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
우리는 왜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도 살아가는가
공리주의와 정의론으로 본 계급 문제
정의로운 사회’는 정말 가능한가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아이들 성적표를 받아들 때마다 스스로를 좋은 부모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좋은 대학, 더 안정적인 직장을 바라는 것이 당연히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설국열차를 다시 보다가 불편한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아이를 제 기준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 것은 아니었을까요?
우리는 왜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영원히 달리는 열차 안에서 앞칸과 뒷칸으로 철저하게 나뉜 계급 구조를 보여줍니다. 앞칸에는 풍요와 선택이 있고, 뒷칸에는 결핍과 통제가 있습니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저는 단순한 디스토피아 설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볼수록 이게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 속 열차 지배자 윌포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열차는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이 대사가 담고 있는 논리가 바로 사회적 헤게모니(Hegemony)입니다. 헤게모니란 지배 집단이 강제가 아닌 동의와 설득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뒷칸 사람들이 반란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구조 전체를 뒤엎으려 하지도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조금씩 배급되는 단백질 블록과 "지금보다 나빠질 수 있다"는 공포가 사람들을 현재에 묶어두는 것입니다.

제가 아이의 성적표를 보며 느낀 불안도 비슷한 구조였습니다. "이 성적으로는 좋은 대학에 못 간다"는 공포가 아이의 과정을 외면하게 만들었습니다. 사회가 정해둔 성공의 기준이라는 '앞칸'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논리를 저도 모르게 내면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불평등한 구조가 유지되는 데는 세 가지 요소가 작동합니다.
- 생존에 대한 두려움: 현재를 잃을까봐 변화를 선택하지 못함
- 희망의 통제: 조금씩 나눠주는 보상이 불만을 잠재움
- 대안의 부재: 구조 밖의 삶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드는 환경
공리주의와 정의론, 어느 쪽이 옳은가
설국열차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논리가 공리주의(Utilitarianism)입니다. 공리주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표로 하는 윤리 이론으로,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부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쓰입니다. 열차가 달리기 위해 뒷칸 아이들이 엔진 부품으로 사용된다는 충격적인 설정이 바로 이 논리의 극단적인 표현입니다.
근대 공리주의를 체계화한 벤담(Jeremy Bentham)은 사회 전체의 쾌락의 양을 기준으로 행복을 측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밀(John Stuart Mill)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로 쾌락의 질을 강조했습니다. 쾌락의 양보다 정신적이고 고차원적인 쾌락이 더 가치 있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 구분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아이에게 좋은 성적이라는 양적 결과를 요구했던 저는 벤담의 논리에 더 가까웠던 셈이니까요.
이에 맞서는 관점이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입니다. 롤스는 공정한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을 제시했습니다. 차등의 원칙이란 사회적 불평등은 오직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될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원칙입니다. 이 기준으로 열차 사회를 보면, 뒷칸 사람들에게는 선택권도 개선의 가능성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롤스의 기준에서 이 사회는 안정적일 수는 있어도 정의롭지는 않습니다(출처: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 - 존 롤스).
제가 직접 이 두 관점을 아이 교육에 적용해보니, 차이가 명확했습니다. 공리주의적 시각에서는 아이의 성공이 가족 전체의 행복에 기여한다는 논리가 성립합니다. 하지만 롤스의 시각에서는 아이 스스로에게도 이익이 되는 방향인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두 번째 질문을 저는 오랫동안 하지 않았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실제로 가능한가
그렇다면 설국열차의 마지막 선택, 즉 열차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는 결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는 이 장면이 사회계약론(Social Contract Theory)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계약론이란 개인이 자신의 일부 자유를 사회에 양도하는 대신 안전과 질서를 보장받는다는 이론으로, 홉스, 로크, 루소 등이 발전시킨 개념입니다. 설국열차의 뒷칸 사람들은 이 계약이 처음부터 불공정하게 설계되었음을 깨닫는 과정을 겪습니다.
현실 사회에서도 비슷한 구조적 문제는 측정 가능한 수치로 나타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 지수인 지니계수(Gini Coefficient)는 2022년 기준 0.324로, 이는 소득 분배의 불균등 정도를 0(완전 평등)에서 1(완전 불평등) 사이로 나타내는 수치입니다(출처: OECD 통계). 숫자 하나가 열차 안의 계급 구조를 현실로 소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거창한 철학 이론보다 아래의 세 가지 질문이 훨씬 실용적이었습니다.
- 이 구조는 특정 집단에게만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은가?
- 그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벗어날 선택권이 존재하는가?
- 이 시스템은 개선될 가능성이 열려 있는가?
제 경험상 이 세 가지 질문을 아이 교육에 적용하면 답이 달라집니다. 저는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고 있었는지, 아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개선될 여지를 열어두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잘 작동하는 시스템이라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 영화가 아니라 일상에서도 유효한 질문입니다.
정의가 어디 있는지는 사실 멀리 있지 않습니다. 제가 어떤 기준으로 주변 사람을 판단하고, 어떤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설국열차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은 결국 이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질서 안에, 누군가의 희생이 전제되어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그 질문을 불편하게 느낀다면,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앞칸에 가까운 자리에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 생각해볼 질문
나는 지금 어떤 ‘칸’에 서 있는가?
내가 누리는 안정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있는 것은 아닐까?
정의로운 사회란 ‘평등한 사회’인가, ‘공정한 사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