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주민등록초본을 떼기 전까지 제 삶이 그렇게 떠돌이였는지 몰랐습니다. 귀농귀촌 입주 서류를 준비하다 뽑은 초본에 거주이전 이력이 30건이 넘었습니다.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영화 미나리 속 제이콥 가족이 낯선 미국 땅에서 짐을 풀던 장면이 겹쳐 보였습니다. 맹자가 왜 가족 공동체를 인간 본성의 출발점으로 봤는지, 이 나이가 되어서야 조금 이해가 됩니다.
성선설이 말하는 것은 단순한 선함이 아니다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은 "인간은 착하다"는 한 줄로 요약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성선설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도덕적 행위의 씨앗을 내면에 갖고 있다는 철학적 명제입니다. 단순히 착한 성격을 타고난다는 뜻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능력 자체가 인간에게 본래 내재되어 있다는 주장입니다.
맹자는 이 씨앗을 사단(四端)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단이란 측은지심(惻隱之心,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 서로에게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 네 가지를 말합니다. 이 네 가지가 제대로 자라면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덕목이 된다고 봤습니다.
이것이 가족 이야기와 연결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맹자는 이 본성이 가장 먼저 발현되는 공간으로 가족을 꼽았습니다. 국제아동발달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옵니다. 여기서 애착 이론이란 영아가 주 양육자와 맺는 정서적 유대 관계가 이후 전 생애의 대인관계 패턴을 결정짓는다는 발달심리학 이론입니다. 맹자가 2,300년 전에 직관적으로 포착한 것을 현대 심리학이 데이터로 뒷받침하고 있는 셈입니다(출처: 한국아동학회).
제가 30건이 넘는 이사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애착 기반을 만들어주지 못했을 수 있다는 생각은 꽤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것이 의도된 방치가 아니라 더 나은 환경을 찾아다닌 결과였다 해도, 자녀 입장에서는 맥락보다 결과가 남습니다.
영화 미나리가 세대갈등을 그리는 방식
영화 미나리에서 세대갈등은 노골적인 충돌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할머니 순자와 손자 데이빗의 관계는 처음에 어색함으로 시작해서 천천히 변합니다. 순자는 손자가 기대하는 '할머니 역할'에 맞지 않는 사람입니다. 화투를 치고, 욕을 하고, 미나리를 강가에 심습니다. 그럼에도 그 관계가 결국 가장 진한 유대로 남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 역설입니다.
세대 간 갈등을 심리학에서는 세대 간 전이(Intergenerational Transmission)라는 개념으로 분석합니다. 세대 간 전이란 한 세대의 심리적 패턴, 트라우마, 가치관이 다음 세대에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전달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제 자녀가 서른이 되도록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로 부모의 잦은 이사를 꼽을 때, 저는 그것이 단순한 원망인지 아니면 세대 간 전이의 실제 증거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학군, 더 넓은 집을 찾아 이동했던 선택들이 아이들에게는 뿌리 내릴 기회를 박탈하는 경험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만 15세 이전에 3회 이상 거주지를 이전한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에 비해 사회적 유대감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비율이 높다는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통계청).
현재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비슷한 구조입니다. 시어머니는 제가 지방에 내려온 이유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저는 재취업을 준비하고, 자녀와의 갈등에서 숨 고를 공간이 필요했는데, 시어머니 눈에는 그냥 멀리 떠나 농사짓는 며느리로 보이실 뿐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맥락을 모른 채 각자의 기대만 말하는 것, 그것이 세대갈등의 실제 얼굴입니다.
가족공동체는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다
맹자 철학에서 가족공동체는 이상적으로 화목한 집단이 아닙니다. 맹자가 강조한 것은 오히려 관계의 지속성이었습니다. 인륜(人倫)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인륜이란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관계의 도리로, 맹자는 이것이 위아래 세대가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함으로써 유지된다고 봤습니다. 완벽한 가족이 아니라,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서로를 놓지 않는 가족을 이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미나리라는 식물이 그 상징으로 쓰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나리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한 번 뿌리를 내리면 다시 자랍니다. 어디에 심어도 살아납니다. 영화 속 할머니 순자가 강가에 미나리를 심는 장면은 단순한 고향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낯선 땅에서도 살아남으려는 가족공동체의 의지를 시각화한 것입니다.

제 경험에 비춰 보면, 저희 가족도 이런 미나리에 가깝습니다. 4명이 각각 1인 가구 세대주가 되어 흩어진 지금의 모습이 겉으로는 분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각자 뿌리를 내려보려는 노력이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이것이 실패한 가족의 모습인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가족공동체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맹자 철학을 현실에 적용할 때 핵심적으로 짚어볼 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가족 간 갈등은 본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서로의 맥락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 세대 간 전이는 의도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임을 인식해야 한다
- 가족공동체는 자연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인륜의 실천으로 유지된다
- 거주 안정성은 개인의 애착 형성과 사회적 유대감에 실질적 영향을 준다
👉 가족과 책임의 의미는
[국제시장 × 공자 글]
👉 관계 속 인간의 성장 이야기는
[완득이 × 공자·맹자 글]
👉 상처받은 인간의 회복 과정은
[굿윌헌팅 × 주희 성리학 글]
가정의달, 선한 의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면서도 교육과 환경의 중요성을 함께 강조했습니다. 양지(良知)와 양능(良能)이라는 개념이 그것입니다. 양지란 배우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아는 타고난 도덕적 앎을 말하고, 양능이란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타고난 도덕적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맹자는 이것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덕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환경이 그것을 억누르거나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로 돌아오면, 저는 가족을 위해 이사를 반복했고 선한 의도로 그 결정들을 했습니다. 직장을 따라,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따라, 주거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하나하나는 다 합리적인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맹자의 시각에서 보면 선한 본성이 있다고 해서 결과까지 선한 것은 아닙니다. 양지가 있어도 환경이 뒤틀리면 상처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더 잘 해드리지 못한 것도, 시어머니의 기대를 온전히 채우지 못하는 것도, 자녀의 원망을 다 받아주지 못하는 것도 제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면죄부는 아닙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선한 의도와 올바른 결과 사이의 거리를 메우는 것이 바로 맹자가 말한 인륜의 실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정의달에 가족 관계를 돌아보는 것은 감정적 행사가 아닙니다. 제가 지금 각자 흩어져 사는 가족들에게 어떤 맥락을 설명하고 어떤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5월의 카네이션은 그냥 계절 행사로 끝납니다.
가족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합니다. 30건이 넘는 이사 기록이 부끄러운 과거가 아니라 그 안에서 버텨온 증거라고 스스로 해석하려 합니다. 맹자의 말처럼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그 불완전한 연결 속에서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 가족공동체의 본질일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시어머니께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제가 할 수 있는 인륜의 가장 작은 실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