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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평범한 사람은 역사를 움직이게 되는가 — 택시운전사로 보는 한나 아렌트의 철학

by cinema-1 2026. 5. 18.

✔️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왜 택시운전사가 단순한 역사 영화가 아닌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
침묵은 왜 중립이 아닐 수 있는지
평범한 인간이 역사를 움직이는 이유
민주주의가 왜 끊임없이 지켜져야 하는 가치인지

 

솔직히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5.18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1980년 5월, 중학교 3학년 수업 중 라디오에서 긴급 방송이 흘러나왔고 "전남 광주에서 폭동이 발생해 비상계엄이 발효된다"는 말만 들렸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그 시절 제가 얼마나 아무것도 몰랐는지, 아니 알 수 없도록 차단되어 있었는지를 새삼 실감했습니다.

악의 평범성 — 괴물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만든 폭력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입니다. 그녀가 1963년 제시한 개념이 바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입니다. 여기서 악의 평범성이란 특별히 잔인한 본성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 평범한 인간이 거대한 폭력의 집행자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렌트는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직접 참관하면서 이 개념을 도출했는데, 그가 악마 같은 인물이 아니라 그저 명령에 복종한 관료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출처: 한나 아렌트 센터).

일반적으로 역사적 폭력은 특수한 악인에 의해 자행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건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군사독재 체제 아래 초·중·고를 다녔습니다. 반공 이데올로기(anti-communism ideology)를 앞세운 교육 속에서, 저도 선생님도 모두 그냥 주어진 틀 안에서 살았습니다. 여기서 반공 이데올로기란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을 국가 통치의 정당성과 연결 지어 국민을 통제하는 정치적 담론 구조를 말합니다. 누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모두가 생각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 체제가 유지된 것이었습니다.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라디오 뉴스 한 줄 외에는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았고, 저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이미지

 

 

영화 속 만섭도 처음엔 다르지 않습니다. 밀린 월세, 어린 딸의 끼니, 오늘 하루의 수입. 그에게 정치란 먼 세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그가 광주에서 직접 목격한 것들 — 폭력 앞에 선 시민들, 감춰진 진실 — 이 그를 바꿉니다. 아렌트가 말한 "생각하는 능력(the capacity to think)"이 회복되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생각하는 능력이란 단순한 지적 활동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도덕적 사유 능력을 가리킵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계엄군에 의한 민간인 사망자 수는 공식 인정된 숫자를 훨씬 웃돌 가능성이 있으며 아직도 진상 규명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출처: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가 중학교 때 들은 "폭동"이라는 단 한 마디가 얼마나 많은 진실을 지워버렸는지, 수십 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역사 드라마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섭의 변화 과정은 아렌트 철학의 핵심 —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폭력에 저항하는 첫 번째 행위라는 것 — 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 민주주의는 왜 쉽게 무너질 수 있을까
[1987 × 존 롤스 정의론]

👉 국가는 언제 시민을 배신하는가
[화려한 휴가 × 루소 철학]

👉 왜 인간은 혼자 성장할 수 없을까
[굿 윌 헌팅 × 아리스토텔레스]

침묵의 위험과 민주주의 — 그 시절 저도 침묵했습니다

제가 1984년 대학에 입학한 후 3학년때였습니다. 선배 하나가 민주화 운동을 하다 퇴학을 당했다는 소식이 캠퍼스를 돌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최루탄 연기 속에서 행진을 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때 저는 제가 왜 거기 있는지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주변 선배들의 분위기에 이끌렸고, 뭔가 잘못됐다는 막연한 감각이 있었을 뿐입니다. 아렌트가 경계한 것이 바로 그런 상태 — 생각 없이 집단의 흐름에 올라타는 것 — 였을 텐데, 저는 그때 얼마나 스스로 사유하고 있었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침묵이 중립이라는 생각은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믿음입니다. "정치 이야기는 피하고 싶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말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그 침묵이 기존 구조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아렌트가 제시한 공론장(public sphere) 개념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공론장이란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정치적 판단을 형성하는 공개적 토론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공론장이 살아있으려면 시민들이 끊임없이 참여하고 발언해야 하는데, 집단적 침묵은 이 공간을 서서히 닫아버립니다.

택시운전사에서 만섭이 마지막에 선택한 행동 — 독일 기자와 함께 필름을 지키고 광주의 진실을 바깥으로 전달하는 것 — 은 거창한 혁명이 아닙니다. 그저 자신이 본 것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심이 역사의 기록이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 평범한 시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 직접적 저항: 거리에서 시위하고 목소리를 높인 시민들의 행동
  • 기록과 증언: 만섭처럼 진실을 외부로 전달한 행위
  • 일상적 사유: 정보를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침묵하지 않는 태도

지금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어렵습니다. 좌와 우로 갈린 언론이 각자의 프레임으로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르게 전달하고, 소셜미디어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강화합니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 증거는 무시하려는 인지적 경향을 말합니다. 아렌트가 살아있다면 지금의 정보 환경을 가장 위험한 형태의 사유 마비라고 부를지도 모릅니다.

대학 졸업 후 먹고 살기 바쁜 30여 년을 보내면서 저는 민주주의를 그냥 누려만 왔습니다. 이름 없는 수많은 시민들이 최루탄을 맞으며 만들어준 것을 당연한 공기처럼 마셨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그 부채감이 작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선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택시운전사 만섭처럼 거대한 포부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평범한 시민인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정직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끊임없이 따져보고, 쉽게 침묵하지 않는 것. 한나 아렌트가 말한 생각하는 능력을 잃지 않는 것. 그 작은 용기가 지금도, 앞으로도 필요합니다.

 

🤔 생각해볼 질문


나는 불의한 상황 앞에서 얼마나 쉽게 침묵하는가?
평범한 사람의 작은 선택도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왜 끊임없이 지켜야 하는 가치일까?


참고: https://nowhere10.com/entry/%ED%83%9D%EC%8B%9C%EC%9A%B4%EC%A0%84%EC%82%AC-%EC%97%AD%EC%82%AC-%EC%8B%A4%ED%99%94-%EA%B7%B8%EB%A6%AC%EA%B3%A0-%EA%B0%90%EB%8F%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