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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얼간이》 × 존 듀이: 경쟁보다 함께 성장할 때 더 멀리 갈 수 있다

by cinema-1 2026. 7. 22.

성적표를 받아들고 아무 말도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까. 아니면 내 아이의 성적표를 보며 괜히 옆집 아이 이름을 떠올린 적이 있습니까. 세대가 달라도 그 공기는 비슷합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경쟁하도록 훈련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세 얼간이》를 다시 떠올릴 때마다 저는 같은 질문 앞에 멈춥니다. 과연 경쟁이 우리를 더 멀리 데려다 주는가, 아니면 함께 걷는 것이 더 먼 곳까지 닿는가.

우리는 언제부터 서로를 경쟁자로 보게 되었나

2009년, 인도 영화가 한국 극장에서 상영된다는 것 자체가 꽤 낯선 일이었습니다. 저는 큰 기대 없이 극장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이 멈췄습니다. 화면 속 인도의 공과대학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수 앞에서 긴장한 얼굴들, 성적 순위가 공개되는 장면,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다 결국 스스로 무너지는 학생. 그건 인도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살아온 시간의 어딘가였습니다.

영화에서 부모들이 갓 태어난 아기에게 장차 무엇이 되라고 주문을 거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미 보신 분들은 그 장면이 어떤 무게를 가졌는지 아실 겁니다. 처음 보신 분들을 위해 결말보다는 이 장면이 던지는 질문에 집중하겠습니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경쟁의 틀 안에 놓이는 것. 저는 그것이 낯선 나라 이야기라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산모들이 태교로 영어 공부를 하고 수학 문제를 푼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장면이 겹쳐 보였습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경주. 그 끝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었습니까.

한때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2등은 기억하지 않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웃자고 만든 말이었겠지만, 웃고 나서 왠지 씁쓸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씁쓸함이 무엇인지, 그 유행어가 왜 그토록 빨리 퍼졌는지, 저는 지금도 생각합니다.

존 듀이가 말한 '함께 배운다'는 것의 진짜 의미

주인공 란초는 공부를 잘합니다. 그러나 그의 방식은 다릅니다. 시험 점수를 높이기 위해 외우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원리가 작동하는지를 먼저 묻습니다. 그리고 혼자 답을 찾는 대신 친구들과 함께 고민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미국의 교육철학자 존 듀이가 떠올랐습니다.

듀이는 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개념 중 하나가 경험교육(Experiential Education)입니다. 경험교육이란, 직접 부딪히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만 진짜 배움이 일어난다는 생각입니다. 책에서 읽은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겪은 경험이 사람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란초가 강의실 밖에서 실험하고,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이 바로 이 경험교육의 모습입니다.

또 하나는 협력학습(Collaborative Learning)입니다. 협력학습이란 혼자 최고가 되는 것보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 더 깊은 이해와 더 큰 성장을 만든다는 교육 방식입니다. 듀이는 "교육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말했습니다(출처: John Dewey, Democracy and Education, 1916). 학교가 끝난 뒤에도 배움은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이 철학이 영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런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 란초가 교수의 권위에 도전하며 "이 개념을 왜 배우는지 설명해 달라"고 묻는 장면
  • 세 친구가 밤새워 함께 문제를 풀고, 혼자였다면 포기했을 상황을 같이 넘기는 장면
  • 공학 지식으로 학교 밖 실제 문제를 해결하며 배움이 삶과 연결되는 장면

란초 혼자 뛰어난 것이 아닙니다. 세 사람이 함께여서 각자가 더 멀리 간 것입니다.

 

 

영화 <세 얼간이.와 존 듀이의 사상 이미지

 

귀농지에서 배운 것, 경쟁이 아닌 관계가 농사를 살린다

저는 귀농을 준비하면서 처음엔 완전히 틀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땅만 찾으면 되고, 작물 기술만 익히면 되고, 혼자 잘하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알게 된 건 이웃 농부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책으로 배운 것은 밭에서 한 번 죽어봐야 진짜가 됩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배우고, 선배 귀농인들과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이웃이 알려주는 그 지역 땅의 성질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그 시간들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혼자 책을 읽는 게 더 빠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혼자 얻은 지식은 조금씩 희미해졌고, 함께 경험한 시간은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듀이의 말이 그제야 몸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는 "민주주의는 단순한 정치 형태가 아니라 함께 경험을 나누는 삶의 방식"이라고 했습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John Dewey). 농촌의 공동체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혼자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남는 것. 그게 농사였고, 어쩌면 삶 전체의 이치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북중미 월드컵에서 스페인이 우승한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타 한 명이 팀을 이끈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같은 철학으로 훈련받은 선수들이 서로를 신뢰하며 움직인 결과였습니다. 함께 배운 시간이 쌓여 하나의 언어가 된 것. 경쟁에서 이기는 훈련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훈련. 그 차이가 결국 결승전에서 드러났습니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지금 내 곁의 사람을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함께 더 멀리 가야 할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까. 《세 얼간이》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그 질문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각자가 란초처럼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지, 그 가능성을 이 영화는 조용히 열어두고 있습니다. 그 문 앞에서 무엇을 선택하실지는, 오롯이 독자 여러분 몫입니다.

 

생활 속에 적용해 볼 아이디어

  • 새로운 것을 배울 때 혼자 해결하려 하기보다 함께 배우는 모임에 참여해 보세요.
  • 직장에서 성과보다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어 보세요.
  • 가족과도 결과를 평가하기보다 함께 배우는 시간을 늘려 보세요.

생각해볼 질문

  • 나는 경쟁에서 이기는 데 더 집중하고 있을까요, 함께 성장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을까요?
  • 최근 누군가와 함께 배우며 성장했던 경험은 무엇이었나요?
  • 내가 속한 가정이나 직장에서 협력을 키우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은 무엇일까요?

참고: https://namu.wiki/w/%EC%84%B8%20%EC%96%BC%EA%B0%84%EC%9D%B4
https://www.gutenberg.org/ebooks/852
https://plato.stanford.edu/entries/dew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