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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언제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영화 《굿 윌 헌팅》으로 보는 마르틴 부버의 '나-너(I-Thou)' 철학

by cinema-1 2026. 7. 12.

1997년 개봉한 영화 《굿 윌 헌팅》은 지금도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지금 상대를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원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까?" 저는 요즘 이 질문이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97년생 아들이 귀농 준비 중인 제 곁으로 불쑥 찾아와 작은 직장에 취업하고, 독립까지 한 뒤로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습니다.



《굿 윌 헌팅》이 보여주는 나-너 관계의 힘

일반적으로 사람은 사랑받으면 성장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그 '사랑'의 방식이 핵심이지, 사랑의 양이 핵심이 아닙니다. 영화 속 윌도 사랑이 부족해서 망가진 게 아니었습니다. 그를 바꾸려 들거나, 재능을 도구로 쓰려는 시선들 속에서 스스로를 닫아버린 것이었습니다.

상담사 숀이 윌과 나누는 관계는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가 말한 '나-너(I-Thou)' 관계와 정확히 닮아 있습니다. 여기서 나-너 관계란 상대를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한 인격체로 대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상대가 내 삶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가 아니라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에 집중하는 태도입니다.

반대 개념인 '나-그것(I-It)' 관계도 있습니다. 나-그것 관계란 상대를 하나의 사물이나 기능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방식으로, 자녀를 '내 기대를 실현할 존재'로 볼 때 이 관계가 작동합니다. 부버는 진정한 대화(Dialogue)는 나-너 관계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대화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며 이루어지는 교류를 뜻합니다.

숀이 윌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고 반복하는 장면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윌을 처음으로 나-너 관계로 바라보는 순간이었고, 윌이 그 순간 무너지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다시 봤을 때 솔직히 눈물이 먼저 나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아들 생각이 났습니다.

  • 나-너(I-Thou) 관계: 상대를 독립된 인격으로 존중하며 있는 그대로 만나는 방식
  • 나-그것(I-It) 관계: 상대를 목적 달성의 수단이나 대상으로 바라보는 방식
  • 진정한 대화(Dialogue): 존재의 인정 위에서 이루어지는 진짜 교류
  • 부버의 핵심 통찰: 사람은 통제받을 때가 아니라 인정받을 때 비로소 변한다
요약: 《굿 윌 헌팅》의 핵심은 재능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마르틴 부버의 나-너 관계처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짜 성장이 시작됩니다.

 

부모의 사랑과 '내 기대' 사이, 그 좁은 틈

일반적으로 부모의 걱정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고 합니다. 저도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들이 저녁을 먹으면서 "직장은 너무 힘들어요, 자영업이 낫겠어요"라는 말을 반복할 때마다 제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게 '걱정'인지 '제 기대가 무너지는 느낌'인지 구분이 잘 안 됩니다. 이게 제 솔직한 고백입니다.

부버의 관점에서 보면, 부모가 자녀에게 "1년만 버텨라"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이 자녀를 위한 말인지 부모 자신의 안도를 위한 말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제 경험상 그 두 마음이 동시에 있었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아이가 안정적인 직장을 갖길 바라는 마음과, 불안한 선택을 하는 아이를 보며 제가 불안해지는 마음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라고 부릅니다. 투사적 동일시란 부모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불안이나 욕구를 자녀에게 투영하여, 자녀를 통해 대리 충족을 얻으려는 무의식적 패턴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 바라거나, 내 불안을 아이의 문제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부모 교육 전문가들도 이 경계를 인식하는 것이 건강한 부모-자녀 관계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합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97년생 아들이 들이닥쳤던 그날, 저는 솔직히 반가우면서도 당황했습니다. 혼자 귀농 준비를 하던 작은 원룸에 갑자기 성인 아들과 공존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니까요. 결국 아이는 근처 작은 아파트로 독립했지만, 그 독립 자체가 아이가 스스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신호였다는 걸 저는 조금 늦게 알아챘습니다.

요약: 부모의 걱정과 기대는 종종 한 몸처럼 움직입니다. 투사적 동일시를 인식하는 것, 즉 내 불안과 아이의 현실을 분리해 보는 것이 나-너 관계의 첫걸음입니다.

 

사랑의 방식을 바꾸는 것, 그게 진짜 성숙입니다

자녀가 어릴 때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자녀가 성인이 된 뒤에도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면 그것은 어느 순간 통제에 가까워집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는 내가 뭘 해도 걱정만 한다"로 들릴 수 있습니다.

