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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다는 말을 들은 뒤, 부모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과 돌봄윤리, 그리고 가족이 곁에 있는 방식

by cinema-1 2026. 9. 28.

"죽고 싶다"는 말을 들은 뒤,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니, 더 정확하게 물어야겠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상대의 삶을 '해결해주는 것'과 같은 의미일 수 있을까요? 저는 한동안 그 둘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1980년 로버트 레드포드의 영화 《보통 사람들(Ordinary People)》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사랑은 해결이 아니라 관계다 — 돌봄윤리와 캘빈의 무력함 사이에서

명절 연휴가 끝나고 아들 차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가던 길이었습니다. 차 안에서 아들은 회사에 가기 싫다는 말을 반복했고, 말투는 점점 날이 서 갔습니다. 운전 중 과속이 이어졌고,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기도 했습니다. 저는 옆자리에서 아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아들이 말했습니다. "죽고 싶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처음에는 반사적으로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게 해야 하나. 집으로 데려와야 하나. 다른 일을 알아봐줘야 하나. 무언가를 빨리 바꿔야 한다는 조급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보통 사람들》의 아버지 캘빈이 떠올랐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캘빈은 아들 콘래드가 형의 죽음 이후 죄책감과 우울 속에서 무너져가는 것을 보며 안간힘을 씁니다. 치료를 권하고, 곁에 있으려 하고,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아들의 내면까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사실이 상대의 고통을 대신 가져갈 수 있는 자격증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 영화는 아주 조용하고 잔인하게 보여줍니다.

이 지점에서 돌봄윤리(Ethics of Care)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돌봄윤리란 인간을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으로만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우리가 서로 의존하고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윤리적 입장입니다. 핵심은 '해결'이 아닙니다. 상대의 필요를 알아차리고, 그 관계 안에서 적절하게 응답하는 것입니다. (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Care Ethics)

그렇다면 부모가 할 수 있는 응답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날 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천천히 구분해보았습니다.

할 수 없는 것들:

  • 아들 대신 회사에 나가는 것
  • 직장 상사와 대신 이야기하는 것
  • 아들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 대신 결정하는 것

할 수 있는 것들:

  • 다음 날 아침 아들 집 앞에 들러 잠든 얼굴을 확인하는 것
  • 같이 밥을 먹자고 연락하는 것
  • 처음에 거절했던 아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을 때, 그냥 나가는 것

할 수 없는 것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캘빈의 무력함과 제 무력함이 겹쳐 보이던 순간, 저는 이 영화가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가르치는 영화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묻습니다. 당신은 자녀의 고통 앞에서 해결자이고 싶은가, 아니면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고 싶은가.

필리아와 베스의 사랑 — '잘되기를 바라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 사이

아리스토텔레스는 '필리아(philia)'라는 개념을 이야기했습니다. 필리아란 단순히 '우정'으로 번역되지만, 그 원래 의미는 훨씬 넓습니다. 가족 사이의 관계를 포함하여, 상대방 자체를 위해 좋은 것을 바라는 마음까지를 가리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필리아의 핵심 요소로 선의(eunoia, 에우노이아)를 꼽았습니다. 에우노이아란 내 이익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에게 좋은 것을 바라는 마음을 뜻합니다. (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Aristotle's Ethics)

이 개념 앞에 서면 영화 속 어머니 베스가 다르게 읽힙니다. 베스는 냉정한 어머니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는 처음에 그녀를 단순히 '나쁜 어머니'로 봤습니다. 다시 보고 나서야 다른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베스 역시 자녀를 사랑합니다. 다만 그 사랑이 자녀 자신에게 좋은 것을 향해 있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가족의 모습을 향해 있는지 모릅니다. 사랑의 방향이 다른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이 착각이 자주 일어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아들이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기를 바라고, 가까운 데서 살기를 바라고, 오래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가 원하는 안정인지, 아들이 원하는 삶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필리아는 그 구분을 요구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길로 가라'는 것과 '네가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보자'는 것은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만든 이유 중 하나로 콘래드가 자신의 목소리를 잃은 듯한 감각에 강하게 공감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영화는 콘래드가 사회적 구조와 가족의 기대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아가는 과정에 집중합니다. (출처: AFI Catalog, Ordinary People) 이 영화에서 회복은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이 아니라, 콘래드가 자신의 이야기를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는 순간에 찾아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자녀가 '죽고 싶다'고 말할 때, 부모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 말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것, 그 사람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는 것, 그리고 필요하다면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전문적인 도움과 연결하는 것이 먼저일 수 있습니다.

 

 

영화 <보통사람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돌봄윤리데 대한 이미지

 

 

 

다음 날 아침, 저는 봉사활동 전에 아들 집에 들렀습니다. 아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봉사활동을 마친 뒤 밥을 먹자고 연락했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아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같이 밥 먹자." 점심을 함께 먹었고, 저녁도 함께 먹었습니다. 그걸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관계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날은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완벽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상처가 있고, 말하지 못한 것이 있고, 서로의 고통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통 사람들'이라고 부른 것은, 어쩌면 그것이 대부분의 가족이 실제로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정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것임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당신의 가족 안에서, 지금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나요.

 

이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볼 세 가지 질문

첫째,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할 때 나는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먼저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편인가요?

도움을 주려는 마음과 상대의 삶을 대신 결정하려는 마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둘째, 가족을 돌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경제적인 지원이나 문제 해결뿐 아니라 함께 식사하기, 이야기를 들어주기, 필요한 도움과 연결해주기, 평범한 일상을 함께 보내는 것도 돌봄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자녀를 걱정하면서도 나는 나 자신의 삶을 어떻게 돌볼 수 있을까요?

가족의 어려움이 내 삶 전체를 멈추게 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곁에 있을 수 있는 균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 Robert Redford, 《Ordinary People》(1980). 한 아들의 죽음 이후 생존한 아들 콘래드가 죄책감과 정신적 어려움을 겪으며 회복을 시도하는 과정과 가족관계의 균열을 다룬 작품입니다. AFI Catalog와 TCM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Personal Relationship Goods. 돌봄윤리를 타인의 필요에 응답하는 활동·관계·태도로 설명하고, 인간이 삶의 여러 시기에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논의를 소개합니다.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Aristotle’s Ethics. 아리스토텔레스의 필리아와 상대방을 위해 좋은 것을 바라는 선의(eunoia), 가족을 포함한 관계에서의 상호적 관심에 관한 논의를 참고했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B%B3%B4%ED%86%B5%20%EC%82%AC%EB%9E%8C%EB%93%A4(%EC%98%81%ED%99%94)
https://plato.stanford.edu/entries/care-ethics/
https://plato.stanford.edu/entries/aristotle-ethics/
https://catalog.afi.com/Catalog/moviedetails/56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