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하면 늘 반공포스터를 그리고 새마을 노래를 불렀던 저는 대학에서 처음 마르크스를 접했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접경지역에서 자란 탓에 공산주의는 그저 '적'일 뿐이었는데, 80년대 대학가에서 마주한 자본론의 내용은 제가 알던 세계와 전혀 달랐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 개봉한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18세기 마르크스가 고민했던 경제적 불평등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말이죠.
반지하와 언덕 위, 공간으로 읽는 계급구조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공간의 수직성이었습니다.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 집은 창문 너머로 취객의 다리만 보이고, 박사장 가족이 사는 집은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구조(class structure)를 이보다 명확하게 시각화한 작품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계급구조란 사회 내에서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사람들이 위계적으로 배치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80년대에 겪었던 민주화 운동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수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던 이유도 결국 이런 구조적 불평등 때문이었습니다. 정치적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경제적 민주화는 여전히 요원해 보입니다. 영화 속 기택 가족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아래층에 배치되어 있었던 겁니다. 이게 바로 마르크스가 주장한 핵심입니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상위 10% 가구의 순자산은 하위 50% 가구 순자산의 약 45배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출처: 통계청). 이 격차는 단순히 개인의 노력 차이로만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줍니다. 기택이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그 집을 살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은 하지만 나아지지 않는 삶, 소외이론
마르크스의 소외이론(alienation theory)은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소외이론이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과 그 결과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상태를 설명하는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일은 하지만 그 가치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영화 속 기정, 기우, 기택은 모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합니다. 기정은 미술 실력이 있고, 기우는 영어를 가르치며, 기택은 운전 기술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노동이 만들어낸 가치는 모두 박사장 가족의 풍요로 귀속됩니다. 제가 직접 겪었던 80년대 노동 현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 주변 친구들은 공장에서 밤낮으로 일했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들이 만든 제품은 누군가의 부를 키웠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기택이 박사장의 차를 운전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고급 자동차를 능숙하게 다루지만 그 차는 영원히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소외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도 반복됩니다. 아무리 일을 해도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하고, 연금은 바닥나고, 미래는 불투명합니다. 마르크스가 살았던 산업혁명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가난한 자끼리 싸우는 이유, 허위의식
영화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은 가난한 두 가족이 서로 충돌하는 장면입니다. 지하에 숨어 살던 근세와 반지하에 사는 기택 가족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눕니다. 마르크스는 이를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의 결과로 설명합니다. 허위의식이란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진짜 이익을 깨닫지 못하고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제가 대학 시절 처음 이 개념을 배웠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이 바로 이겁니다. 구조적 문제를 개인 간 경쟁으로 전환시키면 체제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도 노동자들끼리 서로를 경쟁자로 보게 만드는 이데올로기가 작동했습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이런 현상은 명확합니다:
-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를 비난하고
-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를 견제하며
- 내국인과 이주 노동자가 일자리를 두고 갈등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산 격차를 만들어낸 구조적 원인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이게 바로 허위의식의 작동 방식입니다. 영화 속 기우가 "돈을 벌어서 이 집을 사겠다"고 말할 때, 그는 이미 체제 내부의 욕망을 내면화한 상태였습니다.
폭력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영화의 결말에서 기택은 폭력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그 폭력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과거 민주화 운동 시절 고문으로 생을 마감한 열사들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class struggle theory)에 기반해 혁명을 꿈꿨습니다. 계급투쟁론이란 역사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간의 투쟁으로 발전한다는 마르크스의 역사관입니다.
솔직히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은 폭력적이고 과격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생을 마감하면서까지 완성하지 못한 3000페이지가 넘는 자본론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마르크스가 말한 혁명은 단순한 감정 폭발이 아니라 생산관계의 전환을 의미했습니다. 영화는 이 지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개인의 분노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말이죠.
2023년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 수준이 자녀의 교육 기회와 직업 선택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출처: 한국개발연구원). 계급 재생산이 심화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이 구조를 뚫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겁니다.
제 생각에 자본주의가 아직은 모든 경제체제 중에서도 인간의 욕구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체제인 것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과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자아를 황폐화시킨다는 점은 마르크스가 살았던 산업혁명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우리에게 구조를 보라고 말합니다. 감정이 아니라 인식이 출발점이라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