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민간점검원으로 순찰을 돌다가 우연히 청년임대형 스마트팜을 발견했습니다.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가 청년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그들이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온 이유가 단순히 귀농이 아니라 '새로운 농업기술'을 배워 자립하기 위해서라는 말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 문득 조선시대 실학자 박지원이 청나라에서 수레와 벽돌을 보며 느꼈을 감동이 이해가 되더군요. 저는 이 경험을 통해 박지원의 이용후생 사상과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말하는 '진짜 갓생'이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박지원의 이용후생, 청년 스마트팜에서 만나다
박지원은 18세기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로, 실학의 대표적인 철학은 실사구시입니다. 그의 핵심 사상은 실사구시에서 더 나아가 '이용후생(利用厚生)'입니다. 여기서 이용후생이란 기구와 도구를 실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하여 백성의 의식주를 풍족하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해 관념적인 학문보다 밥상 위의 밥 한 술, 집 안의 따뜻한 온돌이 더 중요하다는 철학이죠.
제가 방문한 스마트팜 청년들은 바로 이 '이용후생'을 현대적으로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배우는 건 전통 농법이 아니라 IoT 센서, 양액재배 시스템, 환경제어 기술 같은 신농업 기술이었습니다. IoT 센서란 사물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온도, 습도, 조도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자동으로 조절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농업 현장에 최신 기술을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 강도를 줄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강조한 '기술의 실용성'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런데 청년들은 막상 수확 시기가 되니 생각보다 힘들다고 토로했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결국 사람의 손이 필요한 순간이 있더라는 거죠. 저는 이 대목에서 박지원이 말한 '이용'과 '후생'의 균형을 떠올렸습니다. 기술(이용)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것이 실제로 삶을 두텁게(후생) 만들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스마트팜 도입 농가의 생산성은 일반 농가 대비 평균 30% 이상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농촌진흥청). 하지만 초기 설치비용과 기술 습득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청년들이 체감하는 어려움 역시 현실입니다. 기술만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삶에 맞게 소화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리틀 포레스트가 보여준 법고창신의 삶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은 도시에서의 실패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직접 농사를 짓고 요리를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녀가 단순히 엄마의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형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박지원이 강조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되 새롭게 창조한다는 사상입니다. 법고창신이란 과거의 지혜를 맹목적으로 답습하지 않고 현재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여 혁신을 이루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혜원이 밤조림을 만드는 장면에 공감했습니다. 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기억하면서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설탕 대신 꿀을 쓰거나, 조리 시간을 조절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법고창신은 거창한 혁신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일상에서 시작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MZ세대가 열광하는 '갓생' 트렌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라클 모닝, 제로 웨이스트, 루틴 챌린지 같은 것들은 결국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죠.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런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따라 하다가 오히려 피로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는 여기서 박지원식 '법고창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남의 루틴을 그대로 복사하는 게 아니라, 나의 생활 패턴과 체질에 맞게 변형해야 한다는 거죠.
청년 스마트팜 청년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교육받은 매뉴얼대로 따라 했지만, 점차 각자의 작물 특성과 지역 기후에 맞게 조금씩 시스템을 수정해나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전통 농법의 경험과 현대 기술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농업 방식이 탄생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이야말로 250년 전 박지원이 꿈꿨던 '창조적 계승'의 현대판이 아닐까요.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 발생 빈도가 최근 10년간 약 2배 증가했다고 합니다(출처: 환경부). 전통 농법만으로는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청년들이 선택한 스마트팜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라는 의미입니다. 박지원이 살았던 시대에도 조선은 심각한 농업 위기를 겪고 있었고, 그는 청나라의 선진 농기구를 도입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실용적 혁신'으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태도는 똑같습니다.
제 경험상 진짜 갓생은 SNS에 올리기 위한 화려한 사진이 아니라, 내 삶의 기본(의식주)을 스스로 단단하게 다지는 데 있다고 봅니다. 혜원이 직접 농사지은 쌀로 밥을 짓고, 청년들이 스마트팜에서 수확한 채소로 수익을 내는 것처럼 말이죠. 박지원은 도덕을 논하기 전에 먼저 백성을 배불리 먹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현대인에게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계발서를 100권 읽는 것보다, 내가 먹는 음식 하나를 정성껏 준비하고 내가 사는 공간을 깨끗하게 정돈하는 것이 진짜 '삶을 두텁게' 만드는 첫걸음이라는 거죠.
미래에는 식량 위기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안전하고 풍부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계속 높아질 테고, 스마트팜 같은 신기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때 중요한 건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자신의 삶에 맞게 활용하는 지혜입니다. 박지원이 강조한 이용후생과 법고창신은 바로 그런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박지원의 사상과 <리틀 포레스트>의 메시지, 그리고 청년 스마트팜 청년들의 도전이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봅니다. "당신은 지금 진짜로 자신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남들이 정한 성공의 기준을 쫓는 게 아니라, 내가 정의한 풍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청년들만이 아니라 중장년층인 저희 세대도 과거의 낡은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세상의 기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조건 세상을 따라 사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버스를 타고 물건을 사려 해도 자동화 시스템을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배워두면 편하고 안전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으니, 내 주변의 물건들 중 단순히 소유하는 것을 넘어 내 삶을 실질적으로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타인의 방식이나 유행을 무작정 따르기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자신만의 비법으로 음식을 만들었던 것처럼 나의 성향에 맞춰 새롭게 변형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신만의 취미와 습관을 만들어가면서 남들이 말하는 성공의 지표를 제외하고, 오직 나만이 느끼는 '삶이 두터워지는' 순간을 만들어봐야겠습니다. 박지원이 청나라의 벽돌 담장에서 문명의 가능성을 보았듯, 혜원이 숲속의 작은 주방에서 자신의 단단한 내면을 발견했듯, 우리도 일상의 작은 실천에서 진짜 갓생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정성껏 차린 한 끼 식사, 깨끗하게 정돈된 책상 하나가 여러분의 삶을 예상치 못한 풍요로 안내할지도 모릅니다.