부버는 이 지점에서 '자유와 책임(Freedom and Responsibility)'의 개념을 이야기합니다. 자유와 책임이란 상대가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진정한 존중이라는 뜻입니다. 상대가 틀린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선택을 믿어주는 것, 그것이 나-너 관계에서의 사랑입니다.

아들이 "자영업이 낫겠다"고 할 때마다 저는 여전히 가슴이 덜컥합니다. 자본도 없고, 경험도 부족한데 무턱대고 뛰어들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 먼저 옵니다. 그런데 이 예상 밖의 감정을 들여다보면, 그건 아이에 대한 걱정이기도 하지만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제 불안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부모의 역할을 생애 주기별로 구분합니다. 영유아기에는 '보호자', 청소년기에는 '안전 기지', 성인기 이후에는 '동반자'로 그 역할이 변화해야 한다고 봅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제가 지금 아들에게 필요한 역할은 보호자가 아니라 동반자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몸이 먼저 보호자 모드로 반응하는 게 문제입니다. 이건 알면서도 잘 안 되는 영역입니다.

영화 속 숀도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 아내를 잃은 상처를 안고 있었고, 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직면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는 구조였습니다. 어쩌면 부모와 자녀 사이도 그렇습니다. 일방적으로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통해 부모도 성장합니다. 아들이 스스로 용돈을 벌겠다며 찾아온 그 순간, 저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요약: 사랑의 양보다 방식이 중요합니다. 성인 자녀에게 필요한 사랑은 보호가 아니라 신뢰이고, 그 전환이 부모에게도 성장입니다.
 
 
 

영화 <굿 윌 헌팅.과 마르틴 부버의 '나-너' 관계 철학사상 이미지

 

 

자주 묻는 질문

 

Q. 마르틴 부버의 나-너 관계를 부모 자녀 사이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나요?

A. 이론적으로는 가능하고, 실제로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제 경험상 '적용하겠다'는 의지만으로는 잘 안 됩니다. 아이가 예상 밖의 선택을 할 때마다 몸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부버의 나-너 관계는 한 번의 결심이 아니라 매 순간의 태도에 가깝습니다. "지금 나는 아이를 보고 있나, 아니면 내 기대를 보고 있나"라는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 현실적인 적용법입니다.

 

Q. 성인 자녀가 힘든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일반적으로 "1년만 버텨라"라는 조언이 정답처럼 통하지만, 제 경험상 그 말이 아이에게 실제로 힘이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부모의 조언이 아이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 뒤에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부모 자신의 불안을 관리하기 위한 것인지를 먼저 솔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너 관계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Q. 굿 윌 헌팅에서 숀 캐릭터가 왜 중요한가요?

A. 숀은 윌을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윌의 재능을 보고 그것을 활용하려 했던 반면, 숀은 재능이 아니라 윌이라는 사람을 먼저 봤습니다. 부버의 표현을 빌리면 숀만이 유일하게 윌과 나-너 관계를 맺은 인물입니다. 윌이 변한 건 누군가가 그를 고쳤기 때문이 아니라,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Q. 부모도 자녀와의 관계에서 성장할 수 있나요?

A. 제 경험상 오히려 그게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를 통해 부모도 자신의 두려움과 기대, 상처를 마주합니다. 발달심리학에서도 부모의 역할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녀의 성장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부모로서의 성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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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 질문

  • 나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내 기대를 투영하고 있는가?
  • 부모의 역할은 보호하는 것일까, 아니면 독립을 응원하는 것일까?
  • 사랑은 더 많이 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일까?

 

결론

1997년에 나온 영화와 1997년생 아들이 동시에 제 머릿속에 있다는 게 묘하게 느껴집니다. 영화 속 윌이 숀을 만나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된 것처럼, 저도 아들이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저 불안하게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믿으며 지켜봐야 한다는 걸 이번에 다시 확인했습니다.

마르틴 부버의 나-너 관계는 거창한 철학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상대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내 기대를 보고 있는가"라는 아주 단순한 질문입니다. 부모로서 이 질문을 매번 잘 통과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질문을 잊지 않는 것, 그게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사랑의 방식인 것 같습니다. 아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아들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참고: 나무위키 — 굿 윌 헌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