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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과 영화 헝거게임, 설국열차(루소,로크,홉스)

by cinema-1 2026. 3. 5.

몇 백 년 전 철학자들이 이미 오늘날 민주주의의 뼈대를 설계했다는 사실, 처음 알았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접하고 나서 《헝거게임》이나 《설국열차》 같은 영화를 다시 보니, 그 안에 담긴 철학적 질문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습니다. 국가는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통제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판엠의 캐피톨에도, 설국열차의 윌포드에게도,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루소의 일반의지, 헝거게임 속에서 찾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e)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여기서 일반의지란 단순한 다수결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공공선을 향한 집단적 의지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특정 계층의 이익이 아니라 모두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의지입니다. 루소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말했는데, 이 문장이 《헝거게임》의 12개 구역 시민들의 모습과 정확히 겹쳐 보입니다.

판엠의 캐피톨은 '과거 반란 방지'라는 명분으로 매년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헝거게임을 운영합니다. 표면적으로는 평화 유지지만, 실제로는 공포를 통한 복종 체제입니다. 루소의 기준으로 보면 이 체제는 정당한 사회계약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공동체 전체가 자발적으로 동의한 규칙이 아니라, 지배층이 일방적으로 강제한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루소가 말한 '자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루소에게 진정한 자유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방종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법에 복종하는 상태입니다.

캣니스의 저항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왜곡된 계약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루소는 사회계약이 공공선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그 계약은 이미 무너진 것이라고 보았고, 정당하지 않은 권력에 대해서는 계약 파기를 인정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시민들이 점차 각성하는 과정은 일반의지가 왜곡된 상태에서 다시 회복되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제가 사회계약론을 공부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이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순자의 성악설과 홉스의 성악설, 맹자의 성선설과 루소의 성선설이 서로 닮아 있다는 건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출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홉스와 로크까지, 설국열차로 비교하다

 

사회계약론으로 보는 영화 헝거게임, 설국열차

 

사회계약론을 말한 철학자는 루소만이 아닙니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와 존 로크(John Locke)도 사회계약을 논했지만, 세 사람의 출발점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홉스는 인간 본성을 위험하다고 봤습니다. 그는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묘사하며, 강력한 절대 권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자연 상태(state of nature)란 국가나 법이 없는 원초적 상태를 의미하는데, 홉스에게 이 상태는 혼란과 공포로 가득한 곳입니다. 반면 로크는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보았습니다. 로크에게 자연 상태는 전쟁 상태가 아니라 기본 권리를 이미 보유한 상태입니다. 문제는 권리 침해를 해결할 공정한 심판자가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정부가 필요하다는 논리입니다.

《설국열차》는 이 세 철학을 한 열차 안에 압축한 듯한 구조입니다. 지구가 얼어붙고 열차만이 유일한 생존 장치인 상황에서, 꼬리칸 사람들은 강제 노동과 신체 훼손, 이동의 자유 박탈을 겪습니다. 홉스적 관점에서 보면 열차 체제는 비윤리적이지만 "무정부 상태보다는 낫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외부 세계는 완전한 무질서 상태이고, 열차는 적어도 질서를 보장하니까요. 그러나 로크는 반문합니다. 정부는 생명·자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열차 체제가 기본권을 침해한다면 계약은 이미 파기된 것 아닌가. 로크적 관점에서 꼬리칸의 반란은 무질서가 아니라 권리 회복입니다.

루소는 더 근본적으로 묻습니다. 이 질서는 모두의 공공선을 반영한 것인가. 열차의 구조는 공동체 전체의 의지가 아니라 소수의 설계에 의해 고정되어 있습니다. 루소에게 문제는 단순한 불평등이 아니라 정당성의 결여입니다. 저는 처음 사회계약론을 접했을 때 일반의지 개념이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오늘날 민주주의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회계약이란 일종의 약속인데, 강압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합의하고 자율적인 관계에서 성립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철학자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홉스: 질서 없이는 자유도 없다. 안전이 최우선 가치다.
  • 로크: 권리 보호가 국가 존재의 이유다. 권리 침해 시 저항 가능하다.
  • 루소: 공동체의 의지가 정당성을 만든다. 불평등 구조는 계약 위반이다.

현대 사회에도 이 세 관점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감시 사회는 홉스적 정당화를 사용하고, 인권 담론은 로크적 전통에 기반하며, 시민 참여 민주주의는 루소의 그림자를 지닙니다. 제 생각에 어느 한 명만으로 사회를 설계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세 사상의 긴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대한민국 헌법도 이 세 철학의 균형 위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루소가 제시한 일반의지는 처음에는 추상적으로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의 방향을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약속이 필요하고, 그 약속은 모든 사람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어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그것을 법이라고 알고 있지만, 어쩌면 처벌이 두려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양심과 공익을 위해 지키겠다는 자율적 선택이 반영된 것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국가는 이러한 자율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헝거게임》도, 《설국열차》도 결국 이 질문을 던집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영화 속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지금 우리 삶 속에서도 계속됩니다.


참고: https://forearlystage.com/entry/%EC%98%81%ED%99%94-%ED%97%9D%EA%B1%B0-%EA%B2%8C%EC%9E%84The-Hunger-Games-%EC%8B%9C%EB%A6%AC%EC%A6%88-%EC%82%AC%ED%9A%8C-%ED%86%B5%EC%A0%9C%EC%9D%98-%EB%8F%84%EA%B5%AC%EB%A1%9C-%EC%82%AC%EC%9A%A9%EB%90%98%EB%8A%94-%EC%B2%A8%EB%8B%A8-%EA%B3%BC%ED%95%99-%EA%B8%B0%EC%88%A0%EC%9D%98-%EB%81%9D%EC%9D%80#google_vigne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