말 쓸모없는 시간일까요? 우리는 직장이 없으면 뒤처진다고 느끼고, '요즘 뭐 하세요?'라는 질문에 잠깐 당황하기도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일하는 시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일하지 않는 시간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은 이 문제를 다른 방향으로 짚어줍니다. 제물론이란 세상의 모든 사물은 서로 평등하며, 좋고 나쁨, 성공과 실패 같은 구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장자의 핵심 사상입니다. 합격과 불합격, 취업과 실업이라는 구분도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기준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당연한 말처럼 들려도, 불합격 통보를 받은 직후에 이 말을 되새기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미세먼지감시원이라는 직무는 대기환경보전법에 근거한 환경 모니터링 업무로, 미세먼지 배출 사업장을 현장에서 감시하고 기록하는 역할입니다. 여기서 대기환경보전법이란 대기오염으로 인한 국민 건강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사업장의 배출 기준을 규제하는 법률을 말합니다. 이 일에 의미가 없었던 게 아닙니다. 환경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에서 보람도 있었고, 다시 지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다만 그 결과가 나의 가치를 판정하는 점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번에 조금 더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출처: 환경부).

불합격 이후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결과와 자기 가치를 동일시하지 않기
  • 일하지 않는 시간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 다시 지원할 수 있지만, 그 결과가 '나'를 규정하게 두지 않기
  • 부모로서의 책임과 자신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자녀를 돕는 것과 내 삶을 잃지 않는 것 사이

퇴직 이후 계속 일자리를 찾았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아들의 독립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미취업 상태의 자녀를 보면서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주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퇴직 후에도 쉬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 불합격을 계기로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자녀를 돕는 것과 자녀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닐까요? 부모가 모든 부담을 계속 짊어지면 자녀의 독립 의지도, 그리고 부모 자신의 삶도 조금씩 뒤로 밀릴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 때로는 더 깊은 사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자 식으로 말하자면 이것도 집착의 한 형태일 수 있습니다. '내가 계속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랑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나 자신을 서서히 소진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아직 이 경계를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번 불합격이 그 경계를 처음으로 직면하게 해준 사건이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인생에서 어떤 문이 닫혔을 때, 그제야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정말 저 문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 문이 열려 있어야 한다는 불안을 피하고 싶었던 걸까. 그 질문이 지금 저한테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일할 수 있는가'보다 '어떤 일이 내 삶을 조금 더 낫게 만드는가'를 먼저 물어보려고 합니다.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자는 생존의 문제이고 후자는 방향의 문제입니다. 불합격 통보 하나가 이 두 질문의 차이를 이렇게 선명하게 느끼게 해줄 줄은 몰랐습니다. 다시 일자리를 찾는 것보다 먼저, 오늘 하루를 내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것을 기억하면서 조금 천천히 오늘을 살아보려고 합니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 나는 정말 일을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일자리가 없을 때 느끼는 불안을 피하고 싶은 것일까?
  • 자녀를 돕는 것과 자녀의 삶을 대신 책임지는 것의 경계는 어디일까?
  • 아무에게도 나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면, 나는 앞으로 어떤 하루를 살아보고 싶은가?

참고: https://namu.wiki/w/%ED%8D%BC%ED%8E%99%ED%8A%B8%20%EB%8D%B0%EC%9D%B4%EC%A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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