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인 것을 아름답게 보는 법을 배우고 싶다." 니체가 『즐거운 학문』에서 남긴 말입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솔직히 반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아름답게 보라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냐고. 그런데 추석이 끝난 뒤 어느 한산한 날, 저는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습니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였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은 영화를 먼저 보고 오시길 권합니다.
최국희 감독이 연출하고 2026년 9월 23일 개봉한 이 영화는, 변요한이 연기하는 장태영과 노재원이 연기하는 박태영이라는 두 친구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같은 출발선에서 온라인 카지노 사업을 시작한 두 사람이지만, 성공이 한 사람에게 몰리기 시작하면서 관계 전체가 무너집니다. 저는 포커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카드 숫자나 배팅 전략보다 두 사람의 표정을 오래 바라봤습니다. 그 표정 속에서 제 삶이 보였습니다.
똑같이 시작했는데 왜 결과는 다른가 — 아리스토텔레스의 tukhē(튀케)와 도박판의 진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화려한 승부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박태영이 장태영 곁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장면들이었습니다. 같은 공간, 같은 일, 같은 목표.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은 계속 한 방향으로 쏠립니다. 카드가 잘 풀리는 쪽으로, 끗발이 서는 쪽으로. 박태영의 눈빛이 변해가는 순간이 있습니다.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포기한 것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의 표정. 저는 그 표정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었습니다. 거울 속에서였습니다.
여기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tukhē(튀케)를 꺼내고 싶습니다. 튀케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찾아오는 우연이나 행운을 뜻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을 위해 덕(德)에 따른 능동적 활동이 중요하다고 보았지만, 동시에 외부적 조건과 행운이 인간의 행복에 분명히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극단적으로 불운한 조건 속에서는 좋은 삶을 펼치기 어렵다고 그는 말했습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Aristotle's Ethics).
이것을 영화에 대입하면 꽤 정직한 그림이 나옵니다. 장태영과 박태영은 실력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운이 붙습니다. 그 운은 노력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시점에 어떤 자리에 있었느냐, 누구의 눈에 띄었느냐, 카드가 어떻게 돌아왔느냐. 이 영화가 도박판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가 여기 있다고 읽힙니다. 도박만큼 tukhē(튀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세계는 없으니까요.
저 역시 취업과 구직의 경험을 생각할 때마다 이 문제를 떠올립니다. 같은 스펙으로 같은 시기에 지원해도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 어느 지역에서 살고 있느냐, 어떤 면접관을 만났느냐, 그날 기분이 어땠느냐까지. 아무리 노력해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 오히려 삶을 제대로 보는 출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쉽게 놓치는 삶의 조건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어떤 시대, 어떤 지역에서 태어났는가
- 어떤 사람을 먼저 만났는가
- 어떤 타이밍에 어떤 선택지가 주어졌는가
- 노력과 무관하게 찾아온 기회 혹은 장벽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 모든 결과를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부러움이 배신이 되기 전에 — 니체의 운명애가 묻는 것
박태영이 결국 장태영을 배신하는 건,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씨네21의 작품 소개에서도 장태영에게 성공과 주목이 집중되면서 박태영의 질투가 자라고 배신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영화의 중심축임을 언급합니다. 저는 그 질투의 씨앗이 어디서 자라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쉽게 되는 걸까"라는 질문이 반복될 때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부러움입니다. 그런데 그 감정에 오래 머물다 보면 비교가 시작되고, 비교가 깊어지면 자기 자신이 초라해집니다. 그 초라함이 분노로 바뀌는 순간, 사람은 이상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니체의 운명애(Amor Fati)가 나옵니다. 운명애란, 라틴어로 '운명에 대한 사랑'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주어진 운명을 그냥 참자"는 체념으로 읽으면 니체의 의도를 정반대로 이해하는 겁니다. 니체가 말한 운명애는 훨씬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부정하거나 지우려 하지 않고, 그것까지 포함한 자신의 삶 전체를 긍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Nietzsche's Life and Works).
운명애(Amor Fati)라는 개념을 더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에서 멈추지 않고, "이것까지 포함해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질문을 바꾸는 일입니다. 과거를 좋았다고 억지로 포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과거를 지우지 않은 채, 그래도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화관을 나오던 그날, 저는 그 고요함이 처음과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명절이 끝난 지방의 시장은 한산했고, 작은 미술관에도 관람객이 거의 없었습니다. 서울 고용센터에서 봤던 사람들의 물결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처음엔 그 조용함이 쇠퇴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전시를 혼자 오래 볼 수 있었고, 시장 상인과 짧은 말을 나눌 수 있었고, 복숭아와 감을 사서 아들 집에 들를 수 있었습니다. 대단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 평범함 안에 제가 오늘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있었습니다.
운이 좋은 사람을 부러워하는 데 시간을 다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노력의 의미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 내가 받은 패를 들고 오늘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 태도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귀농 공부이기도 하고, 영상 편집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일이기도 합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가 제게 남긴 질문은 결국 이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누군가의 패를 훔쳐보는 데 에너지를 쓰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패로 오늘의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그 질문 앞에서 저는 아직도 답을 찾는 중입니다. 하지만 질문 자체가 방향을 가리킨다는 것은 압니다. 내일도 제가 가진 패를 들고 다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볼 세 가지 질문
첫째, 나는 다른 사람의 행운과 나의 불운을 비교하면서 내 삶을 평가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누군가의 취업, 경제적 안정, 가족관계, 건강이나 생활환경을 보며 자신의 삶을 과도하게 낮게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지금까지 내 삶에서 ‘운’이 작용했다고 생각되는 순간과 ‘노력’이 작용했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취업, 인간관계, 가족, 건강, 새로운 기회 등을 돌아보면 우리의 삶이 노력이나 운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셋째, 내가 바꿀 수 없는 조건을 인정하면서도 오늘 선택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새로운 공부, 사람과의 관계, 생활습관, 봉사활동, 취미, 글쓰기처럼 지금의 조건에서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 최국희 감독, 《타짜: 벨제붑의 노래》(2026). 변요한의 장태영과 노재원의 박태영을 중심으로, 타고난 행운과 노력·능력의 대비, 성공과 질투, 배신을 다루는 범죄·드라마입니다. 씨네21의 작품 정보와 시놉시스를 참고했습니다. (cine21.com)
- Aristotle, Nicomachean Ethics. 인간의 좋은 삶을 덕에 따른 활동과 연결하면서도 외부적 조건과 행운이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에서 참고했습니다. (plato.stanford.edu)
- Friedrich Nietzsche, The Gay Science 및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Friedrich Nietzsche. 니체의 운명애(amor fati)와 삶의 긍정(affirmation)에 관한 논의를 참고했습니다. (plato.stanford.edu)
참고: https://namu.wiki/w/%ED%83%80%EC%A7%9C:%20%EB%B2%A8%EC%A0%9C%EB%B6%91%EC%9D%98%20%EB%85%B8%EB%9E%98
https://plato.stanford.edu/entries/aristotle-ethics/
https://plato.stanford.edu/entries/nietzsc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