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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와 맹자 (성선설, 측은지심, 역성혁명)

by cinema-1 2026. 3. 10.

저도 처음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 )를 봤을 때는 솔직히 이해가 안 됐습니다. 왜 저 사람은 자기 목숨을 걸면서까지 남을 구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맹자의 철학을 공부하고 나서 다시 이 영화를 보니까 완전히 다른 그림이 보였습니다. 맹자는 인간에게 이미 선한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봤는데, 쉰들러의 변화가 바로 그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처럼 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인간 본성에 대한 이런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맹자가 말한 성선설, 인간 마음속 도덕의 씨앗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면서 사단(四端)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여기서 사단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네 가지 도덕적 감정의 단초를 의미합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仁),의(義),예(禮),지(智)의 사덕(四德)으로 드러나게 되어 우리는 인간의 착한 본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이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측은지심이었습니다. 맹자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걸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며 구하려 한다"고 설명했는데, 이건 계산이나 보상 때문이 아니라 그냥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뉴스에서 사고 현장에 뛰어든 시민들 이야기를 볼 때마다 이 말이 떠오릅니다.

동서양 철학자들은 인간 본성에 대해 비슷하면서도 다른 견해를 보였습니다. 서양의 루소는 성선설을, 홉스는 성악설을, 로크는 백지설을 주장했죠. 동양에서도 맹자는 성선설을, 순자는 성악설을, 고자는 성무선악설을 내세웠습니다. 이 중에서 루소와 맹자의 사상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깊습니다(출처: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맹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끊임없는 전쟁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던 그 시대에 맹자는 오히려 인간의 착한 본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혼란을 막는 것은 결국 인간이 지닌 도덕성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본 거죠. 요즘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걸 보면, 맹자의 이런 통찰이 지금도 여전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쉰들러의 변화 속 측은지심과 수오지심

 

맹자의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

 

 

영화 속 오스카 쉰들러는 처음엔 그냥 돈 벌려는 사업가였습니다. 전쟁을 이용해서 싸게 노동력을 쓰고 군수품을 팔아 이익을 챙기는 게 목표였죠. 저도 영화 초반부를 보면서 '이 사람이 어떻게 영웅이 되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목격하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빨간 코트를 입은 어린 소녀가 학살당하는 장면은 쉰들러의 마음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이 장면이 바로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의 발현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음,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거죠. 쉰들러는 더 이상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보고 있을 수 없었던 겁니다.

여기에 수오지심도 작동했습니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이란 악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쉰들러는 자신이 나치 체제에 협력하며 돈을 버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불의한 일에 가담하는 게 견딜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그는 자기 재산을 다 쏟아부으면서까지 유대인들을 구하기 시작합니다.

평소 사건 사고 뉴스를 보면 인간의 본성이 정말 악한 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범죄들을 보면 맹자의 성선설이 맞나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동시에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을 돕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역시 인간 본성은 선하다는 확신이 듭니다.

이익과 의로움 사이, 도덕적 용기의 선택

맹자는 유명한 비유를 남겼습니다. "생선도 먹고 싶고 곰의 발도 먹고 싶지만, 둘 다 가질 수 없다면 곰의 발을 선택한다." 여기서 생선은 이익(利)을, 곰의 발은 의로움(義)을 상징합니다. 이익과 정의가 충돌할 때 의로움을 택하는 것, 그게 인간다운 선택이라는 뜻이죠.

쉰들러가 바로 이런 선택을 했습니다. 유대인을 구한다는 건 그에게 엄청난 위험이었습니다. 재산을 잃을 수도 있고, 나치에게 체포될 수도 있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익보다 의로움을 선택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선택은 쉽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보고도 침묵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 순간마다 제 안의 수오지심이 저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맹자는 이런 도덕적 선택이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봤습니다. 모든 인간에게 이미 그런 마음이 있으니, 그걸 발휘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라는 거죠. 쉰들러도 처음부터 영웅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사업가였지만, 그 안에 있던 도덕의 씨앗이 깨어난 겁니다.

맹자의 사상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게 역성혁명(易姓革命) 개념입니다. 역성혁명이란 백성을 위하지 않는 군주는 폐위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 오늘날 민주주의의 민본주의(民本主義) 원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는 통치자의 정당성이 백성의 복지에 달려 있다는 혁명적 발상이었습니다(출처: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요즘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이 말이 더욱 와닿습니다. 국민을 위하지 않는 권력은 정당성을 잃는다는 맹자의 통찰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걸 실감합니다.

교육과 환경, 선한 본성을 지키는 방법

맹자는 인간의 선한 본성이 저절로 유지되는 건 아니라고 봤습니다. 환경과 교육이 중요하다는 거죠.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인데, 좋은 환경이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발현시킨다는 뜻입니다.

솔직히 요즘은 이 말이 좀 왜곡된 느낌도 있습니다.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 가는 게 맹모삼천지교라고 하는데, 맹자의 원래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 겁니다. 진짜 중요한 건 학원이 많은 동네가 아니라, 아이의 도덕성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라는 거죠.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인성 교육 말입니다.

세상이 유지되는 이유도 결국 이런 교육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일 뉴스에서 사건 사고를 보면 세상이 끝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타인을 배려하고, 불의를 미워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들이 훨씬 많죠. 그게 바로 맹자가 말한 선한 본성이 발휘되는 모습입니다.

제가 볼 때 오늘날 사회에 필요한 건 쉰들러 같은 도덕적 용기입니다. 거창한 영웅이 아니어도 됩니다. 일상 속 작은 불의를 보고 지나치지 않는 것,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 이익보다 정의를 선택하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맹자의 철학은 우리에게 이런 가능성이 이미 내재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쉰들러 리스트를 맹자의 철학으로 다시 보면 전혀 다른 의미가 보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전쟁 드라마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맹자는 이미 2000년 전에 그 답을 제시했습니다. 인간에게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 불의를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요. 쉰들러의 선택이 특별해 보이지만, 사실 그건 우리 모두가 가진 본성의 발현입니다. 어릴 때부터 왜곡되지 않은 교육을 받고, 그 선한 본성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도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작은 용기를 내고 있을 겁니다. 그게 바로 맹자가 말한 인간다움 아닐까요.


참고: https://beautimom.com/entry/%EC%89%B0%EB%93%A4%EB%9F%AC-%EB%A6%AC%EC%8A%A4%ED%8A%B8-%EB%8F%88%EA%B3%BC-%EC%96%91%EC%8B%AC-%EC%82%AC%EC%9D%B4%EC%97%90%EC%84%9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