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 세계 속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까요? 저는 퇴직 후 3년 차를 맞으며 이 질문을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30년 넘게 다닌 직장을 떠나며 "이제 자유다"라고 외쳤지만, 현실은 자녀 결혼 비용과 학원비를 마련하느라 정부 일자리와 직업상담사를 전전하는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와 장자 철학을 만났고, 저는 비로소 제가 살아온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헤매던 저에게, 장자는 "모든 길이 결국 하나의 흐름"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나, 멀티버스 속 자아
저는 지금 제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공무원으로 30년을 근무한 사람인가요, 아니면 귀농을 꿈꾸며 체류형창업지원센터에서 혼자 국가자격증을 공부한 사람인가요. 아니면 지금 지자체 계절제 민간점검원으로 일하는 사람인가요. 제 명함이 계속 바뀌는 것처럼, 제 정체성도 흔들렸습니다.
장자는 이를 변화(化)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변화란 단순히 시간이 흐르며 무언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출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쉽게 말해 제가 공무원이었던 것도, 보험설계사였던 것도, 지금 민간점검원인 것도 모두 '저'라는 존재의 한 측면일 뿐이라는 거죠. 영화 속 주인공 에블린이 수많은 평행 세계를 오가며 각기 다른 삶을 경험하듯, 저도 퇴직 후 3년간 여러 '나'를 만났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 변화가 불안한 게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은 "너는 왜 이렇게 이것저것 해?"라고 물었지만, 저는 이제 그 질문에 당당히 답할 수 있습니다. "제가 고정된 존재가 아니니까요." 장자가 말한 만물제동(萬物齊同)은 모든 존재가 근본적으로 평등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뜻인데, 저는 이 말을 '모든 선택이 동등하게 가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철학책이 제 삶을 이렇게 위로할 줄은 몰랐거든요.
호접지몽,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장자의 가장 유명한 일화인 호접지몽(胡蝶之夢)은 제가 지금 겪고 있는 혼란을 정확히 표현합니다.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되었다가 깨어나 "내가 장자로서 나비 꿈을 꾼 건가, 아니면 나비가 장자 꿈을 꾸고 있는 건가"라고 자문했다는 이야기죠. 여기서 호접지몽이란 자아의 경계가 절대적이지 않으며, 꿈과 현실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귀농교육을 받으며 농촌에서 지낼 때, 저는 문득 "이게 진짜 내 삶인가, 아니면 도피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30년간 공무원으로 살았던 제가 갑자기 농촌에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게 현실 같지 않았거든요. 마치 제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장자의 호접지몽을 읽고 나니, 이 모든 경험이 '저'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사람들은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장자는 오히려 "진짜와 가짜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공무원도, 직업상담사도, 귀농 준비생도, 민간점검원도 모두 진짜 저였습니다. 그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영화 속 에블린도 수많은 평행 세계를 경험하며 "어느 것이 진짜 나인가"라는 질문에 빠집니다. 하지만 결국 그녀가 깨닫는 건, 모든 세계의 에블린이 다 진짜라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 제가 선택하지 않은 삶을 후회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저를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이게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의 정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요유란 아무런 속박 없이 자유롭게 노니는 경지를 뜻하는데, 이는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진짜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장자는 인간이 사회가 만든 기준에 갇혀 있다고 보았습니다. "성공해야 한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한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 말이죠. 저도 퇴직 후 1년 동안은 이런 기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원하는 일자리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저는 제 자신을 비교하며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써봤는데, 자유는 조건에 있지 않았습니다. 장자가 말하는 진짜 자유는 무위자연(無爲自然)입니다. 무위자연이란 인위적인 노력이나 강요 없이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세상의 기준을 내려놓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담담히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계절제 민간점검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제 꿈이었나요? 아니요.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저는 자유를 느낍니다. 왜냐하면:
- 더 이상 남들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 제가 선택한 길이 틀렸다고 자책하지 않습니다.
- 지금 이 순간, 제 앞에 주어진 일에 집중합니다.
이게 장자가 말한 자유입니다. 거창한 성취나 완벽한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평화에서 오는 자유 말이죠.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퇴직자의 약 68%가 재취업 과정에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출처: 한국고용정보원). 저도 그 68% 중 하나였지만, 장자 덕분에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속 에블린도 결국 깨닫습니다. 완벽한 세계는 없다는 것을. 모든 세계에는 기쁨과 고통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그래서 중요한 건 "어느 세계가 최선인가"가 아니라, "지금 이 세계에서 나는 누구와 함께 있는가"라는 거죠. 저 역시 그동안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았습니다. 공무원 동료들, 귀농교육 동기들, 지금 함께 일하는 민간점검원 분들. 그들 모두가 제 삶의 일부입니다.
저는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살아갈지 모릅니다. 어쩌면 또 다른 '나'를 만날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제 저는 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장자가 말했듯, 모든 것은 흐름 속에 있으니까요. 제가 지금 느끼는 자유는, 무언가를 이루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생긴 것입니다. 이게 바로 장자가 말한 제물론(齊物論)의 정신이 아닐까요. 제물론이란 모든 사물과 관점을 동등하게 바라본다는 뜻으로,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르다는 구분을 없애는 것입니다.
철학이 주는 힘은 정말 대단합니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행복했을까요? 아마 또 다른 고민이 생겼겠죠. 장자가 말한 '자유로운 삶'은 완벽한 조건을 갖추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제가 살아온 모든 순간을 긍정합니다. 그 모든 순간이 바로 '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