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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싸움으로만 끝나는가《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 마르틴 부버

by cinema-1 2026. 7. 31.

분노한 사람 앞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요.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느끼는 불편함만 보고 있는 건지.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를 보고 나서 극장 불이 켜지는 동안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액션보다 오래 남은 건, 피터 파커가 분노한 진을 바라보던 그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분노 뒤에 있는 것을 보려 했던 한 장면

이미 보신 분들과 함께 그 장면을 떠올려보려 합니다.

피터는 충분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문법대로라면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멈춥니다. 주먹 대신 시선을 먼저 씁니다. 진의 분노를 '위협'이 아니라 '신호'로 읽으려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 순간 솔직히 좀 당황했습니다. 영화가 여기서 이렇게 나올 줄 몰랐거든요.

영화관 환경이 그리 좋지 않은 지방 소도시 극장에서 이번이 두 번째 영화관람이었습니다. 첫번째는 <아바타>였고 이번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두번째입니다. 이번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장면이, 영화관을 나오며 이상하게 오랫동안 복잡한 생각이 멈추질 않았습니다.아마도 그 사이에 직장에서 겪은 일들 때문이었을 거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단기 일자리에서 부정을 저지른 사람이 결국 조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떠난 뒤에도 남은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지켜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을 문제로 만드는 데 얼마나 빠른가. 피터가 진을 바라보던 그 장면이 다시 떠오른 건 그 때문이었습니다.

부버가 말한 '나-너', 그리고 우리가 놓치는 것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입니다. 그의 대표작 『나와 너(Ich und Du)』는 인간 관계의 본질을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눕니다.

하나는 나-그것(I-It) 관계입니다. 여기서 '그것'이란 상대를 하나의 기능이나 역할, 혹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대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필요할 때 쓰고, 불편하면 피하고, 문제가 생기면 제거 대상으로 보는 것이죠.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의 꽤 많은 부분이 이 범주에 속합니다.

다른 하나는 나-너(I-Thou) 관계입니다. 부버가 말하는 '너(Thou)'란 상대를 역할이 아니라 한 명의 온전한 인간으로 마주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 사람의 감정, 삶, 상처까지 함께 바라보려는 자세입니다. 부버는 이 관계에서만 진짜 만남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너'를 만날 때 비로소 참된 존재가 된다."(출처: 마르틴 부버, 『나와 너』)

이 문장이 처음엔 그냥 좋은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직장에서 그 일들을 겪고 나서 다시 읽으니 조금 달랐습니다. 우리가 '나-그것'의 관계에 머물 때, 정작 판단을 잃는 건 상대가 아니라 저 자신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관계를 영화에 대입하면 이렇게 정리됩니다.

  1. 피터가 진의 공격을 '위협'으로만 보는 순간 → 그것(It) 관계, 제압이 유일한 선택지
  2. 피터가 분노 뒤의 상처를 읽으려 하는 순간 → 너(Thou) 관계, 대화가 가능해짐
  3. 진의 분노가 조금씩 누그러지는 순간 → 관계의 변화가 사건을 바꿈

이 세 단계가 실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납니다. 영화는 그걸 행동이 아니라 눈빛으로 보여줍니다. 저는 그게 이 작품에서 가장 영리한 연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감은 약함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선택이다

공감(empathy)이라는 말이 요즘 너무 쉽게 쓰입니다. 공감 능력, 공감 대화법, 공감 리더십. 말은 넘쳐나는데 실제로 해보면 정말 어렵습니다. 공감이란 상대의 감정 상태를 내 안에서 함께 느끼고 이해하려는 심리적 과정을 의미합니다. 동정(sympathy)과는 다릅니다. 동정이 '안됐다'는 거리감이라면, 공감은 '그럴 수 있겠다'는 접근입니다.

피터가 진에게 보여준 것은 후자였습니다. "네가 틀렸어"가 아니라 "네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고 싶어"에 가까운 태도였습니다.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상대가 나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분노의 뿌리를 이해하려 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힘으로 이기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용기를 씁니다.

로저 에버트 필름 재단의 리뷰들을 오랫동안 즐겨 읽어왔는데, 좋은 슈퍼히어로 영화와 그냥 스펙터클한 영화의 차이를 이런 말로 설명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진짜 히어로 서사는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싸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드는 방법을 보여줄 때 완성된다고. 이번 피터의 선택이 정확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이 장면이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현실에서 저렇게 할 수 있겠어? 라는 생각이요. 그런데 제가 직장에서 겪은 일들을 돌아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화를 자주 내던 동료, 말이 많아 피하게 됐던 사람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중 몇몇은 정말 힘든 사정을 안고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그것'으로 분류해버린 셈이었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좀 불편합니다.

오늘 하루 모든 일정을 마치며 극장에서 나와 걷는 길이 꽤 길었습니다. 그 길 내내 피터의 그 눈빛이 따라왔습니다. 내가 최근 누군가를 '너'가 아닌 '그것'으로 대한 건 아닐까 하고요.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사실 아주 단순합니다. 당신은 지금 상대의 분노를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분노를 만든 삶을 보고 있습니까. 그 차이 하나가 관계의 방향을 완전히 바꿉니다. 피터가 보여준 것처럼, 이해가 힘보다 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는 꽤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어떻게 보셨나요.

생활 속에 적용해 볼 아이디어

화를 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먼저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한 번 떠올려 보세요.
가족이나 직장 동료를 역할이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누군가를 평가하기 전에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는 습관을 길러보세요.

생활 속에 적용해 볼 아이디어

  • 화를 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먼저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한 번 떠올려 보세요.
  • 가족이나 직장 동료를 역할이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 누군가를 평가하기 전에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는 습관을 길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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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볼 질문

나는 상대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갈등 상황에서 이기는 것과 이해하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어려운가?
내 삶에서 '나-너'의 관계로 다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참고: https://namu.wiki/w/%EC%8A%A4%ED%8C%8C%EC%9D%B4%EB%8D%94%EB%A7%A8:%20%EB%B8%8C%EB%9E%9C%EB%93%9C%20%EB%89%B4%20%EB%8D%B0%EC%9D%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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