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만 안 어기면 그만이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듣는 이 말은 때로 가슴 한구석을 묵직한 불편함으로 짓누릅니다. 법이 곧 정의와 일치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미세먼지 점검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늘 그 간극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얼마 전, 불법 소각 현장을 적발하기 위해 다급히 핸들을 꺾다 과속 단속에 걸려 과태료 고지서를 받았습니다. 법을 지키기 위해 달려간 길 위에서 법을 어기게 된 이 역설적인 상황은, 저에게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차가운 일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소로는 그의 저서 『시민 불복종』에서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길러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는 국가의 법이 개인의 양심과 충돌할 때, 기꺼이 그 법을 거부하고 감옥에 가는 길을 택함으로써 진정한 정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몸소 증명했습니다. 오늘은 사법 시스템의 거대한 오류에 맞서 진실을 외친 영화 <재심(2017)>의 투쟁과 소로의 철학을 연결하여, 법이라는 최소한의 규범 너머 우리가 지켜내야 할 '양심의 책무'에 대해 깊이 사유해 보고자 합니다.

법은 최소한이라는 말, 지금도 유효한가
학교를 다닐 때 윤리 수업에서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법은 우리가 지켜야 할 수많은 도덕 기준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만을 강제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순서가 뒤집힌 것 같습니다. "법만 안 어기면 된다"는 말이 일종의 생활 철학처럼 퍼져 있고, 심지어 법을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인식까지 자리를 잡았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 개념이 여기서 다시 떠오릅니다. 시민불복종이란, 국가의 법이나 명령이 개인의 양심과 정의에 반할 때 그것에 비폭력적으로 저항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소로는 1849년 발표한 글에서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노예제도에 반대하며 세금 납부를 거부하고 감옥까지 갔습니다. 법을 어긴 것이지만, 그것이 곧 양심의 실천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것도 비슷한 아이러니를 담고 있습니다. 미세먼지 민간점검원으로 활동하면서 불법 소각 현장에 빠르게 도착하려고 과속을 한 적이 있습니다. 법을 어기는 사람을 막으러 가다가 저 역시 법을 어긴 셈입니다. 당연히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왔고요. 그때 잠깐, 편의를 위해 양심을 뒤에 뒀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기환경보전법상 불법 소각 행위는 과태료 부과 대상입니다. 여기서 불법 소각이란 논두렁, 밭두렁, 생활 폐기물 등을 허가 없이 노천에서 태우는 행위를 말하며, 미세먼지(PM-2.5) 농도를 급격히 높이는 주범 중 하나입니다. PM-2.5란 지름이 2.5마이크로미터 이하인 초미세먼지를 뜻하며, 폐 깊숙이 침투해 호흡기 및 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환경부).
현장에서 "이 정도 태우는 게 무슨 대수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법적 제재보다 먼저 이 질문을 떠올립니다. '당신은 지금 대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있는가.' 알도 레오폴드가 제시한 대지 윤리(Land Ethics) 개념이 바로 이것입니다. 대지 윤리란, 인간이 땅과 물, 식물, 동물을 포함한 생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법 조항보다 훨씬 먼저 존재하는 도덕의 영역입니다.
양심이 법보다 먼저였던 순간들
영화 재심을 보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억울하게 살인범이 된 청년의 이야기가 실화 기반이라는 것도, 변호사 준영이 처음에는 그냥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었다는 것도요. 그런데 그가 사법 오류(Judicial Error)에 맞서 싸우면서 달라지는 과정이 소로의 사상과 정확히 겹쳤습니다. 사법 오류란, 수사·재판 과정에서 발생하는 잘못된 판단이나 위법 행위로 인해 무고한 사람이 처벌받는 것을 말합니다.
준영은 법원이 이미 내린 결론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그것은 법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법이 정의를 배신한 순간에 정의의 편에 선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제 삶에서 비슷한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결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때, 거리에는 최루탄 가스가 자욱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 거리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거리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교통 통제, 인파, 소음, 그 모든 불편함을 감수한 것은 법이 요구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양심이 요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이 문제는 현실적입니다. 국제 분쟁 상황에서 강대국이 국제인도법(IHL,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을 위반하는 장면들이 뉴스에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국제인도법이란, 전시에도 민간인과 비전투원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합의한 최소한의 규범입니다. 쉽게 말해, 전쟁 중에도 지켜야 할 인도주의적 규칙입니다. 그런데 가장 힘 있는 나라들이 그것을 가장 서슴없이 어깁니다. 그걸 보면서 법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출처: 국제적십자위원회 ICRC).
그러나 역설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것도 결국 법입니다. 재심의 주인공이 무죄를 되찾은 것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양심적 변호인의 존재: 돈이나 명예가 아닌 정의를 선택한 준영의 각성
- 재심 청구 제도: 확정 판결에도 불구하고 새 증거로 다시 재판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
- 시민의 연대: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싸움을 가능하게 한 외부의 관심과 지지
법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법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법은 도구이고, 그 도구를 정의롭게 쓰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법을 지키는 것과 정의를 지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는 미세먼지 점검 일지를 기록하며 핸들을 잡을 때마다 그 사실을 새삼 떠올립니다. 법의 강제 이전에 "무엇이 옳은가"를 스스로 묻는 습관, 그것이 소로가 말한 '자유로운 개인'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오늘 하루, 편리함이라는 이름 뒤에 양심을 숨기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