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말은 처음 읽을 때 너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냥 넘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문장이 진짜로 무섭다는 걸, 귀농 3년 차 어느 무더운 여름 오후에 깨달았습니다. 풀을 뽑다 손을 놓고 멍하니 앉아 있던 그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스타 없이도 이길 수 있다는 질문
《머니볼》은 2011년 베넷 밀러 감독이 연출한 영화입니다. 브래드 피트가 메이저리그 구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을 연기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이 영화의 핵심 질문은 간단합니다. "돈도 없고 스타도 없는 팀이 어떻게 강팀을 이길 수 있는가?" 빌리 빈이 선택한 답은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였습니다. 세이버메트릭스란 야구에서 선수의 감각이나 인상이 아닌 통계와 수치로 선수의 기여도를 측정하는 분석 방법입니다. 쉽게 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숫자로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처음에 코치들은 비웃었습니다. 스카우터들은 반발했습니다. "야구는 데이터로 하는 게 아니야." 저도 솔직히 영화 초반에는 이 남자가 도박을 하는 건지 혁신을 하는 건지 분간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클랜드는 이기기 시작했습니다. 20연승이라는 기록까지 세웠습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건 단순히 야구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스템이 개인의 천재성을 대체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질문이 스페인 월드컵 우승 뉴스를 보면서 갑자기 다시 살아났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우리나라가 어이없이 탈락한 뒤로 월드컵을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이 결승에 올랐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메시가 이기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뉴스에서 스페인 우승 소식을 들었습니다. 해설자가 설명하는 우승 비결을 듣다가 저도 모르게 손을 멈췄습니다. "스페인은 유소년 때부터 같은 철학으로 훈련한 팀입니다." 그 한 문장이 《머니볼》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동시에 불러왔습니다.
탁월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에토스(Ethos)라는 개념을 씁니다. 에토스란 성품이나 기질을 뜻하는데, 중요한 건 이것이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반복된 행동을 통해 형성된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하면, 용감한 사람이 용감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용감한 행동을 반복한 사람이 용감한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출처: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2권).
이 논리를 《머니볼》에 대입하면 꽤 무섭습니다. 오클랜드가 만든 건 스타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매일 데이터를 분석하고,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수행하는 선수들의 집합이었습니다.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반복이 쌓이면서 팀 전체가 달라졌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아레테(Arete)라고 불렀습니다. 아레테란 탁월함 혹은 덕(德)을 의미하는데, 한 번의 뛰어난 행동이 아니라 꾸준한 실천에서 나오는 능력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말로 하면 "몸에 밴 실력"에 가깝습니다.
스페인 축구가 정확히 그것을 보여줬습니다. 선수는 세대를 거쳐 바뀌었지만 철학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패스를 연결하고 공을 소유하는 방식이 유소년 팀부터 성인 대표팀까지 이어졌습니다. 한 선수의 천재성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에토스가 팀을 지탱한 것입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멈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귀농 3년이 지났는데, 저는 아직도 농사를 "하루하루 버티는 것"으로 느낄 때가 많습니다. 자연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풀과 벌레와 함께하는 매일이 낯설고 때론 지겹습니다. 그러면서도 빨리 결과가 나오길 바랐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그래서 찔렸습니다. 저는 탁월함을 원하면서, 반복을 싫어하고 있었던 겁니다.
오늘의 반복이 내일의 철학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 이야기는 어떤 질문을 던지는 걸까요?
영화 연구 기관 AFI(미국영화연구소)는 《머니볼》을 단순한 스포츠 영화가 아니라 "기존의 관습에 도전하는 인간 의지에 관한 이야기"로 평가한 바 있습니다(출처: American Film Institute, Top Films of 2011).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이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는 야구 때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느 순간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라는 질문을 받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프로네시스(Phronesis)라는 개념도 이야기했습니다. 프로네시스란 실천적 지혜, 즉 지식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삶 속에서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이론을 삶으로 바꾸는 능력이라고 보면 됩니다.
빌리 빈이 가졌던 건 바로 이것이었을 겁니다. 데이터를 아는 것만이 아니라, 반발하는 코치들 앞에서도 자신의 판단을 밀어붙이는 실천의 용기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귀농의 방식을 조금 바꿔봤습니다.
- 매일 아침 30분, 무조건 밭에 나간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나가는 것 자체를 습관으로 만든다.
- 풀을 뽑을 때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내가 뽑은 풀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 실패한 작물은 기록한다. 무엇이 안 됐는지 데이터로 남긴다.
거창한 계획이 아닙니다. 《머니볼》의 빌리 빈도 처음부터 우승을 목표로 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늘 이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중용(中庸),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극단을 피하고 적절한 균형을 찾는 태도가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너무 조급하지도, 너무 무기력하지도 않게.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러나 매일. 그것이 결국 스페인 축구가 수십 년에 걸쳐 해온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는 아직 귀농의 정답을 모릅니다. 다만 《머니볼》을 다시 떠올리며 이런 생각이 남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뒤에 있는 건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날의 반복이었다는 것. 당신은 지금 어떤 반복을 쌓고 있습니까? 그 반복이 10년 뒤의 당신을 만들고 있다면, 오늘을 조금 다르게 보내고 싶어지지 않으십니까? 저는 그 질문을 붙들고, 내일 아침에도 밭으로 나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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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볼 질문
-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를 위해 지금 반복하고 있는 습관은 무엇인가?
- 개인의 뛰어난 능력과 조직의 협력 중 어느 것이 더 큰 성과를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 내가 속한 가정이나 직장에서 조직력을 높이기 위해 오늘부터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은 무엇일까?
참고: https://topclass.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36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