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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재취업 불안, 우리는 왜 다시 시작이 두려운가 (영화 인턴 × 롤스 정의론)

by cinema-1 2026. 5. 5.

며칠 전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민간점검원 계약 종료를 알리면서 다른 일자리를 원하면 고용센터를 이용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짧은 문자 한 줄이 꽤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 자격증도 있고 경력도 있는데, 막상 고용24를 열어보니 대부분의 공고에 나이 제한이 달려 있었습니다. 이게 제 개인의 문제인지, 아니면 구조의 문제인지,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나이 차별, 개인의 문제인가 고용 구조의 문제인가

취업알선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제가 직접 경험한 일입니다. 구인 업체에서 담당자에게 전화로 "40대 이하, 잘 해야 50대 이하"를 대놓고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그냥 받아 적었지만, 속으로는 꽤 씁쓸했습니다. 나이가 자격 조건보다 먼저 걸러지는 구조를 눈앞에서 보고 있었으니까요.

이런 현실을 철학적으로 설명한 개념이 있습니다. 존 롤스(John Rawls)의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입니다. 무지의 베일이란 내가 어떤 조건에서 태어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 규칙을 설계한다면 어떤 사회를 선택하겠냐는 사고 실험입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사람들은 나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는 사회를 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현실의 노동 시장은 이미 출발선이 다르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통계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50대 이상 중고령자 취업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전체 연령대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으며, 중장년층이 원하는 수준의 일자리와 실제로 구할 수 있는 일자리 사이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지자체 공고 재공고에 지원했다가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의 감정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마 내부 규정상 2인 이상 지원해야 채용이 가능한 구조였을 텐데, 결국 저는 형식 요건을 맞추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했던 셈입니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노동 시장 이중 구조(Labor Market Dualism)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 시장 이중 구조란 안정적인 고임금의 1차 노동 시장과, 불안정하고 저임금인 2차 노동 시장이 분리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중장년 구직자들은 경력이 있어도 대개 2차 노동 시장으로 밀려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건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넘기 어려운 구조적 장벽입니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불합격이 반복될 때 "내가 부족해서"라고 자책하는 것과, "이 구조 안에서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를 냉정하게 파악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전혀 다른 출발점이 됩니다.

👉 공정한 사회 구조에 대한 더 깊은 설명은
[인타임 × 롤스 정의론 글]

👉 계급과 출발선 문제는
[기생충 × 계급 분석 글]

재취업 전략, 경쟁 방식을 바꿔야 하는 이유

귀농귀촌을 준비할 때 교육에서 들은 말이 있습니다. "최소 3년치 생활비를 가지고 내려가야 한다." 그때는 막연히 들었는데, 막상 농촌에 내려와 보니 그 말의 무게가 달랐습니다. 텃밭 작물을 키워봤더니 마트에서 사 먹는 것보다 오히려 비용이 더 들었습니다. 아는 분은 귀농했다가 농사는 뒷전이고 공사장 막일이나 아파트 시설관리, 구내식당 조리원으로 취업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분이 특별히 준비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 지방에서 중장년이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구조 자체가 갖춰지지 않았던 겁니다.

이 지점에서 경력 자산 포트폴리오(Career Asset Portfolio)라는 개념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경력 자산 포트폴리오란 단순히 직함이나 스펙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유한 경험, 관계, 신뢰를 하나의 자산 묶음으로 재정의하는 방식입니다. 중장년에게 불리한 경쟁, 즉 속도와 최신 기술로 겨루는 싸움에서 벗어나, 경험에서 나오는 판단력과 인간관계 능력, 신뢰 기반의 역할로 포지셔닝을 바꾸는 것이 핵심입니다.

 

재취업의 어려움에 대한 영화 인턴과 롤스 정의론 이미지

 

 

영화 인턴에서 70세 벤이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는 빠르지 않았고, 최신 트렌드에 능숙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방식, 위기 상황에서의 침착함,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판단이 달랐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게 그냥 영화적 판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에서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냐는 의구심이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구조를 탓하면서 동시에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압니다.

재취업 전략을 바꿀 때 현실적으로 고려할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 경쟁이 기울어진 공개 채용보다, 신뢰 기반의 연결망(네트워크)을 통한 취업 경로 모색
  • 자격증과 경력을 단순 나열하는 이력서에서, 문제 해결 경험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전환
  • 정규직 단기 채용보다 프리랜서, 용역, 컨설팅 형태의 유연한 고용 형태 탐색
  • 지자체 또는 사회적경제 영역(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의 중장년 특화 일자리 우선 탐색

50대 이상 중장년 구직자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취업 지원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며, 특히 지역 고용센터의 중장년 일자리 희망 센터 프로그램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고용정보원). 제가 경험해본 바로는 고용24의 공고만 보고 있으면 오히려 더 위축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직접 발로 뛰어 지역 기관 담당자를 만나는 쪽이 실질적인 연결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있었습니다.

지방 소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결국 중장년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일자리 구조가 지방에 없기 때문입니다. 귀농귀촌을 택한 사람들이 결국 다시 도시로 나가는 흐름은,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구조가 사람을 밀어내는 현상입니다. 이건 롤스가 말한 사회 구조의 문제로 돌아가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재취업 시장에서 반복되는 거절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회 구조 자체가 특정 연령대에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구조를 바꿀 힘이 개인에게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구조를 이해하면 자책을 줄일 수 있고, 자책이 줄어야 전략을 냉정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저도 아직 답을 찾는 중입니다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경쟁 방식을 바꾸고 네트워크를 좁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덜 자책하는 데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취업 또는 법률 조언이 아닙니다.

 

🤔 생각해볼 질문
나는 실패를 개인의 문제로만 해석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경쟁하고 있는 기준은 정말 공정한가?
나는 지금 전략을 바꿔야 하는 시점인가?


참고: https://lazygom.com/entry/%EC%98%81%ED%99%94-%EC%9D%B8%ED%84%B4-%EB%A6%AC%EB%B7%B0-%EB%82%98%EC%9D%B4%EC%99%80-%EB%8F%84%EC%A0%84-%EB%82%B4%EB%A0%A4%EB%86%93%EC%9D%8C-%EC%8B%A0%EB%A2%B0%EC%99%80-%EC%84%B1%EC%9E%A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